말도 안 되는 장르

by 썸머킹

말도 안 되는 장르




마침내 생일이었다. 근 몇 년간의 시간을 통틀어서 안전함을 느꼈던 7월이다. 내 생일은 7월 24일이고, 생일이 지나면 7월은 거의 다 끝난 것이다. 무사히 지나가버린 것이다. 7월은 폭우와 폭염을 포함한 여러 말도 안 되는 재난들이 벌어진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재작년까지는 내 생일도 재난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 그러나 우습게도 이 재난들은 나를 죽이지 않는 데다가 친절하게 날짜도 정해져 있고, 날씨가 바뀌거나 하면 예보는 곧 수정된다.

얼마 전에 부산의 우스운 일기 예보를 보았다. 깨진 유리 조각처럼 보인다는 조각구름에서 한 평 만큼의 지역에 소나기가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양팔과 양다리를 벌린 만큼의 공간에 비가 왔다고 한다. 강수 집계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로 잠시동안 쏟아진 이 소나기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지만 꽤 귀엽고 신비한 재난인 것이다.

내 생일을 재난으로 여겼던 것은 우연들의 연속 때문이었다. 여름은 하필 숨이 막힐 정도로 너무 덥고. 길을 걷고 있으면 누가 뒤에서 내 옷을 팽팽히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폭염 아니면 폭우. 폭염 때문에 더워서 미쳐 쓰러지거나, 폭우 때문에 반대로 뒤집힌 우산을 원래대로 돌리다 비를 다 맞아버리거나. 그러니까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다. 왜? 대체 왜? 왜 하필 여름에? 왜 내 생일에?

어느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쏜애플 콘서트에 다녀왔다. 어느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 들었다. 어느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레터링 케이크라는 것을 받아 보았다. 어느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부산에 있는 타르트 집의 단골이 되었다. 어느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일기를 연재했다. 어느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태어났다.

나는 여름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미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내가 여름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미쳤다는 것을 안다. 어쩜 사람이 이렇게 치기어릴 수가 있는지. 이토록 자신의 아픔과 슬픔에만 함몰되어 있다니. 거기에서 어쩔 줄 모르고 줄줄 흐르는 땀만 닦고 있다니. 내가 너무 싫은데 생일은 또 축하 받고 싶다니. 확 죽어버리고 싶은데 살고 싶다니. 그렇다면 여기에 어느 여름의 기억을 하나 더. 한 친구는 내 손을 잡고 말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 내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너는 그러지 마라. 그 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보다도 더 자주 떠오른다. 떠오르는 것은 불가항력이다.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나는 문학과 슬픔은 분명히 맞닿아 있고, 그건 서로 힘을 빼야 할 이유를 모르는 두 사람이 손에 주고 있는 힘과 같아서, 어쩌면 문학과 슬픔은 분리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문학적인 삶을 사는 것이 멋있다고 나에게 말해줬던 이들에게 미안한 말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러니 나는 문학과 멀어질 수 있다면 언제든지 멀어지고 싶다. 꼭 멀어질 것이다. 멀리 도망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7월이 안전했다고 하는 것은 문학과 거리를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으로 읽는 삶은 나를 재난으로부터 지켜주었다. 조각구름에서 내렸다는 소나기조차도 없었다. 나는 자주 건조했다.


*


생일 전날에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열었다. 모두 날 축하하러 와 주세요. 파티에 오세요. 이렇게 뻔뻔히 말했다. 내가 생일에 당당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파티에 온 친구들은 나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를 조금씩 맞고 들어와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도 친구들은 즐거워 보였다. 친구 한 명은 퀴즈를 내 주었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곳에 대해서, 내가 좋아하는 시에 대해서, 내 생일에 벌어졌던 세상의 일들에 대해서. 11시 59분이 되어서는 시계를 켜고 자정이 되었을 때 노래를 불렀다. 초를 제외하고 모든 불이 꺼진 방에서 소원을 빌었다. 이윽고 불을 껐다. 나에겐 어느 때보다도 환하고 매끈한 기억이다.

받은 선물 중에서 가장 많이 지켜보게 된 건 풍경이었다. 머리맡에 풍경을 높이 달아두었다. 가끔 생각이 나거나 심심하면 침대를 밟고 서서 모빌을 만진다. 연속적으로 움직이고 조각들끼리 부딪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계속 듣고 있으면 무언가 깨지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 소리를 누워서도 계속 듣고 싶지만 아쉽게도 손이 닿지 않는다. 그래도 입에 최대한 힘을 주고 후우우, 불면 희미하게 흔들린다. 이 여름에 입김을. 생일도 끝났고 케이크도 다 먹었는데 가만히 누워서 입을 뻐끔거리며 무언가 자꾸 불려고 하니 우습다.

그 상태로 침대에 누워서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도 열심히 읽었다. 나는 평소에 편지를 쓰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먼저 악필이라는 점과, 편지라는 형식이 너무 큰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엄청난 말을 해 주어야 할 것만 같고 내 편지를 통해 상대방을 울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리고 내 친구들은 편지에 재능이라도 있는 것인지 수신인을 한참 울먹거리게 만들었다. 원래 좋아하면 울리고 싶다며. 그런 건가. 다른 장르에 비해서 편지가 가지고 있는 힘은 참 초월적인 것 같다. 상대방의 이름을 생각하며 편지지에 적은 다음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뭉클해진다. 나에게 편지를 써준 사람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각도. 책상이나 바닥, 벽 등 편지를 받치고 쓴 장소. 펜을 잡는 자세. 펜을 쥔 손에 박혀 있는 굳은 살의 위치. 편지를 접은 방향. 편지를 읽고 나면 이런 것들을 마음껏 상상할 수 있다.

이번 생일에 받은 엽서나 편지, 우편은 여전히 침대 옆 책장에 놓여 있다. 햇빛에 달궈진 모래알처럼 빛나는 마음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아, 사람들이랑 같이 바다에 가고 싶다.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천연덕스럽게 같이 걸을 것이다. 모래에 발이 푹푹 빠져서 몇몇은 신발을 벗어 던지겠지. 누군가는 파도가 밀어낸 조개 껍데기를 손바닥에 담아 모을 것이고. 물방울들이 나뒹구는 해변에서 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물도 빛도 나오지 않는 분수가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도 분수가 참 예쁘다고. 텅 빈 것을 보고도 신나서 괜히 그런 말을 내뱉고. 술을 진탕 마시고 잠들겠지. 가득한 더위에서 그렇게 잠들고 싶다.

내년 여름에는 이렇게 욕심 내고 싶다.


*


목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정도로 많이 웃고 난 날에는 너에게 미안해져. 나만 오늘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웠던 것 같아. 어느 지역이든 여름은 다 엄청나겠지만 서울의 여름은 정말 엄청나. 너무 더워서 울고 싶어, 이런 말을 달고 살 정도로 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여름에 취약해져 있어. 더위를 참지 못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여름만 되면 나시를 꺼내 입었으니까. 나는 다른 계절보다도 여름이 너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비록 너는 여름을 가장 싫어했지만.

에어컨을 잘못 가동시켜서 그런지 내 자취방 에어컨에서는 물이 새어나오고 있어. 에어컨과 벽지 사이에 행주를 끼워두었고, 바닥에는 떨어지는 물을 받아줄 투명한 플라스틱 컵이 놓여 있어. 기사 아저씨를 바로 불러서 수리하고 싶었는데, 지금이 한창 여름이라 바로 오실 수가 없대. 기다려야 한대. 응, 더 기다려야 한대.

너는 생일을 음력으로 지내서 내 생일처럼 7월 24일, 이렇게 정해진 게 없잖아. 생일이 매년 조금씩 바뀌는 건 어떤 기분이니. 외우기도 계산하기도 힘들 것 같아. 그리고 실제로 나도 네 생일을 금방 까먹었어. 그래서 참 마음이 편해. 마음이 편해서 나는 요즘 덜 울어. 친구들도 정말 자주 만나러 가. 7월 한 달에는 100만 원도 넘게 썼어. 8월에는 드디어 제주도에 가. 날이 좋으면 꼭 사라오름에 올라갈 거야. 주변 사람들이 정말 사라오름에 갈 거냐고 궁금해하거든.

지금 내가 쓰는 글은 거의 한 달 만이야.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했어.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거야. 최소한으로 읽고 썼어. 그런데도 살 수가 있었어. 너무 신기했어. 몇 년간 책이 없으면 못 살 것 같다는 마음으로 겨우 지내왔는데. 스터디 사람들에게는 절필할까, 고민도 말했어. 나는 지나친 슬픔과는 멀어진 것 같아. 한 번 멀어지고 나니까 영영 도망가고 싶어. 다시는 발각되지 않을 수 있게.

지나친 슬픔. 내가 너에 대한 시를 썼을 때 들었던 말이지. 나는 이제 지나치게 슬프지 않아. 그런데도 엄마, 가끔은 궁금한 거야. 그래, 이제는 지나치게 슬프지 않는데도. 지나친 슬픔이란 과연 무엇일까? 지나치게 슬픈 게 뭔지도 모르면서, 지금 내 상태가 지나치게 슬프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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