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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섶 Nov 05. 2017

크로스 오버의 벽을 만든 팬텀싱어2

팬텀싱어2의 새로운 흐름은 강했다. 아무도 막지 못했고 모두가 휩쓸렸다. 심어지어는 심사위원인 프로듀서들까지도 그 흐름 아래 편입시켜버렸다. 대세가 되었고 그 세력 아래에서 누구도 도전할 수 없었으며 성공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섣부른 아류적인 음악들을 양산하기 바빴고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채 모호한 음악을 하기에 분주했다. 팬텀싱어2의 흐름이 그랬다. 그 흐름이 결국 승리했다.    


새로운 흐름이 과연 크로스 오버에 적합한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크로스 오버를 통해 양쪽을 통합하거나 통합하는 시도를 할 때, 양쪽의 정서와 본질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정서와 본질을 충분히 녹여내고 발휘하여 그 정서와 본질의 지지층들에게 효과적으로 통합의 가이드를 제시하고 이끄는 것이 크로스 오버의 궁극적 역할이다.     


팬텀싱어1에서는 이 효과가 잘 버무려져서 크로스 오버의 정서와 맛이 극대화되었다. 그러나 팬텀싱어2에서는 오히려 기존에 대두되었고 열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던 팬텀싱어1의 흐름에 반하는 새로운 흐름이 대두되었다. 정서와 위로라는 기존의 컨셉트 또는 팬텀싱어의 컨셉트와는 달리 정서적 공감이 부족한 상태의 보는 무대와 듣는 음악에 바탕을 두면서 새로운 영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 새로운 흐름은 승승장구하면서 팬덤을 형성하였으나 반대로 수면 아래에서는 그 흐름에 점점 반발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생겨나고 마침내 안티적인 성향을 보이기까지 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근본적인 정서와 본질 자체가 다른 음악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청중은 아마도 클래식에 기반을 둔 사람들일 것이다.     


클래식 정서를 포함하는 음악이 아니라 클래식 정서와 관계없는 음악에 대한 불만족, 클래식 정서를 도외시 하지 않는 음악에 대한 갈급함.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도 경계심을 갖지 않았다. 그것이 결국 통합을 시도하는 크로스 오버의 팬텀싱어에서, 통합으로 나아갔던 팬텀싱어1을 제쳐둔 채 자기 갈 길을 가버린 형국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새로운 흐름은 탈 팬텀싱어적이다. 그런 면에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사람은 대단한 측면이 있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결국 팬텀싱어를 뚫고 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끝내 정서와 위로라는 팬텀싱어의 화두를 던져버렸기에 정서와 위로를 원하는 지지층들이 등을 돌리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팀에게는 유익이 될 것이나 클래식 지층의 영토는 잃어버린 팬텀싱어2, 크로스 오버의 벽을 넘은 듯하나 오히려 크로스 오버의 벽을 만든 팬텀싱어2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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