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트롯 결승전 관전평
보이스트롯 결승전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뜻밖이었고 정말 의외였다. 그것은 박세욱이 최총 우숭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박세욱은 일찍부터 의아한 대상이었다. 경쟁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가창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만큼 뜨지 않았었다. 잘 준비된 모습과 오래 기다려온 간절함에서 미래를 위한 확실한 디딤돌이 놓여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자 중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박세욱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것은 ‘노래를 듣고 평가하는 나의 감이 부정확한가? 나의 감이 떨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는데, 이 의문은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내내 지속되었다. 동시에 레전드라고 하는 심사위원들의 객관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지속되었다. 트로트 출신 레전드로서 이미 익숙한 입맛의 트로트보다 뭔가 색다른 기호의 트로트를 원하고 즐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밑바닥에 내내 가라앉아 사라지지 않았었다.
더욱이 심사평에서 자주 듣게 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류와 같은 중심 없고 균형 없는 취향 발언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평가를 들으면서, ‘박세욱은 뜨지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큰일이 터지고 말았다. 바로 박세욱이 결승전에서 우승을 하게 된 것이다. 박세욱은 준결승 무대에서 최종 5위를 자지했다. 그동안의 흐름과 분위기로 봐서 5위를 차지한 박세욱이 결승에서 우승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저 잘 하면 한두 순위 더 위로 올라가는 정도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그런 박세욱이, 결승에 5위로 올라간 박세욱이 결승전에서 최종 우승을 했다. 이런 결과라면 뜻밖의 반전으로 인해 환호성이 터져야 하는데 결코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박세욱이 결승에 올라가서 우승을 다툴 거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긴장감이 사라져버린 흐름 탓이기도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우선 결승전에서 ‘전문가 심사위원단’이라는 별도의 심사 그룹을 운용한 것이 주효했다고 보여진다. 이 전문가 심사위원들이 판을 흔들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신의 한 수와 같은 전문가 심사위원들을 구성한 것은 어떤 의도였을까. 그동안의 흐름에 이어진 화려한 엔딩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동안의 흐름에서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서였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보이스트롯 결승전 이후를 내다보기 위해 반전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제작진이 장착한 노림수였을까.
전문가 심사위원단의 등장은 보이스트롯이라는 프로그램에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안겨주었다. 절반의 성공은 박세욱이 우승을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것이고, 절반의 실패는 그동안의 흐름에 이어지는 완벽한 엔딩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뒤늦게라도 흐름을 돌려 놓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프로그램 자체라는 완성도를 보면 그동안의 흐름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레전드라고 불리는 심사위원단의 객관적이지 못한 취향의 기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른바 후광 효과 또는 기존 이미지의 지속적인 고착의 요인으로 보인다. 한번 마음에 들면 계속 호감을 보이는 것이고 한번 어딘가 모르게 부족하다고 보면 계속 그렇게 보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감정심사’ 또는 ‘기호심사’와 같은 말이 떠올려지는 것이다.
그 결과 앞에서 말한 이유들로 인해 보이스트롯 결승전 무대는 흐름의 연장선에서 포텐이 터지지 못한 채 어정쩡한 엔딩이 되고 말았다. 결승전과 같은 흐름과 골격을 좀 더 일찍 준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대목이다.
더불어 결승전 3부의 탑쓰리 무대와 효과도 기대했던 것만큼 그리 크지 못했다. 이미 듀엣 미션과 개인 미션을 통해 확실하게 결정된 느낌이 강해서 그런지 탑쓰리 무대는 경쟁심 없이 편안하게 부르는 디저트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이 결승전 2부에서 정해진 순위에 나타난 이변과 뚜렷함, 그리고 탑쓰리 무대와 선곡 때문이기도 했다.
예컨대, 김다현의 경우는 경쟁 프로이면서 결승무대이면서 탑쓰리 결정전이면서 최종 우승 결정전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감정을 잘 다스려 울지 말았어야 했다. 통제된 울음은 곡의 몰입과 수준을 깊게 만들지만 통제되지 못한 울음은 곡을 경쟁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수함과 아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곡을 제대로 부르지 못한 부족함을 상쇄한 것이 다행이었다.
조문근의 경우는 선곡의 문제가 두드러졌다. 그간 보여줬던 임팩트가 사라진 노래, 경쟁과 관계없이 편안하게 부르는 노래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탑쓰리를 결정하는 무대에는 너무 맞지 않는 가벼운 노래였다. 왜 이런 노래를 선곡했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차라리 “울엄마”나 “어매”를 불렀다면 정말 강렸했을 무대를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문근의 탑쓰리 결정전 선곡 “홍시”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으로 남을 것이다.
조문근의 선곡이 심심해서였을까. 아니면 김다현의 울음을 오히려 감동으로 받아준 또는 부모의 심정으로 들어준 효과 때문이었을까. 노래로만 보면 조문근이 당연히 2위를 했어야 했는데 의외로 김다현이 2위를 했다. 정동남이 노래를 부르다 사레들린 것 때문에 탈락한 것과 비교하면 형평성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나 애교로 넘어가야 할 것으로 본다.
글이 길어졌다. 이렇게 길게 쓰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많았던 때문이다. 글의 마무리로 돌아온 지금, ‘결승전에서 최종 우승한 박세욱은 결국 묵묵히 그리고 끝까지 요동하지도 않고 밀리지도 않은 채 뚝심과 뒷심을 발휘했다’라고 쓰고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뒤집기 한판의 승부를 벌인 박세욱의 진가가 지구력이 강한 승부사 기질로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강한 지구력을 입증한만큼 박세욱은 오래 가리라 믿는다.
진국 박세욱,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