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덜 싫어했을 때 쓴 글
쥐뿔도 없는 애가 젠체하는 글
교환학생으로 지낸 독일에서의 반년은, 방바닥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소리 없는 설운 울음을 누가 들을까 몰래 터뜨리는 순간들마저 평온했다. 그 가장 낯설고 먼 곳까지 내 불안과 슬픔은 나를 따라오지 못했는지 모른다. 졸업을 앞두고 다시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초라한 나를 바라보며, 스물네 살의 나는 그 행복의 진위를 가려야만 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비행기 표를 예매하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손에 여권을, 한 손엔 대학 졸업장을 들고 나는 단출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내 인생에는 싫은 것이 참 많았다. 글을 쓰고 싶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영화를 하고 싶었던, 내 삶의 모든 열망은 너무나도 쉽게 핑계 속에 묻혔다. 재능이 없었고, 노력하기 싫었고, 열악한 근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면접을 울며 나오며 너무나도 쉽게 뜻을 접었던 열아홉은, 항상 도망칠 궁리만을 하며 세상을 살았다.
내 인생은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삶이었다. 싫어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는 삶은, 사랑했던 것들 또한 내던지게 되는 삶이었을 몰랐다. 하지만 괜찮았다. 가장 가고 싶던 학교에서 석사 과정 합격 통보를 받았다. 가상현실 분야에서 인턴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턴은 학생 잡으로, 학생 잡은 정직원으로 이어졌다. 내 도망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아무것도 남지 않자 그 빈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기쁨이 아닌 허무감이었다. 내 도피는 나를 안주하지 못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더 이상 증오라는 연료가 남지 않은 내 삶은, 내가 사랑하던 것조차 함께 태워버린 내 삶은 이제는 무엇으로 나아가야 하는 걸까. 주억주억 쏟아낸 내 문장을 참 좋더라고 말해줄 사람이 없는 이 이역만리 타향에서, 더 이상 언어로 내 영혼을 토해내지 못하는 이곳에서, 인생에 맞닥뜨린 크고 작은 문제를 자기 일인 양 봐줄 사람 하나 없이 나는 이제 대체 무엇을 보고 걸어가야 하는 걸까.
증오와 슬픔이 내 약한 사랑과 갈망을 마구 할퀼 적에 나는 그 마음들을 지킬 힘이 없었다. 그 괴물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마음 한편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조각들을 집어 든다. 한 땀 한 땀 기우고 솜을 채워 넣으면, 어쩌면 이것도 꽤 근사해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한순간도 빠짐없이 사랑했던 것들을 기우고 앞으로도 평생을 사랑할 것들을 보태자. 사람, 인간이라는 존재, 이 순간, 이 세상. 그 모든 것들은 나만이 만들 수 있는 색깔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언어 이상의 찬란한 것들을 보태나가다 보면, 그 자체로도 세상을 밝힐 수 있음을 믿는다. 온전한 세상을 기대하는 대신, 나 자신이 온전해질 수 있음을 믿는다.
발전하고 나아가지 않는 삶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 했던가.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은 어려워서 또 찬란하다. 그래, 되었다. 지금의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더라도, 설운 날도 자랑스러운 날도, 스스로의 나아질 구석을 보면 그것으로 된 거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면 인생은 족한 것이다. 죽을 때쯤 돌아본 내 인생에 눌러앉은 자리가 아닌 누군가와 걸은 발자국이 보인다면. 서른, 마흔, 쉰에 문득 뒤를 돌아볼 때, 나의 이십 대가 방황한 어지러운 발자국 속에서도 방향이 보인다면. 그럼 그 삶은 더 세상을 보기 위해 시간을 좀 더 보낸 것일 뿐, 결코 길을 잃은 것이 아닐 테다.
스물한 살의 내가 마흔한 살의 내게 쓴 편지를 몰래 훔쳐 읽었다. 불안과 슬픔으로 떨고 있는 그 어린 나를 안아줄 수 있다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지금 나는 모든 것이 좋아. 곧 모든 것들이 좋아질 거야. 하고 전해줄 수 있다면. 다 좋아질 거다. 여태까지 그랬으니까. 내가 믿는 세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그런 미약한 힘이 우리에게는 있으니까. 너의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괜찮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