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영상은 이온겸 낭송가가 진행하는 ‘이온겸의 문학방송’에 전화로 연결해서 제가 낭독을 한 후에 이온겸 낭송가가 그 전화 녹음을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그 영상에 제가 클라리넷 ‘사노라면’만 넣었습니다.
이종섶
추위가 닥쳐야 꽃을 피우는 산동네
시커먼 진흙구덩이에서 건져 올린 연탄이
빨갛게 피어났다 사그라드는 계절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과 별들이 뜨고 질 때
붉은 꽃도 하염없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불꽃을 가꾸는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하다
달동네 맑은 공기를 먹고 자란다는
그 귀하디귀한 꽃을
하루가 멀게 두세 송이씩 피워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난로나 보일러 아궁이에 숨겨두면서
가족들에게만 쐬게 해주는 온기
저물었을 때만 모습을 드러낼 뿐
만개하는 동안에는
그 형상을 보여주지 않는 신비의 꽃
매서운 칼바람을 먹고 사는 탓에
투명한 향기 속 맹독을 지녀
한 번 물리면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백련으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생
빙판길에 하얗게 으깨어 납골 된다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등 밟고 무사히 가라고
바닥에 까는 압화는 겨울에도 얼지 않아
발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마른 눈물을 쏟아내는 노인들
가난한 세상 흐드러지게 피었다 저무는 동안
공기로 가득 채웠던 뼛속에서
푸드득 핏덩이 새떼가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