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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는여자 Oct 10. 2020

결혼과 이혼 사이에서 4

결정은 미뤘지만 행복은 미루지 않기로

화색이 도는 얼굴로 뒤에 따라오던 나를 부른다. "엄마~ 엄마!! 이리 와 봐"

"엄마가 여기 전화해보면 좋겠는데... 부부 문제 해결해준데. 사람도 찾아주고"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날 올려다본다. "그래? 그런데 어떻게 해결해달라고 하지?"

"아 그냥 일단 전화 봐! 엄마" 작은 아이가 다그치자 "야! 넌 눈치 없는 소리 좀 하지 마!" 하며 큰 아이가 눈을 흘긴다.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사람을 찾아주실 수 있어요? 원래 우리 아빠 좀 찾아주세요. 다시 아빠의 자리로 돌아오면 아이들 손잡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야죠. 맛있는 회도 한 번, 고기도 한 번, 사진도 찍고 싶네요" 

"그리고 부부 문제도 해결해주세요. 남편이 우리 이렇게 싸우는 거 그만하자. 서로 노력하면서 잘 지내보자. 날 좋은 날은 아이들과 나들이도 가고, 퇴근하면 아이들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볼게. 내가 매일 마시는 술도, 담배도 끊으면 그러면 생활비 부족하지 않겠지?라고 말해주면 좋겠는데....... 아니 일단 제가 해주는 음식도 먹고, 대답도 하고 그게 먼저겠네요." 


집에서 부지런히 아빠와 엄마 사이를 오가던 작은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철없이 히죽거리는 얼굴로 사실 자꾸만 팽팽하게 반대로 가는 엄마, 아빠를 불러 더 이상 가지 못하게 붙잡았던 것일까? 무심한 듯 보였지만 내색하지 않는 것이 엄마 아빠를 위한 일이라고 궁금해도 묻지 않고, 걱정이 되어도 말하지 않았을 큰 아이의 마음도 알게 된다. 두 아이의 속마음을 알게 되니 눈물이 핑 돈다. "그래 네가 많이 걱정하고 있구나. 엄마가 노력해볼게" 



#요양병원에서 필요한 것은 아빠의 치료가 아니라 자유.

틀니는 병원에서 관리가 어려우니 아예 빼놓고 씹는 자유란 없이 틀니 없이 삼킬 수 있는 유동식을 제공받을 뿐이다. 요양병원으로 옮기기 전 병원에서 아빠가 환자복 주머니 한가득 엄마가 병원에서 간식으로 먹으려던 견과류를 넣어놨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기저귀라니.. 2주 넘게 병원 생활을 하여 다리에 힘이 없긴 하지만 화장실을 갈 시도는 해볼 수도 없다. 간병인들이 부축해서 매번 화장실을 갈 수 없으니 관리(?) 하기 쉬운 기저귀를 착용해야겠지. 

먹을 수 있는 자유와 화장실을 갈 자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자유는 병원 사물함에 맡기고 다만 관리하기 편한 일상들 속에 들어간 아빠. 코로나로 면회가 막혀 영상통화를 하는데 자꾸 목이 잠긴다. 

육지 나들이로 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니 서둘러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제주도'는 나에게 천국과 같은 자유의 섬이었지만 아빠가 그렇게 된 이후부터 멀고 먼바다를 건너야만 하는 섬나라가 되었다.


#또 결심하는 것은 '오늘을 살자'

8월 5일 이전(이혼을 선언했던 그 날)에는 남편이 휴일에 낚시를 가는 것이, PC방을 가거나 집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매일 술을 마시는 것이 나의 행복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시거나, 현 남편이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에 누워있게 된다면 어제였던 오늘이 더 행복했다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수많은 '오늘'을 담보 잡아 훗날의 행복을 기약했지만 그는 달라지지 않았고, 나 또한 비슷했다. 나는 낚시를 가고, PC방엘 퇴근 후에 출근하고, 매일 술을 마시는 그를 온전히 수용하기보다는 완전히 포기했다. 


"엄마 괜찮아?"

큰 아이의 보드를 타다가 앞으로 고꾸라진 내가 창피함으로 엎드려 있는데 작은 아이가 달려와 나를 일으켜 꼭 안아준다. 아이의 가슴이 너무나 따뜻해 고작 8살 꼬마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누군가의 부모라는 것이, 누군가의 인생을 수십 년에 걸쳐 책임지는 것이 무거웠는데, 오늘은 내가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이에게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작은 고사리 손이 나를 일으켰고, 아이의 작은 가슴이 나를 품어준다.

얼굴을 덮은 아이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니 익숙하고, 달콤한 냄새가 난다.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아이의 아빠. '사랑을 주자' 수십 번의 결심에도 여전히 끊어버리고 싶은 결혼의 끈을 붙들고 고민하는 것이 고통스럽기만 하다.

나는 오늘 또 결정을 훗날로 슬쩍 미뤄놓는다.

하지만 행복은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이혼한 후, 일 년 후, 이년 후, 아이들이 큰 후로 미루지 말고 오직 '오늘'을 살자. 그래야 하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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