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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Nov 13. 2020

보험 아줌마는 아무나 하나

이혼을 위한 경제독립 첫 시도 그 후...

나무에 간신히 달려있는 마른 잎들은 작은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채 위태롭게 아직 붙어있는 마른 잎은 마치 우리 아빠를 보는 것 같았다.

"자주 보러 오세요" 또 재발한 폐렴 치료가 시작된 얘기를 전하며 주치의가 말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항공 예약을 한다. 

오늘 전화로 듣는 소식은 왜 다 이모양인지 밤이면 불을 밝혀 공부한 것이 벌써 2주였는데 보험설계사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시험장에서 나와 교육을 담당하던 코치에게 "난이도가 중하 정도 된다"라고 얘기했던 내 모습이 가장 먼저 떠 올다. 시험 결과가 궁금한 친구에게 단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고 부연설명까지 덧붙였는데  "그거 떨어지기 어려운 시험이라던데.."라고 말하며 깔깔 웃는다. 엄마로, 여자로 '독립' 하기 위해 착실하게 계획했던 첫 계획이 보기 좋게 지연되었다(실패가 아닌 지연이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과거의 피드를 만났다. 8년 전 그날 나는 '의미 있는 것'과 '무의미한 것'을 구분하려 애를 썼다. 예를 들면 그때 '무의미한' 스크린 골프에 푹 빠져 돈이나 시간을 쓰는 남편의 삶이 참으로 답답했다. 그때 내가 생각하기로 '의미 있는 것'은 아이의 순간순간의 변화나 성장을 지켜보며 행복을 느끼는 것, 우리의 집을 사는데 집중하고 돈을 아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미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를 구분 짓던 명철함(?)도 나이가 들었다.


보험회사 교육장에 붙어있는 각종 성공담 인터뷰와 회사의 혜택을 보며 꿈에 부풀었었다.

보험회사 교육장에 꼬박 2주를 드나들며 공부를 했고, 나는 멋지게 한 문제 차이로 보험설계사 시험에서 탈락을 했다. 2주간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했는데 내 맘은 담담했다. 

세상에서 내가 보낸 모든 시간 속에 '무의미 한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철저한 계획 속에 하루를 시작하며, 시간별로 단 1분도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그래야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고 믿었지만 따뜻한 가을볕이 내리쬐는 벤치에 누워 눈을 감고 있을 때 난 삶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와 나는 사랑도, 미움도 아무것도 없는 텅 빈관계로 지내고 있다. 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았는데 감정의 어느 한 부분이 냉동 동결된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아무리 살펴도 미움도, 사랑도, 억울함도,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어떨지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이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또는 끊기 위해 더 열심히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의미 중독자였던 내가 말을 한다.

의미를 찾기 위해선
무의미를 필수적으로 마주해야 한다.


의미 중독자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내가 마무리를 한다.


의미 없는 시간은 없다.

의미 없는 순간은 없다.

의미 없는 사건은 없다.

의미 없는 만남은 없다.

의미 없는 사람은 없다.


학교 앞 나무에서 제법 토실한 구실잣밤이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떨어진 잣밤을 밟고 지나갔지만 아이는 한 알, 한 알 잣밤을 주워 한가득 주머니에 넣어 맛있게 까먹었다.

"엄마 난 가을이 좋아. 덥지도 않고, 잣밤도 맛있게 익어서"

잣밤을 주워 먹는 아이의 손이 차가웠다. 나는 양손을 비벼 아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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