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말했다 "난 엄마랑 마음이 잘 안 맞는 것 같아"
규칙을 어겨 사랑의(?) 매를 맞은 아이가 자면서 얘기했다.
"난 엄마랑 마음이 잘 안 맞는 것 같아"
괘씸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래? 그럼 너 엄마 미워서 엄마랑 살기 싫겠네?"
당연히 울고불고 잘못했다며 다신 안 그러겠다는 다급한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아이는 전혀 예상 밖의 충격적인 대답을 했다.
"음.... 그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해. 가끔 만날 수 있으면"
갈등이나 문제 상황에서 아이는 머릿속에 '단절'을 떠올렸다. 섭섭함보다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문제 상황'을 만났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끝내거나 단절시키는 것을 배운 것은 아닐까.
며칠 밤잠을 설친다. 내 마음 깊숙한 곳은 들여다보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고, 잊고 싶은 생각을 쫓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나를 시끄럽게 하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찾아 그 이유를 찾아 추척해봐야 어지러운 마음이 정리될 것 같다.
1. 나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돈인가?
첫 번째 독립을 위한 시도는 실패했으나 사실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다 보니 마음속 한구석에선 자신감이 생겼다. 혼자, 스스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돈 버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자신감. 그럼 문제가 돈은 아니네
2. 아빠의 건강?
아빠의 생명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아빠를 만나는 것이 두렵고, 불안하다. 마지막이 되진 않을까 어느 날 병원에서 갑자기 전화가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고 일어날 일을 예비하며 마음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
3. 아이들?
아이들은 아직은 나의 손이 필요했지만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부분들이 많아졌다. 큰 아이는 내가 학교에 픽업을 갔을 때도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하교를 하곤 했다. 게다가 아이들은 나의 부재에 해방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 내가 일로 인한 두어 시간의 외출을 이야기하면 밝고 기쁜(부정하고 싶지만) 목소리로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라고 말을 했다. 그럼 아이들 때문은 아니네
'그래 돈도 벌 수 있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큰 문제는 없어 보여. 이제 열심히 돈을 벌고 나를 찾는 거야!' 그렇게 여러 갈래의 마음을 매듭지으려고 하니 한 두 개의 마음이 남았다. 찜찜한 마음에 다시 나에게 물어본다.
'돈을 벌면? 돈을 많이 벌면? 뭘 하고 싶어?' (이쯤되면 정신분열증 환자라해도 될만하다)
"재산분할을 원하며 이혼 깃발 들고 버티는 그에게 반을 주고 나가라고 하는 거지. 만 원짜리로 찾아와서 확 뿌려버릴까? 대따 통쾌하겠네. 아냐 증거가 남아야 하니까 통장으로 보내야겠네. 첫 아이 때 구입한 차도 바꾸고, 그렇게 셋이 실컷 먹고 쓰고, 때마다 호캉스도 즐기고, 여행도 다니고, 소리가 아주 멋진 바이올린도 사주고, 피아노도 사주고 말이야"
그리고......?
난 이렇게 욕심 없는 인간이었나? 야망도 꿈도 없는 모지리였나? 하고 싶은 일들은 금세 동이 났다.
이혼이라는 역경을 딛고 성공한 여성들의 얘기는 힘든 결혼생활을 하는 여자들에게 희망의 길을 제시한다.
때가 어느 때인데 참고 사냐, 예전과 달라졌다, 엄마가 아내가 아닌 나 자신을 찾으라고 제안한다.
나 또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것보다 '이혼을 하는 것이 용기 있는 행동'이고 자신 있는 현대 여성의, 배울만큼 배운 여성의, 능력 있는 여성의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용기'가 없어 빨리 결단하고 행동하지 않는 나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안 맞으면 헤어지는 이혼은 차라리 쉽다. 미운 사람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다. 누군가는 헤어짐, 이혼 그것이 도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의 마음은 자꾸 머뭇거렸다.
진짜 쪽팔리게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회복이었다. 난 진심으로 회복을 원했다.
이혼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여성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경제적 독립이라고, 이제 나의 갈 길을 가겠노라 당당하게 그 길을 안내하겠다고 야심 차게 연재를 시작하더니 회복이라니...
※드라마 같은 격정의 시나리오와 감정을 격하게 오르내리는 사건 대신 김 빠지고, 힘 빠지고 지루한 이야기들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과감한 이혼과 그 과정을 보기 위해 구독하셨던 구독자 분들께 실망을 끼쳐 고개 숙여 사과드려요.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아빠의 빈자리가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회복, 용서, 사랑
그걸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호불호를 따르는 것이 아닌
가치를 따르는 삶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