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글을 쉬었어. 나의 생각을 생각하고싶지 않았거든.
그리움, 미안함, 죄책감, 미움, 원망 부정적인 생각을 글로 남기면 그것들이 영원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나?
익숙한 길을 혼자 걸었어. 봄볕에 수줍은 연두 빛이었다가, 여름비에 반짝이던 건강한 초록 잎이 말라 비틀어지며 바닥에 떨어지는 숲길을 걸으며 또 쓸쓸해지는거야. 산을 누비며 열매를 따먹던 까마귀들은 사람들의 부스럭 거리는 과자봉지소리에도 귀를 쫑긋하며 사람들 곁을 떠나질 않고 부스러기를 가장 잘 주워먹을 수 있는 자리를 놓곤 깍깍싸워대. 배고픈 까마귀들에 둘러쌓여 초코바를 먹는 기분은 무지 불편하지. (기대어린 까마귀들의 눈 빛을 보면 자기들 몫을 전혀 남기지 않은 나를 쫓아와서 머리를 쪼아대는 끔찍한 상상)
따뜻한 봄날 다시 시작되는 자연속에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은 희망이 있지만
계절의 끝날쯤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속수무책으로 가슴 깊이서 올라오는 탄식을 내뱉곤 해. 따뜻하게 나를 품어만 주던 자연이 어느날 나를 내치는 기분이 드는거야.
"난 그리 따뜻하지 않아. 아주 냉혹하고 냉철하지"
늘 따뜻했던 연인이 어느날 이별통보를 하는 기분이라고 말하는 기분, 성인이 되자마자 부모님이 이제는 독립을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기분.
어쨌든 이 계절엔, 무성한 잎이 떨어지고 나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어.
봄여름을 통해 내가 키운 나뭇가지는 얼만큼 어디로 향하게 되는지, 나무둥지는 얼만큼 굵어졌는지, 열매를 충분히 맺었는지. 그렇게 나의 '성과'를 온전히 드러나게 될때 나는 혹시 실패하지 않았을까, 열매가 혹시 남들보다 작지 않을까 긴장하고 움츠러들게 되는거야.
나의 기분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연은 어느새 봄 꽃을 준비하고 따지 못한 귤은 가차없이 떨궈버려.
바스락 거리는 낙엽 카페트위에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길이 끝나 있고 깊은 생각도 끝나. 숲을 걷는 진지한 사색가에서 저녁은 뭘로 먹을까 고민하는 엄마가 되지. 집 안에 가득한 아이들 온기에 마음이 놓이네. 소매를 걷어 밥을 짓고, 아이들을 돌보며, 틈틈히 일하는 일상을 시작해. 보드라운 아이의 볼에 차가운 내 볼을 갖다 대며 다시 나를 확인해. 아 이 기분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