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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섶 Jan 14. 2022

구름 세탁소 / 이종섶 시, 이종숙 낭송 & 영상

이종숙 선생님께서 제 ‘구름 세탁소’를 낭송해주시고 영상까지 이렇게 멋지게 만들어주셨네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구름 세탁소     

이종섶




더러운 구름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우당탕탕 소리가 나서 뚜껑을 열어보면

물방울들이 심하게 엉켜 있다     

바람 몇 스푼 더 넣고

물높이를 최고로 맞춰 다시 돌린다


얌전하게 굴다 잠드는 구름의 보푸라기들

블랙홀이 돌아가는 순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햇빛에

별들의 그림자가 낀다


이것을 빨아서 납품하면 돈벌이가 될까 싶어

얼굴만 떼어내 세탁기에 넣고 돌린다


비명버튼을 눌렀는데 이상한 냄새가 난다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거리며 맡아보니

아직 빠지지 않은 별들의 상처


밤마다 구름을 세탁하면서

한 주먹씩 넣어야 하는 푸른 빛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면 마찰에 의해 떨어지는 유성우

눈이 멀까 싶어 급히 얼굴을 빼내는 순간

두상은 멀쩡했으나

속은 물로 가득 차 버렸다


미처 꺼내지 못한 표정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망설일 때

부시시 울리는 전화벨

눈물을 배달해 달라는 주문이다


메아리가 외출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눈물 한 접시를 들고 나섰으나 찾을 수가 없다


안개를 두드려 수소문한 끝에

바람의 거리 끝자락에 산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공간 이동을 부르는 초인종을 누른다


어두운 침실로 데려가 돈 대신 쥐어준 바람 한 장

깡마른 별 하나가 눈물을 찍어 맛을 본다

물기가 다 증발해버린 날은

지상에 가라앉은 구름을 수거한다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백수의 나날


단칸방에 놓여 있는 유일한 가전기구 세탁기가

배를 비워놓고 입맛을 다시는데

구름을 맡긴 비가 언제 찾으러 올지 몰라


바람만 만지작만지작     

https://youtu.be/tS8XjSIdM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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