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구쟁이, 그대에게
JTBC 싱어게인 오디션은 무명가수전이다. 참가자들이 말 그대로 무명 가수들이어서 ‘무명 가수’라고 언급을 해서 무명 가수인 줄 알지 그런 말이 없으면 가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낯선 참가자들 뿐이다. 심지어는 가수가 맞나 싶은 정도의 얼굴들이다. 얼굴로 가수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들이 정말 무명 가수가 맞는 말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하나같이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런 무명 가수들이 만들어내는 무대가 참으로 신선하다. 무명가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가창이면 가창, 편곡이면 편곡, 하모니면 하모니 같은 실력들이 매우 탄탄해서 기존의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무대와 노래를 보여주는 싱어게인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의 기대 또는 우려와는 달리 완전한 반전을 이룬 프로그램이 되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중에서 한 명의 여성 솔로 가수 23호와 두 명의 남성 듀엣 가수 32호가 팀을 이룬 “강력한 운명”의 노래가 단번에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편곡하는 실력이 대단하고 편곡을 살려 표현하는 가창력 또한 매우 뛰어나서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저런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무명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이 깊이 솟아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먼저 김창완의 산울림 밴드가 부른 "개구쟁이"에서 드러났다. 편곡을 잘한다고 해도 보통은 편곡을 해서 실력을 드러낼만한 곡을 선택하는데, “강력한 운명”은 아주 단순하고 심플한 노래 “개구쟁이”를 선곡한 것에서 처음에는 기대보다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동요 같은 노래, 아니 동요인 노래를 과연 얼마큼 편곡할 수 있을지 괜한 걱정부터 앞섶다.
그런데 그런 우려스러운 예상을 깨고서는 멋지고 근사한 편곡을 해냈다. 곡이라는 질료 자체가 편곡을 해서 살릴만한 것이었다면 편곡을 잘해도 원곡 자체가 좋아서 그랬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런 생각을 알고나 있었다는 듯 보란 듯이 깨버리는 반전의 선곡이 그 단순한 노래 “개구쟁이”여서 편곡의 세련됨과 독특함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였다고 하겠다.
두 번째 노래는 신해철의 “그대에게”였다. 이 곡의 편곡 또한 오디션의 백미라고 해도 될만큼 개성과 실력의 바탕 위에 구현된 참신함과 특별함의 조화였다. “강력한 운명”이 부르는 신해철의 “그대에게”는 과장해서 말한다면, 아니 진심으로 말한다면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버전의 "그대에게"만 있었다. 오직 “강력한 운명”의 “그대에게”만을 노래하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과 자신의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참신함과 개성으로 무장한 “강력한 운명”이 기존의 팀이 아니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싱어게인. 기존 오디션에서 볼 수 있는 가창과는 분명 다른 느낌의 노래와 무대가 거기에 살아 있었다. 무명 가수라고 해서 목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무명 가수라고 해서 노래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무명 가수라고 해서 끼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의 가수들과 차이가 전혀 없는, 아니 그에 못지않고 그 이상인 가수들이기에 충분했다.
무명 가수들의 무대와 노래를 보고 듣는데 처음에는 그들이 왠지 측은하게 보이지 않을까 염려했었으나, 이제는 그들이 이 땅의 모든 무명들을 위해 노래하며 위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싱어게인이 획득한 최대의 가치이지 소득이라고 해도 결코 과인이 아니었다. 무명도 저렇게 실력을 갖추고 있고, 무명도 저렇게 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준 특별하고도 값진 선물이었다.
무명 가수들에 대한 편견이나 부족한 이미지를 불식시키고도 남을 노래와 편곡과 가창을 보고 듣는 내내 그들은 각별하다는 생각으로 다가왔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무명에 속하는 사람들이니까. 그 무명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들이니까.
무명들이 무명들을 노래하는 무대 싱어게인! 무명들이 무명들에게 위로받는 싱어게인! 무명들이 무명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싱어게인! 그 무대 위에 "강력한 운명"이 있었다. 당당한 자신감과 참신한 개성으로 똘똘 뭉친 23호 가수와 32호 가수가 있었다.
무명을 예찬하며 무명의 미학을 보여준 그들로 인해, 무명이 유명으로 가야 하는 과정이나 미진함이 아닌 무명이라는 위치, 나아가 무명이 무명이라는 진가를 만들어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쟝르적 존재감을 예시(例示) 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이 될까. 그럴 수 있다고 할지라도, 이 말을 그들에게 반사하고 싶다. 그들은 앞으로 빛나야 하니까. 아니, 앞으로 빛날 것이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