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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Oct 31. 2020

D+86 엄마의 꿈=너의 행복은 이미 이루어졌다

나는 그동안 왜 나를 그렇게 막 대했을까?

하루하루 살아지는 대로 살고 싶은데 살아남야만 한다.

굳이 넘지 않아도 산 아래 앉아 이것이 행복이라고 살 수 있는데 꼭 산을 넘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엄마의 꿈은 뭐야? 소원 말이야"

아이가 내게 뜬금없이 물었다.

"난..... 음........ 너희가 행복한 것. 그게 엄마 소원이야"

"엄마 다른 꿈은 없어? 그건 이미 이루어졌어"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작은 심장이 내 가슴에 맞닿아 콩콩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루어진 꿈을 위해 계속 애쓸 필요는 없다.



이것은 나와 남편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이 사건은 내가 마주해야 할 두려움과 맞서야 하는 내 인생에 과제였다.

하루는 고작 24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한 존재에 대한 마음은 24번이 넘게 바뀌었는데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생각나게 했다. 무엇이 나의 모습인지 모를 감정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깔깔거렸다가 깊은 한 숨을 쉬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었다. 

그 날 그가 소리를 질렀을 때 같이 소리 지르지 않았다면...

그 날 그가 화가 났을 때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참았다면...

아니 그보다 먼저 그가 미용실에서 나왔을 때 주차장까지 걸어오라고 하지 않고, 내가 미용실 바로 앞까지 데리러 갔다면...

기억을 거슬러 후회의 마음이 잠깐씩 들 땐 나에게 화가 치밀었다. '정신 차려! 너도 화를 낼 수 있어!'


"병신..." 

그는 그렇게 말했고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똑같이 맞받아쳤다고 했다. 분명한 건 우리를 이혼의 과정으로 끌고 온 것은 그의 그 말이 아니라 내 입에서 나온 그 말이었다. 


"서로 막말하며 사는 건 아니라고 봐"

"넌 그보다 더 한 말들도 나한테 했었잖아!"

단 한 번의 본인을 향한 막말도 허용하지 못하는 그의 위대한 자존심에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얼마나 나를 막 대해왔던가. 감정의 똥물을 뒤집어쓰고도 괜찮다 하고, 내 몸을 위한 영양제 한 통도 사지 못하면서 그의 쇼핑 아이템을 흘깃거리며 분노하는 답답해 미치겠는 나를 본다. 

그는 자신을 끔찍이 사랑했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나는 왜 그렇게 나를 막 대했을까


"난 아직 어려서 이별이 슬퍼" 좋아하는 친구의 이사 소식을 듣고 아이가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며 큰소리로 울었다.

"하지만 은결아 우리가 이별을 안 하고 살아갈 순 없어. 앞으로 우린 소중한 사람들과 헤어지게 될 거야. 하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야." 

"하지만 우지환은 좋은 친구고, 새롭게 만날 친구들이 더 좋은 친구들인지 확실하지 않잖아"

살아가는 동안 아이는 얼마나 더 아픈 이별을 겪게 될까? 

이별을 통해, 아픈 만큼 성숙하게 되는 것은 확실했지만 아이는 그 아픔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의 고통 가운데 가만히 들어앉아, 이 고통이, 이 시간들이 지나가기를 묵묵히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수동적인 자세로 벌을 받는 것처럼 침잠하기보다는 좀 더 이 모든 일들이 '경험'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지금껏 저절로 지나가고, 저절로 해결되고, 저절로 잊히고, 저절로 알게 되었지만 지금은 능동적인 삶의 자세를 가져보고 싶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이혼을 선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원하지 않은 결과가 무서워서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그만하기로 했다. 그의 빨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먹으라고 내밀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아빠랑 곧 화해할 거라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와 화해하고 싶지 않고, 잘 지내고 싶지도 않다. 아이들 일이 아니라면 얼굴도 마주하거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어젠 그의 바다낚시찌가 뭉태기로 배송이 왔고, 오늘은 그의 겨울 점퍼가 배송되었다. 

그의 쇼핑에 '그래 그동안 사고 싶은 게 많았겠지'라고 이해하지 않고 '미친놈 생활비 안 쓰고 쇼핑하니까 신나지? 개새끼...'라고 말했다. 집 대출금을 내며 마치 아빠로서 할 일은 다 한 것처럼 행동하는 그에게 '대출금은 양육비 반도 못 미치니 관리비도 네가 내라'라고 말하기로 했다. 

날 위해 그를 이해하며 '그건 남자들의 문화지'라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 아빠인데 아이가 아빠에 대해 실망할 텐데'라고 말하며 덮어두는 대신 난 그때 상처 받았다고, 그리고 그건 너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다시 잘 지내게 될 것을 대비해 나를 설득시키던 모든 행동을 다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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