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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Oct 22. 2020

D+80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

하필 아이의 하교시간에 차가운 가을비가 내렸다.

"엄마 발가락 아파"

아이는 계속 여름철 신던 크록스를 고집했다. 

"엄마 밥 더 줘"

아이는 머쓱하게 밥공기를 내밀며 말했다. 여느 때라면 기분 좋게 담아줬을 밥인데 밥을 더 담아주는 손이 왠지 작아진다. 쑥쑥 크는 아이, 먹고 돌아서면 배고파를 외치는 아이의 먹성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아이와 해줄 수 있는 것, 해줄 수 없는 것더 이야기해줘야 한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게 해주는 것은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엄마 나 계란 프라이도 한 개 더 주세요"

5만 원이라도 벌어보겠다며 덜컥 매수한 주식은 마이너스 13.2%를 달성하여 이대로 팔 수 없는 상태이고, 통장의 잔고는 46,000원이 찍혀있다.

'그래.. 니 새끼들은 밥 굶기 일보직전인데 소고기 먹이고 잘 먹었다, 고맙단 소리 들으니 기분이 째지더냐? 니 새끼 운동화가 작아져 발가락도 못 펴는데 30만 원 가까이하는 새 낚시 조끼 입으니 어깨가 으쓱하더냐? 나쁜 새끼 XXX... xxxxxxx ' 

방금까진 지적이던 입술에서 고삐 풀린 쌍시옷, 육두문자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속이 시원하다.



#취업전선에 뛰어들다

워크넷에 가입하여 공장, 농장부터 사무직까지 깨알 같은 구직 정보 중에 조건이 맞는 회사를 놓칠세라 꼼꼼히 읽어보는 중이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어서는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가 없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나라에 산다는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옷과 계절에 맞는 신발도 다 필요하다는 뜻이다.

성장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른만큼(또는 그 이상) 많이 먹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작년에 입던 옷을 올해는 못 입힌다는 뜻이다. 

<고수익 알바, 경력단절 여성>

"그런 일이 어딨어 뻔하지." 

예상했듯이 그 일은 '보험 영업'이었다.  통장잔고 46,000원이 머릿속을 스쳤고 바로 면접을 보기로 한다.

"보험 아줌마라니...."

"찬 물, 더운물 가릴 때가 아니야. 우리 딸 요즘 밥 두 그릇씩 먹어, 둘째는 자꾸 고기 찾고.. 도둑질하고, 노래방 나가는 거 말고는 다 할 수 있어"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무겁지만 으쓱한 책임감. 그래 나는 너네들을 먹여 살리고, 철마다 옷도 사 입히고, 따뜻한 집에서, 교육도 잘 시킬 수 있는 그런 유능한 엄마다! 


#이빨 빠진 일상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잘 키우는 걸까?


05:00 시쯤 일어나 따뜻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오늘의 할 일을 정리하고, 

05:30 이른 아침 출근을 하는 남편을 위한 아침상을 준비하면 6시 남편의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06:00 남편은 일어나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 

06:30 난 블로그 포스팅을 하거나, 성경을 읽는다. 

07:30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준비한다. 

08:00 아침을 먹고 있으면 그날 날씨에 따라 아이들이 입을 옷을 골라 거실에 준비해주고, 큰 아이의 머리를 빗어준다. 아이들이 옷을 입는 사이 물통과, 아이들의 휴대폰 등 준비물을 체크해주고, 

08:30  집을 나서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준다. 


틈틈이 숲 길을 걷고, 바다를 찾고, 넓은 하늘을 한 계절도 놓치지 않고 즐기는 것.

지금껏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일을 시작한 이후에도 그런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역시나 가보지 않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 날 망설이게 하고 있었다.


"아 맞다... 나 두려움과 맞서기로 했었지. 하기 싫은 일  두려운 일을 만나기로 했었지" 


30분 단위로 쪼개져 차분하게 유지되던 일상에 갑작스럽게 변화가 시작되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벽부터 일어나 빨래를 해야 했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수건으로 감은 채 거실을 뛰어다녀야 했다. 아이들의 옷가지나, 준비물을 챙기는 것은 과한 친절이었다. 

"언제까지 엄마가 이걸 챙겨줘야 하냐"라고 다그치는 날도 생겼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갑자기 똥이 마렵다는 아이를 기다려줄 여유도 없었다. "왜 하필 이때 똥이 마렵냐"라고 인상을 쓰며 아이를 쳐다보면 아이는 정말 미안한 표정으로 힘을 주며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정말 미안해 나는 왜 자꾸 아침에 현관에서 똥이 마려울까?"

학교 픽업을 완벽하게 해 주고, 집에서 배고프지 않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나쁜 영상에 노출되지 않게 막아주고, 방과 후 시간엔 책도 읽을 수 있게 지도해주고, 매일 함께 책과, 영어 영상을 보고, 영양만점 정성스러운 저녁을 제공하는 것. 심심할지도 모를 아이들과 보드게임 한두 판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

내가 엄마로서 꼭 이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완벽한 엄마 역할의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골고루 음식을 먹듯 하루 일상에 공부와 여유시간을 꼼꼼히 박아놓은 일상에서 하나 두 개가 자꾸 빠졌다.

모든 '균형'이 깨지자 '엄마의 힘'이 빠졌다. 내가 포기를 한 건지, 현실과 타협을 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었다. 


아이의 하교시간에 딱 맞춰 후둑후둑 가을비가 내렸다.

'제주의 깨끗한 비는 좀 맞아도 된다'며 아이들과 깔깔거리고 다녔었는데, 우산 없이 버스를 타고 집에 와야 할 아이 생각에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괜찮아. 이제 이럴 날도 많은데 아이도 익숙해져야지'라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문자가 온다.

'응~ 은결 엄마 오늘 일 보러 간다며. 비가 오는데 은결이 혼자 버스 타고 힘들까 봐 내가 태워줄까 해'

오늘 수호천사의 도움이다. "너무 고마워요. 걱정하고 있었어요"라고 얘기하면 된다.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을 싫어하고, 신세 지는 것은 싫어하고,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것도 싫어하고, 부탁은 죽어도 못한다는 나의 벽이 허물어졌다. 

매일 내 울타리에서 아이들을 잘~~ 케어하던 나의 벽도 허물어졌다.

든든하다고 생각했던 가장의 벽 또한 없어졌다. 

나의 모든 견고한 벽은 남김없이 허물어졌고 나는 분명 '무방비'상태가 된 것이 분명했다. 


인생에 잃기만 하는 게임은 없다. 
흔적만 남은 벽을 넘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견고한 벽(또는 균형) 안에서 마음대로 할 자유보다 더 큰 자유를 만난다.
(어쩌면 편안함, 안락함에서 만날 수 없는) 진짜 '나'도 찾을 수 있다.

마스크를 빨아 널고 잠자리에 눕자 아이가 내 손을 꼭 잡는다. 엄마를 향한 너의 응원이다. 너의 응원 속에 엄마는 집 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다.


"언제나 떠날 수 있었어. 그러나 그러려고 하지 않았지. 마음만 먹으면 진실을 알 수 있었지만, 시도하지 않았어. 그런 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이야."

[출처] 영화 트루먼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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