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
#밥을 먹는 것=이혼선언을 번복하는 것
롯데리아에서 아이들과 햄버거를 먹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분명 밥을 안 먹었겠지?'
아이를 시켜 밥은 먹었는지, 햄버거를 먹을 건지, 먹을 거면 어떤 햄버거를 먹을 건지 물어보게 한다.
제까닥 답장이 왔다. "응, 불고기 버거"
불고기 버거를 포장해 오는 길에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가 어떻게 햄버거는 먹는다고 하지?"
아이가 당연하다는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햄버거는 엄마가 한 음식이 아니잖아"
'아.. 그런 거구나! 엄마가 한 음식은 안 먹지만 엄마가 산 음식은 먹을 수 있구나.'
1. 컵라면, 저녁엔 어제와 다른 라면
2. 시리얼, 저녁엔 편의점 도시락
3. 편의점 김밥, 저녁엔 다른 종류 라면
그는 집에서 거의 세 가지 패턴의 음식들을 먹었다. 당뇨가 있는 그가 걱정이 되어 아침을 차렸지만 오늘도 먹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 '내가 차려준 밥을 먹는다는 것'은 결혼을 유지할 의사가 있고, 그리고 다시 생활비도 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차려준 밥을 안지 않는 것'은 나는 여전히 이혼의사가 있고, 여전히 화가 나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겠지.
행여 밥 한 숟가락, 반찬 한 젓가락에 마음이 열릴까 수저도 들지 않고, 고대로 옆으로 밀어 흔적을 본다. 내가 내 마음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그도 그의 마음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는 내일의 도시락이 차갑게 놓여 있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귀여운 둘째가 귓속말을 한다. "엄마 왜 아빠랑 이렇게 화해를 안 해?"
"그러게.. 엄만 풀렸는데 아빤 좀 오래 걸리네~? 사람마다 화 풀리는 속도가 다르거든"
아이가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한다. "이상하네.. 난 오늘 절교해도 내일 다시 친구 하는데"
아이에게 마음은 당일치기. 화가 났지만 오늘뿐, 행복했지만 오늘뿐 내일은 내일의 새로운 마음이 시작된다.
#이번 달 눈물 분량이 끝났습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잔뜩 피곤한 목소리로 "너 속도 시끄러울 텐데 이런 소식을 전해야겠다"로 시작하여 아빠가 쓰러진 얘기를 전했다. '엎친데 덮친다'라는 말이 나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집 앞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친 아빠가 집에서 '집엘 간다고' 나서는 등 이상 행동을 보여 엄마는 급히 구급차를 불렀고 의사협회 파업으로 근처에서 입원할 병원을 찾지 못해 2시간 거리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9월에 제주도 오세요~" 하며 통화한 게 불과 며칠 전인데 말이다. 연로하고 걱정 많은 아빠에게 '이혼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제주도로 오시는 일정을 잡지 못해 아빠와의 통화를 차일피일 미루던 차였다.
엄마와 난 수십 년 전 아빠가 돈 벌러 해외로 갔을 때 그때처럼 다시 둘이 되었다. 아빠는 다시 돌아왔고, 나는 반쪽을 찾아 결혼을 했지만 다시 30년 전처럼 엄마와 나 그리고 내가 책임져야 할 아직 어리고 철없는 두 아이들 뿐이었다.
엄마 병원비는 걱정하지 마'라는 마음속의 말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우물우물 입에서 맴돌았다. 낯빛이 변한 내 모습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누구랑 통화를 했는지 물어봤다.
"할아버지가 좀 아프데"라고 대답하며 그네에 앉았다. 발을 구르지도 않은 그네가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앞 뒤로 흔들렸다. 내 온 정신이 현 남편과, 아빠의 문제 사이에서 그네처럼 앞 뒤로 흔들렸다.
"얘들아 엄마 잠깐 일을 해야 해서 30분만 혼자 있을게 문 열지 마"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자 갑자기 막힌 수도관이 뚫린 듯 눈물이 터져 나왔다. 휴지를 풀어 몇 번이고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어냈다.
한 참을 울고 나니 목이 마른다.
이번 달에 흘릴 눈물의 분량이 끝났다. 슬픔의 크기와 상관없이 오늘 이후로는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루에 10끼를 먹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내 몸에 들어올 수 있는 것도, 나갈 수 있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더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날 위로해주었다.
그래 이번 달 눈물의 분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