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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먀우 Aug 30. 2019

Unstillbare Gier(채울 수 없는 욕망)

뮤지컬 <Tanz der Vampire>에서

나는 '의미 없는 것들이 떼거리로 나와 의미 없는 짓을 하다 들어가는' 종류의 뮤지컬을 좋아한다. 스토리가 있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극들은 등장인물이 많아지고 스토리가 진지해지는 어느 시점 뇌가 파업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연고 없는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아 저기 가면 선택 받아서 다시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설득해 자기들의 의식의 제물로 바치는 내용의 <캣츠>나, 밥 한끼를 먹기 위해 다이어트와 금욕을 해 가며 몇백 살 먹은 늙다리 뱀파이어 할배가 젊고 어리고 순진한 여자애 꼬셔서 겨우 일 년에 저녁 한 끼 먹는 내용의 <뱀파이어의 춤> 같은 별 내용 없는 공연들을 좋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FqWUNW3hwR0

18살의 사라는 부모의 억압을 피해 집을 나가버리는 캐릭터인데, 사라의 순진함에 집착하는 팬들이 <사라보다 백작이 더 순진할 때> 따위 댓글만 가득한 것이 개그포인트다


독일이 아무리 좋아할 거리 없는 황무지라지만, 그래도 사막에도 선인장이 자라듯 독일에도 덕질 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축구, 클래식 공연, 오페라 등은 독일에 온 걸 후회할 일이 없는 분야다. 독일 뮤지컬도 외국인 배우들을 데려와서 간신히 살아남고 있는 것에 비해서는 알려진 공연들이 꽤 있는 편인데, 미하엘 쿤체가 각본을 쓴 엘리자벳, 레베카, 뱀파이어의 춤 등이 그에 해당한다.


<뱀파이어의 춤>에서 가장 클라이막스에 해당할 노래는 뱀파이어 백작 폰 크롤록Graf von Krolock이 2막에서 혼자 부르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Unstillbare Gier일 것이다. 이 노래는 죽지 못하는 뱀파이어인 폰 크롤록이 자기가 먹었던 사람들을 문과생 정신을 발동하여 맛집 리뷰하듯 회고하고, 자신의 영영 채워지지 못할 갈증과 욕망을 슬퍼하면서 마지막엔 너네도 엿 먹어라 하고 끝나는 노래다. 그런데 보통 뮤지컬 이 위치의 솔로곡은 '나는 이렇게 살아왔지만 앞으론 개심해서 이렇게 살 거야' 하고 주인공의 심경이 바뀌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곡이 아니던가. 뮤지컬 위키드의 Defying Gravity라던가, 캣츠의 Memory, 심지어는 개그 뮤지컬인 The Book of Mormon의 I Believe조차 '상승하는 삶을 위한 주인공의 심경적 변화'를 그리고 있건만, 이 노래는 '잘 부르네' 말고는 부르기 전이나 후나 아무런 변화도 없고 스토리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 곡이다. 이 곡 가사를 짧게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Gäb's nur einen Augenblick

des Glücks für mich,

nähm ich ew'ges leid ihn Kauf.

Doch alle Hoffnung ist vergebens:

Den der Hunger hört nie auf.

단 한번의 행복이라도 주어진다면,

영원한 고통이라도 삼킬텐데.

하지만 모든 희망은 스러지고

굶주림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이 극이 어떤 꼬라지로 브로드웨이에 올라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노래를 클라이막스라고 때려박았으니 긍정충의 나라 미국에서 망하는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고 본다. 보통 사랑받는 공연 혹은 노래에는 그에 상응하는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필수불가결할 텐데, 이런 극이 20년간 롱런을 한 독일의 장수극이라는 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독일 놈들은 왜 이런가'는 '독일 놈들은 원래 이랬는가'와 더불어 이 땅을 살아가는 이민자들과 가장 자주 이야기하는 주제 중 하나이다. 십 몇년째 여기 박혀있는 이민자 S는 '잘 나갈 줄 알았는데 그만큼 못 나가서' 가설을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8-90년대 태어난 독일인들은 형제자매가 서넛쯤 되어 부모 세대보다도 많은 경우가 흔한데, 이들 세대는 '얘네가 자랐을 때 쯤 독일이 잘 나가겠지' 하고 희망을 가지며 자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그런데 정작 독일이 잘 나가지 못하자 야 잘 된다며 하고 이미 비대해진 자아가 터질락 말락 하는 상태라는 것.


나는 개인적으로 '정서적 학대' 설을 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독립성이 강조되고, 유아 시절부터 저녁으로 썰은 생당근과 생파프리카와 빵 한 조각 정도를 먹으며 자라면서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사랑과 맛에 대한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만, 진짜 좋은 것을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공허의 이유를 몰라 뻥 빈 가슴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는 설. 독일은 나라에도 대해 애정 혹은 자부심을 갖는 것에 엄청난 거부감이 있는데, 그 표출이 유일하게 허락된 것이 축구라고 본다. 축구만 하면 길거리에서 경적을 울리고 술을 마시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들은 이 나라를 어마무지하게 사랑하는데, 그걸 표현 못 하니 미쳐버린 게 아닐까 싶다. 아, 축구 하니 생각났는데 지난 월드컵 한-독전 회사에서 단체로 관람한다기에 별 기대 않고 구경갔는데, 한국이 이기니까 진짜 경기 끝나고 다들 썰물처럼 집에 가고 단관은 3분도 안 되어 파했다. 몇몇은 진짜로 화난 것 같았다. 깔깔깔깔.


그나저나 인간의 피는 생각보다 칼로리가 낮아서, 뱀파이어가 하루에 인간 만큼 칼로리를 소비한다고 쳤을 때 생명을 유지하려면 하루에 사람 네 명을 쪽쪽 빨아먹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걸 듣고서 저 가사를 다시 보니, 영생에서 오는 괴로움이 아니라 그냥 배가 너무 고팠던 것이 아닐까 싶어 측은한 기분이 들었다. 쟤네는 일년에 한명 것도 수십명의 뱀파이어가 나눠먹던데. 그런데 이 세계관의 뱀파이어는 식량이 그대로 뱀파이어가 되는 구조라, 도무지 식량 수급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지들끼리 피 빨아 먹는다고 해도 무한동력도 아니고 분명히 에너지 손실은 일어날 거 아닌가. 백작님은 아무래도 아리스토텔레스니 소크라테스니 그만 읽고 어떻게 덜 굶을 것인가 실학적 공부를 하시는 게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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