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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anni Aug 16. 2021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저지른 피의 내전

에티오피아, 커피의 나라에서 흐르는 피

때는 2019년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대부분 일찍이 퇴근하던 날, 우리 부서의 불은 자정까지 켜져 있었다. 2월~3월 중 예정된 에티오피아 출장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내겐 첫 아프리카 대륙이었던 그곳에서,  커다란 통에 끓여 내는 현지식 커피도 마시고,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휴대폰 불빛에 샤워를 하고, 바 선생 앞에서 하염없이 무너지기도, 쓰러지는 철골(?)에 맞을 뻔한 십년감수의 상황도 겪었지만, 실제로 기민하고 영리했던 현지인들 덕에 상당히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식 전통커피 체험(흔히 보이던 저 찻잔은 made in china), 그리고 첫번째 출장지였던 호수의 도시, 비쇼프투 전경


나에겐 이런 추억으로 남아있는 국가이자, '커피 원두'의 나라로 알려진 에티오피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1. 커피의 나라, 젊고 복잡한 나라


에티오피아는 1억 명의 인구대국이며 그중 15세 미만 인구가 전체 인구의 43%인 매우 젊은 국가로 오랜 혼란을 극복하고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이에 우리나라 중점협력국  1기(2011년~2015년), 2기(16년-20년), 3기(21년-25년)에도 빠지지 않고 매번 선정된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국가이다. 아프리카 북동부에 위치하여, 아랍계와 섞인 인종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키가 크고 똑똑하다는 평을 듣는다.


츨처: 파이낸셜 타임즈


에티오피아 역시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다민족 국가로 민족 간 갈등의 씨앗을 디폴트로 안고 있다. 위의 지도에서 볼 수 있듯, 1) 오로미아(Oromia), 2) 암하라(Amhara) 족이 인구 다수를 차지하고 북부에 3) 티그레이(Tigray)족이 위치하고 있다. 각각 인구의 34.4%, 27%, 6.1%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오로미아 족의 주요 거주지에 위치한다. 그러나 근 30년간 인구의 6%를 차지하는 티그레이족이 이 국가를 이끌었다. 말로만 들어도 또잉? 하게 되는 이 씨앗은 어떤 갈등의 꽃으로 피어난 것일까?



2. 오랜 혼란을 극복하고 안정적 성장을 이뤘는데 말이지...


1970년대 이후 멩기투스를 필두로 한 공포정치 하에 있었던 이 국가는 1980년대의 대기근으로 가난과 기아의 대명사였다.


 허나 이 사회주의 정부는 소련의 지원이 끊긴 1991년, 에티오피아 인민혁명 민주전선’(EPRDF) 불리는 저항 그룹에 의해 전복되었다. 민주전선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었지만 주로 이끈 이들은 티그레이족으로, 이후 티그레이 인민해방전선(TPLF)의 멜레스 제나위 총리의 약 20년 통치가 시작되었다. 동시에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이고, 빈곤퇴치와 경제발전을 위한 정책을 수행하여, 2000년대에 접어들며 에티오피아는 지속적으로 두 자릿수의 경제성장을 이루게 된다.


아래 실질 GDP 성장률 그래프를 보면 2000년대 초중반부터 최근까지 꽤 높은 성장률을 유지해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 경제성장률 추이 (출처: IMF)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는 2020년에도 여전히 최빈국(LDC, Least Developed Country)으로 분류되었다. 아래 UN보고서는 최빈국을 판단하는 3가지 기준(GNI per capita, 인적자산 지수, 경제취약지수)에 에티오피아가 미치지 못함을 보여준다.


출처: UN DESA


또한 앞선 경제성장 이면엔 어두운 그림자가 짙었는데, 일당 체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통제가 전방위적으로 손을 뻗쳤고, 반 정부 인사는 수감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에 경제 수준이 높아지며 쌓여가는 국민들의 불만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을 것이다. 정부는 회유의 수단으로써 오로미아족 출신인 40대의 젊은 정치인 ‘아비 아머드’를 신임 총리로 내세운다. 그는 오로미아족 출신이지만 민주전선 소속 기성 정치인으로서, 티그레이 측에게도 갈등을 봉합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꽤 괜찮은 카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총리는 모두를 놀라게 하는 반전을 일으킨다.  




3.  내전을 종식하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 새로운 내전에 돌입하다?



현 에티오피아 총리 ‘아비 아머드(Abiy Ahmed)’ 는 2018년 집권 이후, 에티오피아 북부 국경선에 맞닿아있는 '에리테리아'와의 반세기 넘는 전쟁을 종식시켰다. 수십 년간 여러 세력이 개입하여 이루고자 했던 평화를 이 총리가 몇 개월 만에 뚝딱 해내버린 것이다. 이에 더해 정치범을 사면하고, 인권유린 시설을 폐쇄하였으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자유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에티오피아는 단번에 ‘대륙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서구권에서도 그는 새로운 히어로였고, 이러한 국제 흐름에 따라 집권 18개월 만인 2019년, 100번째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다.


노벨상을 수상한 아비 아머드 총리 (출처: France 24)


이때 의아했던 것은 의례적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기자회견에 그가 참석하지 않았던 것인데, 아마 이때부터 내부적인 리더십이 이미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뭔가 켕기는 것이 있지 않았겠냐는 추측을 하게 된다.


 오로미아, 티그레이 이외에도 수십 개의 민족이 살고 있는 이 국가에서 오랜 시간 억눌려온 수많은 목소리들은 자유화라는 물꼬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이 너무나 갑작스레, 너무나 과도해서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었던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반란과 시위에 이 정부는 빠르게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의 형태로 회귀했고, 언론 탄압, 경찰의 강압적 진압 등 정부 주도의 폭력이 자행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아비 정부는 권력 공고화를 위해 기존의 강력한 정치세력인 ‘티그레이 인민해방전선(TPLF)’ 의 권력을 축소하고, 이들을 인권유린으로 고소하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는 1) 터져 나온 종족 갈등에, 2) 강력한 권력을 지닌 티그레이족과의 갈등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이에 더해 2020년, 3) 코로나19를 맞이하게 된다.


2020년 당시 에티오피아는 8월에 예정된 선거를 를 코로나19로 인해 미루고자 했다. 하지만 티그레이 인민해방전선(TPLF)이 이는 정권이 불리한 선거지형을 피하기 위한 술수라며, 중앙정부의 결정을 무시하고 지역 선거를 수행해버렸다. 이는 현 대통령의 정당성을 무시한 행태로 해석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고, 결국 아비 정부는 11월 4일, 전 세계의 관심이 미 대선에 쏠린 밤, 티그레이의 선제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군이 대응한다는 성명을 내기에 이른다.


4. 용병을 끌어들여 국민을 학살하는 기근의 나라


내전이 발발하고서 티그레이족이 살고 있는 북부지역은 인터넷, 휴대폰 통신, 언론 등 모든 것이 차단되었다. 하지만 옆 나라 수단으로 도망친 난민으로부터 전쟁의 참혹함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이들이 정부군에 의해서 학살당하고, 여성에 대한 강간도 알려진 것만 수백 건이며, 명백한 ‘인종청소(ethnic cleansing)’가 의도적으로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정부군이 불러들인 용병이 바로 ‘에리테리아 군’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내전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맺은 나라의 군을 활용해 자국민을 학살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에리테리아 역시 그간 자국과 내전을 치른 티그레이족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고…


당연히 티그레이 지역의 경제는 올스톱되었고, 과거의 기근과 배고픔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외 구호기관의 도움의 손길마저 정부에 의해 차단되면서 이들 지역은 전쟁의 폐허와 배고픔 속에 그저 남겨진 것이다.

세계기아지수(World Hunger Index, 2020), 지수가 100에 가까울 수록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출처:Concern Worldwide)

 

위의 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에티오피아의 기아 지수는 전체 대상 국가 104개국 중 92위에 달한다. 물론 북한, 아이티를 보며 대체 이들은 얼마나 더 심각한 것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이번에 아이티에는 또 강진이 났다고 한다…). 심각한 기근은 에티오피아의 국가 안정성과도 연계된 중요한 지표이다. 전쟁으로 인한 이러한 강제적 기근은 충분히 인력으로 막을 수 있었다는 데에서 안타까움이 남을 뿐이다.


이렇게 나라가 혼란스러운 와중에 지난 6월 21일 작년부터 미뤄진 총선이 개최되었다. 전체 선거구 547개 중 1/5이 준비 부족 등으로 선거를 9월로 미뤘으며, 내전이 발생하고 있는 티그레이 지역은 선거 개최가 요원하다고 한다.




5. 인간성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끔찍하다. 정부군에 의해 국민이 학살되고, 강간당하는 현실이 세상에 여전하다는 것이, 그리고 그 주체가 무려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이 아이러니한 사태가..


이 글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이들이 해왔던 고민을 다시금 곱씹어보았다. 도대체 전쟁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인간의 탐욕이 벌이는 이 행태는 모든 개인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강간을 합리화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일상과 인생을, 그들이 가질 수 있었던 작고 빛나는 하루를 갈갈이 조각내버린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전쟁하고 전투한다. 그 와중에 수많은 행복과 희망이 사그라진다. 돌아온 이들은 환각에 시달리고, 여성은 여성성을 잃으며, 파괴된 삶의 조각에 매달려 생을 유지할 뿐이다.



이틀 전 8월 14일은 위안부의 날이었고, 어제 8월 15일은 광복절이었다. 한반도에서 우리가 인간성을 지키며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평화로웠던 19년도 에티오피아 비쇼프투에서

참고자료

1. 국무조정실, 개발협력본부 홈페이지(ODA KOREA) (제36차 국개위 의결안건) ODA 중점협력국 재선정

https://www.odakorea.go.kr/fileDownLoad.xdo?f_id=1612165580692192168220001IQFM5DLGOR6GHTGAX3

2. The War in Tigray - The New York Times

3. Concern Worldwide, ‘2020 Global Hunger Index”

4. 조기원 기자, “노벨상 수상자’에서 ‘내전 책임자’ 전락한 에티오피아 총리”(2021.06.21, 한겨레)

5. UN DESA, “The least developed country category: 2021 snap shot”,

6. 이진상, 변웅, “동부 아프리카 2개국(에티오피아, 케냐)의 사회경제개발 역량강화를 위한 협력방안 연구 “, KIEP 전략지역 심층연구 12-12

7.  코이카 공식 블로그, “2019 노벨평화상의 주인공, 에티오피아 아비 아머드 총리는 누구인가”


#본 글은 개인적 관심에 의해, 간략한 조사를 거쳐 작성한 글입니다. 한 국가의 역사와 상황은 수십 년을 조사한다 해도 감히 알 수 없기에,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적극 의견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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