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까지 생일 선물을 계속해서 받았다. 집에 돌아오면 현관 앞에 항상 택배가 놓여 있다. 작년에 살았던 이전 집에는 커터칼이 없었다. 수납공간은 넉넉했으나 안쪽을 가려줄 뚜껑이나 문이 없어서 어떤 물건이 놓여 있는지 의식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훤한 곳에 커터칼을 둔다는 건 위험한 생각 같았다. 그래서 택배 상자나 포장품을 뜯을 때 주방 가위의 도움을 빌리곤 했다.
작년 한 해는 칼을 품에 안고 있다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에게 겨눌 칼. 그러나 위협적인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내 피부와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날붙이. 칼을 품에 안고 있다는 마음으로, 칼을 머리맡에 두고 잔다는 시인의 시를 읽었다. 머리맡에 칼을 두고도 잘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칼을 믿고 있는 걸까. 얼마나 많이 칼을 쥐어본 걸까. 당시에 시를 따라 나도 머리맡에 칼을 두고 자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관뒀다.
그리고 이제는 커터칼 없이 아무것도 열 수 없다. 택배를 다 뜯고, 선물을 찍고, 어지러워진 주변을 정리하다가 커터칼의 칼날이 지저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번 무언가를 열기에 바빠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칼날 끝부분은 테이프 때문에 끈적해져 있었고 박스 조각이 몇 개 붙어 있었다. 얼마 후면 교체해야 할 것 같았다. 칼이 망가질 정도로 내가 많은 것을 사고, 받고, 또 열어봤구나.
사는 사람, 받는 사람, 여는 사람 중에 나는 여는 사람에 속할 것이다. ‘여는 것’을 가장 좋아하니까. ‘열다’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상자를 열다. 문을 열다. 파티를 열다. 입을 열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닫혀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열 수 있다. 그리고 열기 전까지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건 여는 사람만 알 수 있다.
나는 언제나 여는 사람이고 싶다. 닫혀 있는 곳의 표면을 쓰다듬어 보고, 이 안에 무엇이 있을지 추측하고, 작게 두드려보거나 흔들다가 커터칼을 꺼내는 사람. 아니야. 어쩌면 칼날이 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제일 먼저 마중 나가는 칼날. 문을 열어주는 칼날. 빛을 받고 반사하는 칼날. 에어컨 기사 아저씨를 불러 수리를 끝내고 오전 내내 누워 있다가 지난 밤에 상자를 열었던 기억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이렇게 집에만 있으면 안 된다고. 무엇이든 열러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주말이었고, 날씨가 흐렸고, 많이 습했고, 우산을 들고 나가지 않았다. 외출하기 전 예보를 확인하고 필요하다 싶을 때만 우산을 챙긴다. 누군가는 혹시 몰라서 여름만 되면 항상 가방에 우산을 넣고 다닌다는데, 쓰지 않는 우산만큼 불필요한 짐이 또 있을까. 학교 도서관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빵집 앞 정거장에 내리자마자 샤프심처럼 길고 뾰족한 비가 쏟아졌다. 빌리려던 책 대신 비가 열렸다. 교통 표지판 아래에 빗방울이 열려 똑똑 떨어졌다.
원하지 않은 것이 열리면 어쩌지. 소나기겠지. 금방 다시 닫히겠지, 생각하며 기다렸다. 가게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가 났다. 땀이 줄줄 흘렀다. 뒤를 돌아보자 유리 창문 너머에 칼로 식빵을 자르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칼을 품에 안고 있다는 마음으로…… 나는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택시를 잡았다. 책은 나중에 다시 빌리고 지금은 다이소에 가자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칼날을 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