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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Sep 27. 2020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 3

가을바람보다 차가운 우리 사이

집안의 공기가 차가웠다. 가장 더운 여름, 뜨겁게 싸운 그때 그 열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와 나 사이에서 부는 바람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가을바람보다 더 차갑다.


#어린 시절

엄마와 나 단 둘이 마주하는 가을은 참 쓸쓸했다. 엄마와 나의 모든 계절은 늘 비슷했다. 하지만 여름은 조금 달랐다.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슈퍼 앞 커다란 나무 밑 벤치에 나와 앉아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나에게 큰 이벤트였다. 창문을 통해 밖에서 들려오는 동네 사람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대식구가 생긴 기분이었다. 

창문을 꼭꼭 닫는 계절이 되면 엄마와 나는 집 안에 갇혔다. 집안은 TV 소리로 채워졌고, 그늘을 만들던 커다란 나무의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졌다. 여름을 붙잡고 싶은 내 맘과 달리 큰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면 벤치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나는 가끔 슈퍼에서 과자 한 봉지를 사서 차가운 벤치를 힐끗 보며 따뜻한 여름을 기억하곤 했다. 나에게 창문을 닫는 계절은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그것이 외로움인지 몰랐던 그때 나의 꿈은 '4계절이 없는, 1년 내내 여름인 나라로 이사 가는 것'이었다.



#2020가을

나는 다시 창문을 닫는 계절을 맞이했고, 현재 나의 남편은 날마다 마음의 지퍼를 목 끝까지 단단히 여미어 올리며 출근을 한다. 양손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셋이 놀이터에서 처음 맞은 가을은 하필 어린 시절 그때를 기억나게 했다.

놀이터에서 친구 아빠의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깔깔 대는 아이들을 멀리서 보고 잰걸음으로 다가간다. "아저씨 귀찮게 하지 마" 말하며 아이를 끌어당기는 순간 (분량이 끝난) 눈물샘에 자극이 온다. 잠을 덜 자도, 덜 먹어도, 더 많이 움직여도 '아빠 노릇'을 메우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마주하는 것은 엄마가 대신할 수 없는 '아빠 노릇'이었다.

잠이든 아이를 끌어당겨 안았다.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아이가 잠이 들었는데 아직 잠들지 못한 나는 아이의 따뜻한 체온이 좀 필요했다. 손을 조몰락거리고, 이마에 입술을 비비대고, 아이의 등짝을 가슴에 밀착시킨다. 자기 방에서 자겠다는 큰 아이도 비어있는 내 오른쪽에 눕히고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겨우 잠이 들었다.


#나의 행복과 아이들의 아빠는 공존할 수 있을까?

꼬박 한 계절을 눈길 한 번,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그는 대부분 화가 난 채 굳은 얼굴로 찬바람을 몰고 퇴근을 했다. 나는 그의 손 끝에 꽝꽝 떨어지는 의자나, 실수로 미끄러져 떨어진 컵의 소리로 그의 기분 상태를 짐작했는데 그것은 나의 오감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가 술과 함께 방문을 닫고 들어가고 맥주의 기운이 얼큰히 젖는 시간, 그의 굳은 표정이 이완되는 그 절묘한 타이밍이 되면 아이들은 아빠의 방을 열고 들어가 말을 걸었다. 그러면 그 방에선 아빠와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가 지금 '인내(또는 용서 또는 사랑) 하는 이유는 그 순간을 위함이었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아이들의 아빠가 한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커졌다.


 나에 대한 강력한 거부의 의사인 편의점 도시락과 김밥은 여전히 하루에 한 번씩 냉장고에 맨 앞줄에 채워졌다. 다툼이 끝난 지 두 달째 접어들었지만 그는 화목이나 평화, 행복은 내 것이 아니라고 밀어내기만 했다. 그저 내 앞에 차려진 밥을 먹고자 숟가락만 들면 되는 그 쉬운 상황에서도 그는 차가운 도시락과 김밥, 라면을 자기의 몫으로 선택했다. '깨끗하게 빨아진 옷과 따뜻한 밥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지. 그래 내가 웬일로 몇 달 행복하다 했어. 그럼 그렇지 나에게 어울리는 것은 구겨진 옷과, 수건, 라면이야.'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가 비가 와서 출근을 안 하거나, 주말에 낚시를 하지 않아 온종일 집에 함께 들어앉아 있는 날은 곤욕이었다.

우리끼리 밥을 먹는 것이 아이들 보기에도 머쓱해 밥을 차리면 아이를 향해 '안 먹어'라고 말하고 보란 듯 라면을 끓여 방으로 가져가 작은 상을 펴고 TV 앞에서 먹었는데 큰 아이는 마치 자기가 거절을 당한 것처럼 머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먹어주기를 허용하는 것은 과일이나, 간단한 간식뿐이었다. 그의 방에서 '내 돈으로 사서 내가 깎은' 과일을 먹는 포크 소리가 들리면 아이들이 눈치채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퍼를 목 끝까지 채웠지만 그의 마음엔 작은 틈이 있구나 짐작했다.

오늘도 난 그 작은 틈으로 우리의 사랑이 스며들어 그의 마음이 활짝 열리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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