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 이찬원이 결승으로 가는 준결승 무대에서 부른 곡은 ‘잃어버린 30년’이다. 이찬원은 미스터트롯에 등장하자마자 ‘진또배기’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계속되는 무대와 노래 끝에 인기투표 1위를 거머쥐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무대에서 ‘잃어버린 30년’을 불렀다.
이찬원이 준결승에서 부른 ‘잃어버린 30년’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가창이 아닌 선곡 때문이다. 이찬원의 가창이야 이미 확고하게 입증된 바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없다. 그러나 선곡은 그때그때마다 예외적인 상황을 만든다.
이찬원이 준결승 무대에서 ‘잃어버린 30년’을 부르고 받은 점수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으리라 생각된다. 이찬원을 생각하면 낮은 점수고, 그날의 가창을 생각해도 낮은 점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낮은 점수’라고 생각하는 것에 함정이 있다.
이찬원의 준결승 점수를 낮은 점수라고 생각하는 것은 준결승 무대만을 생각해서 판단하기보다 그간에 이찬원이 만들어놓은 후광효과가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결과다. 즉 ‘이찬원이라면 이 정도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암암리에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심사와 그 무대의 심사는 이전의 무대를 참작해서 판단하기보다 현재라는 무대를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찬원의 현재 무대에서 불려진 ‘잃어버린 30년’은 가사의 특징으로 인한 공감성의 획득과 공감성의 확장이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는 곡이다.
이산가족을 다루는 가사이기 때문에 이산가족의 현실에 연결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적극적 공감자가 되기 어렵다. 이산가족은 보편적 공감이라는 측면에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찬원이라는 가창을 앞세웠어도 공감력이 파괴적으로 뻗어가지 못한 것이 그 이유다.
경연 과정에 참가한 관객들에게 투표권까지 주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노래를 선택해야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타이밍이 맞지 않는 이산가족 노래를 불러 관객들이나 심사위원들은 다소 이찬원이 제공한 무대에 감정을 이입해 뛰어들기보다 그 무대의 감정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찬원이 얻은 것도 있다. 그날 무대 아래에 있는 관객들보다 티비를 시청하고 있는 이산가족과 6.25 세대에게는 그 어떤 노래와도 바꿀 수 없는 감동적인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나이가 많고 연로한 세대의 한과 아픔을 진정성과 호소력을 가지고 가슴 깊이 위로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보면, 이찬원은 현재의 순위가 한 계단 하락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지만 이찬원의 팬층을 형성하고 단단하게 구축하는 차원에서는 그 영역과 연령대가 또 한 번 확실하게 넓어진 단계였다고 하겠다.
당장은 아쉽지만 앞날을 내다본 선곡. 물고 물리는 영토 싸움에서 외연을 확장하고 확보하기 위해 정공법을 버려 얻은 선곡. 이것이 수평과 수직으로 팬층을 넓혀가는 이찬원의 ‘잃어버린 30년’이 가진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