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 14권 and ing
임신으로 인해 10월부터 일을 쉬게 되면서 생겨난 시간 동안 책을 읽었다. 미뤄오기도 했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열심히 읽은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꽤 쌓였다.
기록해두지 않으면 육아를 시작하고 모두 증발되어 버릴 것 같아 시작해 본다(낳기전에 정리해서 다행야)
*2019 부커상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2016)처럼 12명의 여성의 옴니버스식 이야기가 한 곳에 모이며 마무리된다. 피프티피플 때처럼 관계도를 그려가며 읽어야 했다
흑인이며 레즈비언/젠더프리/트랜스이기도 하며 성공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쿨한 이도 야비한 이도 모두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지지만 혈족의 근원도 다양하여 아프리카(감비아,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말라위), 카리브 및 아메리카(자메이카, 바베이도스, 가이아나)의 국가들이 언급된다.
대학원에서 ‘브라질의 흑인여성 운동’을 접했을 때 충격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남아메리카인 브라질에서 ‘흑인’이면서도 ‘여성’으로 사는 극악의 소수성에 대하여 나는 그 존재조차 떠올려 본 적 없었던 것이다. 책 속 주인공들도 영국의 흑인이자 여성이며 동성애자이지만 각자의 인생을 담담하게 살아낸다.
그간 읽어 온 번역 소설 속 인물이 주로 백인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백인을 상상하며 읽는 것에 놀라며 계속 다른 인종을 그려보려 한 것부터가 새로운 시도였다. 올 가을에 버나딘 에바리스토가 한국에 왔었는데 무거운 배로 나가보지 못한 것이 다시금 아쉽다... 흑흑
처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있을 수가 없다. 미국계 인도인의 이야기 자체가 처음이었고, 그들의 삶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민자와 이방인으로서 겪게 되는 문화적 갈등과 이민 세대 간의 갈등이 엉키는 모습에서 한인 이민자의 삶에서 오는 공감과 인도인에 대한 이해가 겹쳐지는 게 얼마나 오묘하고 매력적인지.
‘언어’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이탈리아로 넘어가 이태리어를 배움은 물론(「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이로 소설까지 써내는(「내가 있는 곳」) 사람인데 이 역시 그녀의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배경이 없었다면 쉽지 않을 시도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보다 좋아하는 것은 인도인의 미국살이가 담겨있는 그녀의 영어 소설이긴 하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한강 작가의 장편 1편, 단편 2편, 시 4편, 수필 여러 편이 담겨있어 작가에 대해 보다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글과 말을 다루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만큼 ‘발화’에 대하여 항상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이를 장편과 단편에 오롯이 담았다.
그녀의 책이 지독한 아픔을 다룸에도 책을 읽는 과정이 아프고 힘들지만은 않은 것은(물론 작가는 힘들다) 그녀의 생명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지속적으로 ‘나무’, ‘빨간 피’라는 오브제로 작품에 등장한다.
이미 신행 때 읽었던 장편(「희랍어 시간」), 완독 한 바 있는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도 그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시 읽어보았고, 최근 프랑스 메디치 문학상을 받고, 나를 지하철에서 무자비하게 울려버린 「작별하지 않는다」의 출간 후에 쓴 수필은 또 다른 각도에서 그녀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이 책을 처음 시도했던 것이 1년 전이었나, 쉽게 읽히지 않아 묻어두었다가 다시 봄에 펼쳤다가, 이제야 드디어 다 읽어냈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데다가 ‘줌파 라히리’가 찬양해 마지않는 이의 그 유명한 단편집이지만 다행히 작가들도 쉽게 읽지는 못하는 책인 듯하다. 천만다행이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소설에서는 조금 비껴나가, 한 인물의 상상만으로도 단편이 끝나버리거나 또는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순응해 버리는 애매하고 찝찝하며 조금 우울해지기도 하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편소설 한 편, 한편이 끝나갈 때마다 맘 속 깊은 곳에 오묘한 공명이 생겼다. 이를 이해하려고 이틀 동안 관련된 팟캐스트를 다 찾아 들어보니 읽고 또 읽고 곱씹고 또 곱씹어 볼 때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소설인 듯하여 조리원에 들고 가볼까 한다.
*1989 부커상
트레바리에서 「클라라와 태양」을 인상 깊게 읽었고, 그 전편으로 불린다는 「나를 보내지 마」를 언젠가 읽어야지 했었다. 이번 기회에 이에 더해 대표작인 「남아있는 나날」과 단편집 모음인 「녹턴」을 읽어봤는데 세 권 모두 모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윌리엄 트레버와 같이 어찌 보면 슴슴하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다 읽고 나면 숨겨진 사회적/개인적 갈등이 있었다. 이를 찾아내고 음미하고 생각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헤밍웨이는 “빙산의 움직임이 위엄 있어 보이는 것은 8분의 1만 수면 위로 나와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듯 아름다운 산문의 힘은 쓰지 않고 남겨두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샤피 바칼, 「룬샷」).
윌리엄 트레버와 가즈오 이시구로는 8분의 1을 가지고도 원하는 바를 녹여내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가이다. 하지만 내가 이를 제대로 감상하는 수준에 가 닿으려면 아직 멀었구나 싶기도. 그러나 10년 후의 나는 이 책들을 다르게 감상하지 않을까.
정말 좋다. 읽기 쉽진 않지만 정말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지리의 힘 1」 보다 훨씬 좋았다.
1권은 어쩔 수 없이 보편적 국가(미국, 중국, 동아시아 등)를 다룰 수밖에 없지만 2권의 경우보다 궁금했던 지역(그리스와 터키, 사우디와 이란, 사헬지역과 에티오피아)은 물론 이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제국주의의 역사(영국, 스페인 등)를 지리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러-우크라 전’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의 상황을 보더 구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좋은 것인가..)
물론 이 책을 읽으려면 항상 노트북이나 패드를 옆에 두고 끝없이 구글맵과 구글검색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완독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만 그렇게 읽어내고 나면 국제정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한 단계 높은 시각을 분명히 가질 수 있다.
20살 때부터 중동 관련 교양을 들으면서도 모호했던 그곳의 정세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드디어 수니파와 시아파를 헷갈리지 않고 구분하게 되었다!
제목과 달리 생각보다 술술 읽혀 침대맡에 두고 읽었다. 제국주의의 참상과 그것이 현대 개도국의 경제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조명하는데 뻔해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 약탈무역, 흑인노예, 브라질의 파벨라, 필리핀의 콜센터 등 모두 어디서 들어본 개념을 쉽지만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정리되어 있다.
오늘날 빈국이 단순히 그들의 부패와 무능에만 기반해 있다기에는 제국주의의 침탈과 약탈의 역사, 그들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놓아 버린 농업구조(식량상품작물), 산업구조(일부 원자재 집중 or 저임금 노동구조 등)가 지속되며 발생한 부작용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음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증명한다.
세상을 뒤바꾼 아이디어는 많다. 2차 대전에서 미국이 레이더를 개발하지 못했더라면 독일의 잠수함을 이길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10년이나 사장되었다가 어떤 지도자에 의해 재발견되고 개발되었던 것이라면
‘정신 나간 거 아냐?’ 소리를 들을만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룬샷’이라고 한다. 언제나 공격받기 쉬우며 분명 세상을 뒤바꿀법했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것도 많다.
저자는 물리학의 ‘상전이(e.g. 물이 0도에 이르면 얼음이 되어버리 듯 줄다리기의 팽팽한 양 끝단이 어느 순간 바뀌어 버리는 것) 개념을 활용하여 혁신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원리를 설명한다. 과학적 방식(수리적 등식)으로 조직문화에 대한 분석과 제언을 하는 것이다.
허나 그 원리를 이해하지 않더라도 왜 팬암이 망했는지, 잡스는 어떻게 실패한 창업가에서 성공한 관리인이 될 수 있었는지, 신약의 개발이 어떻게 망할 뻔하다 성공하는지 등의 흥미로운 경영사례가 잘 정리 및 분석되어 있어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책이었다.
고향 친구가 책을 냈다. 아끼고 아끼다가 일부러 고향에 내려갔을 때 읽기 시작했다. 보통 한국 현대소설에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것은 같은 시대와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번에 경험해 본 ’친구의 소설‘은 그런 강점이 극대화되어 작가의 삶이 떠오르고, 나와의 교집합이 투영되고, 그 와중에 숨겨진 친구의 속내를 훔쳐보는 듯한 짜릿함(?)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AI와의 사랑을 다룬 <블라인드, 데이트>라는 단편은 가즈오 이시구로나 테드창보다도 더 AI를 삶 깊숙이 데려올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할까나. 중쇄도 찍고 다음 소설도 내고 길이길이 기억되는 작가가 되기를 응원한다.
나는 결혼도 했고, 출산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왜 이 책이 그렇게 끌렸던 것일까. 나조차 혼란스러워 여러 생각들로 나를 설득해 봤다.
그렇게 한 달을 묵혀두니 어느 순간 이유는 명징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
나 역시 내 인생, 내 커리어, 자기 발전에 욕심이 없지 않기에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게 되면서 포기해야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을 수가 없다. 솔로의 삶이라면 그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나는 그것을 아쉬워하니까.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고 읽었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고 아기를 낳지 않아서 어른이 아니‘라는 편견의 어떠한 부스러기도 갖고 싶지 않았고, 새로운 삶의 형태(서로 돕는 공동체)에 대하여 알고 싶었던 욕망도 부정하지 않는다.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영원한 혼자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은 돌봄이 필요하고 느슨한 연대와 관계 속에서 자발적 삶의 형태를 구성한다. 하지만 과도하게 좁은 ‘법적인 가족’의 테두리 밖에서 그리고 사회적 선입견 앞에서 이들은 상처받는다.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로 복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용구가 잊히지 않는다. 1인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이미 자명한 사실이며, 앞으로 더욱 다양해질 생활 공동체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법적, 제도적으로도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육아에 대한 ’철학도서‘이다. 나랑 결이 너무 맞고 배울 점 많은 언니가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며 했던 따뜻하고 다정한 생각을 잘 정리해서 말해주는 것 같은 책이다.
친구가 선물해 준 아기 수면교육의 바이블 같은 책인데.. 아직 잘 안 읽힌다...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
윌리엄 트레버 같은 느낌의 소설인데 김연수 작가님이 번역하고 해설을 써주셔서 보다 잘 읽히는 듯하다.
이제 출산일이 내일이 될지 모레가 될지 모르는 39주가 되었다. 그래도 그간 읽은 책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제 혼자 노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좀 지겨워졌는데 나중엔 이 날을 얼마나 그리워할지 알기에.. 다시금 카페로 발을 내딛고 책 표지를 열고 글을 써본다.
#소녀여자다른사람들 #그저좋은사람 #디에센셜
#비온뒤 #나를보내지마 #녹턴 #남아있는나날 #지리의힘 #빈곤의연대기 #룬샷 #똑게육아 #아이라는숲 #대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