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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Jan 13. 2024

엄마로 살아남기(사춘기편)-내 딸의 유서

내 인생에 나타난 또 다른 작은 빌런

출근하는 길 아이의 책상에서 발견된 작은 수첩이 그날따라 눈에 띄었는데 수첩을 한 장 넘기자 '유서'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형식에 맞지 않더라도 이해해달라는 말로 글을 열어 본인 때문에 일하게 된 경찰, 소방관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내용, 나에게, 좋아하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에게 남기는 메시지, 그리고 아끼는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구체적인 지시들로 유서가 마무리되어 있었다. 덜덜 떨며 아이에게 전화를 했지만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 짧은 순간에 별별 생각을 다하며 급하게 학교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이런 글을 써놓은 것을 발견했는데 혹시 학교에 도착했는지 물었다. 


그 와중에도 주어진 일은 해야 하니 집을 나서 운전을 했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건지 생각하는 중에 아이가 학교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다. 

한참 참고 있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었다. 안도감과 함께, 그동안 아이에게 공들여 쌓아왔던 모든 순간들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들처럼 빠져나갔다.


잘 자란(것처럼 보이는) 소녀는 나의 자랑이었다.

누군가는 해외여행 중 구입한 멋진 백이, 누군가는 피트니스센터에서 수개월 다듬은 몸이, 남편의 직업이나, 나의 학벌이 자랑이 되는 학부모 또는 지역 커뮤니티에서 내가 내세울 거라곤 이렇다 할 학원 한번 제대로 다녀본 적 없는 나의 딸이 저학년부터 학원에 돈을 쏟아부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똑똑하고, 집중력이 뛰어나며, 잘 자란(것처럼 보이는) 그것은 나의 면류관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수학, 영어에 돈과 시간을 쏟는 동안 나는 여유 있게 악기나 스포츠 즉 교양을 가르치며 '남들과 다른 노선'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것에 자신감이 생길 즘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나에게 찾아온 그것은 말로만 듣던 사춘기가 아닌가.

내 인생에 작은 빌런이 나타났다!

기억을 되돌려보니 반항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 때는 바로 5학년 즈음이었다. 

사춘기 그런 건 오냐오냐하는 나약한 부모들이 만들어낸 말 아니었나?

이럴 때일수록 반항의 싹을 잘라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확신에 찬 조언을 하기도 했었다. 좀 더 단단히 '하지 말라' 양육법으로 나의 영역안에 넣어놔야 하는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말이다. 육아에 자만으로 가득 찼던 내가 소녀의 말과 행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밤에는 걱정에 잠을 설치고 있다. 드디어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부모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거실바닥에 교복을 입은채로 자....냐?


"하나님 내가 자랑할게 딱 하나밖에 없는데 이것도 뺐어가시나요?"


담배를 피우거나, 화장을 진하게 한다거나,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려 노래방을 다닌다거나 이런 문제들이라면 좀 쉬웠을까?

내 인생의 작은 빌런은 특별한 욕구가 없다. 여느 소녀들처럼 옷이나, 가방, 신발을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 아이돌을 파지도 않는다. 외모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아이에게 욕구가 없다는 것은 부모로서 돈이 들어갈 일이 줄어든 매우 기쁜 일이기보다는 어떤 것으로도 꼬셔지지가 않는다는 것에 더 의미가 크다.

"이거 사줄게 이거 하지 마." "이거 사줄게 그거 해봐" 등 난이도 하에 해당하는 꼬시기 양육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딸이 "엄마 나 이번에 전교 1등 하면 눕시 사줘야 해"라고 말했다는 친구의 하소연에 "좋겠다"라고 대답했다.

누군가 그랬었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제일 쉬운 거야."


저녁에 소녀를 픽업하며 표정을 살폈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차를 탄 소녀가 말을 한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이상한 일이 있었어"

아침에 유서 사건으로 선생님께 전화한 일은 선생님과 나의 비밀이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궁금한 표정과 그게 무엇인지 물어보는 대사까지 곁들여 연기를 했다. 

"내가 아침에 학교를 갔는데 선생님들이 2명이 교문에서 나를 보자마자 양쪽에서 나를 데리고 교무실로 가는 거야. 그러고 막 율무차 이런 걸 타주시면서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셨어"

"그러더니 수업 시간에 위클래스 상담실에서 상담 선생님하고 얘기를 했어. 무슨 힘든 일은 없냐 막 이런 걸 물어보시더라고.. 상담 시간은 그저 그랬는데 한문 시간이라 개꿀이었지" 

나의 연기가 감쪽같았는지 소녀는 학교에서 일어난 재미있고 이상한 일을 집에 오는 내내 얘기해 주었다. 

낄낄대는 농담 따먹기, 밥 먹었냐는 일상의 대화 대신 너의 마음을 알고, 나의 마음을 얘기할 그런 어른들 같은 대화를 십 대 소녀와 시작해야 한다.

진지한 대화 없이 낄낄낄 헛소리만 하다가 죽는 것이 내 바람이었는데 이제 피할 길이 없어졌다. 대화하는 것, 무언가 말로 해결하는 것 30년 넘게 '가장 못하는 일'중 하나를 해야 하는 날이 왔다. 소녀 때문에(소녀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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