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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먀우 Aug 26. 2019

함빡 사랑할 일 없는 나라, 독일

"나는 독일을 한국 만큼이나 싫어해. 하지만 한국은 그와 동시에 사랑하는데 독일은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아."


노가리를 까던 도중 C에게 한 이 말을 곱씹어 본다. 사랑과 독일 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또 있을까. 독일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나에게 달려 있는지, 아니면 이 나라 자체가 사랑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지 나는 종종 고민에 빠지곤 한다.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왔을 때 나는 독일은 참 조용한 들꽃 같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파리나 런던 같이 화려하게 그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곳은 없지만, 서서히 스며드는 편안한 나라라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나고 독일에 산 시간이 5년이 넘어가는 지금, 나는 굳이 독일이 무엇인지 설명하라면 거대한 공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울분이 홧병에 가까운 구조라면, 이곳의 괴로움은 아무 것도 없는 들판. 아무 것도 없는 허무에 몸부림 치는 듯 보여 이대로 만족하냐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이 나라는 나의 이해 범주에서 너무나도 멀어서 그 만치 흥미롭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내가 너무나도 강한 압력에 땅에 바짝 엎드려 일어 설 수가 없었다면 여기에서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버석 말라버렸다.


처음에는 물론 모든 것이 좋았다. 내 가득찬 마음과 꿈은 여전히 존재하면서 나를 이리저리 치이게 하던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래, 적응하면 괜찮아 지겠지' 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사실은 이 곳에 존재하는 순간 평생을 따라붙을 꼬리표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나의 푸석해진 마음을 알아차린 순간, 내가 알던 모든 것들이 실은 보편적 상식도 당연히 여길 수 있는 것임도 아니었음을 알아차린 순간, 고개를 든 의문을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평생 여기 살 수 있을까?'


요즘은 가끔씩 독일의 장점과 내가 왜 졸업 후에 다시 이곳에 돌아오기로 했는지를 곱씹어 보곤 한다. 분명한 장점들은 존재한다. 학비가 없고, 삶에 기본적으로 여유가 있으며 업무량과 업무 시간이 과중하지 않으며, 휴가가 길고,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계급이 (표면 상으로는 일단은) 없다. 아프면 이틀까지는 그냥 냉큼 이메일 한통만 쓰고 사라지면 되고, 내가 사는 도시는 집세가 비싸지 않아 이럭저럭 남는 돈이 꽤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장점들을 곱씹어 봐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장점들은 심장에 박히는 이유가 못 되기 때문이다. 장점은 말로 꺼내 풀어내야 하는 반면 단점들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마음에 와 박힌다. 나는 평생을 살아도 이방인일 것이고, 평생을 수박 겉핥기 식의 대화만 하며 살아야 할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것이다. 그 누구도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한 마디면 끝날 아주 사소한 것조차 5분씩 설명해 줘야 하는 과업이 될 것이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을 그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고, 그 누구도 내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안에서 나는 남들의 세계를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어쩔 수 없지 뭐, 당연하지 뭐, 하고 이해하려고 하기도 하고 스스로를 도닥이기도 하며 달래지지 않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는 동안 내 진짜 마음은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퍼석해져 바스라지게 된다.


이 나라는 참 웃기는 나라다.


조금만 찾아보면 안 낼 수 있는 은행 계좌 유지비를 내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나라. 돈을 아끼려는 약간의 노력들을 왜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 라고 여기는 나라. 휴가 가서 노는데 번 돈을 왕창 써버리는 나라. 쓸모 없는 걸 굳이 사진 않는 나라. 새로운 걸 싫어하는 나라. 여러 꼭 필요한 자리에 있는 직업인 중에는 외국인이 그렇게 많은데도 우익 정당이 표를 얻는 나라. 한 곳에서 나고 자라 평생 조그만 그 도시서 살아가는 나라. 열정을 이상하게 여기는 나라. 친절을 꺼리는 나라. 가끔은 그것이 친절인 나라. 마음이 죽어버린 나라. 문화를 금지당한 나라. 일머리와 애살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나라. 실패할 수 없기 때문에 성공의 이유도 없는 나라. 항상 불평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말하는 나라. 수퍼마켓에 진열된 채소와 고기 종류가 거기서 거기인 나라. 음식에 신경쓰지 않는 나라. 많은 사람들이 어째서인지 분노에 차 있는 나라. 매년 거의 모든 것이 똑같은 나라. 그러면서도 가끔 기차에 와이파이가 도입되는 등 신문물이 나타나 나를 가끔 감동하게 하는 나라. 하지만 여전히 핸드폰 데이터는 기차가 출발하면 안 터진다. 건물 안에서도 여전히 안 터지고.


살다 보면 어째서인지 불평 불만만 느는 나라, 그 어떤 추억도 떠올리면서 함박웃음 짓기 힘든 나라, 독일. 그 적나라하고 추상적인,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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