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불가능'한 성취리스트를 만들었다

by 하루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꿈을 꿔서."


또 눈물이 핑 돌았다.



평소답지 않게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는 내게 짝꿍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요즘의 나는 집안의 애물단지가 된 기분이다. 자랑스럽던 딸을 향해 구박이나 타박이 아닌, 말 그대로 '걱정'조차 조심스럽게 건네는 모습이 날 더 견디기 힘들게 했다. 빨리, 지금 당장 다시 일어나서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는 '나 좀 내버려 둬'라고 말하는 게 다였다. '나 힘들어', '나 걱정돼'라고 말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느니, 못된 내가 되는 게 낫다고 느껴졌다. 다시 고3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혹시 내가 지금 우울한 건가? 슬픈 건가?

무기력한 건가? 그냥 게으른 건가?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었다.



작년 말부터 몸이 안 좋았고, 올해 8월엔 사랑하던 반려견 하루를 떠나보냈다. 하나씩 일들이 겹치며 나는 점점 이불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뭔가 할 일을 찾으면 미친 듯이 몰입하다가 하던 일이 끝나면 다시 길 잃은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했다. 늘 일을 찾아 해야 하고 바빠야만 열심히 사는 것처럼 느끼는 나였다.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뭔가 하나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지금 이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짝꿍은 '작은 성취감'에 대한 책 이야기를 들려줬다. 정말 작은 일들을 해나가며 성취감을 느껴보는 훈련이 도움이 된다는 거다. 체크리스트 만들기라면 또 수백 개 만들어봤을 정도로, 나는 리스트 만들기 광이다. 그걸로 이 기분을 걷어낼 수 있다면, 바로 하겠노라며 성취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또 야심 차게 '100일 100개 작은 성취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리스트를 적어 내려가다 보니 '영어 강의 1 회독, 10kg 감량, 책 완독'처럼... 점점 욕심이 더해져 거대한 TO-DO LIST가 되어갔다. 이런, 리스트를 적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마무리할 수 없는 '큰 일'이 되어버렸다. ChatGPT를 이용해 성대한 리스트 100개를 완성했지만 전부 지워버렸다. 다시 실패감으로 나를 압도하는 리스트를 만들 수는 없다.



애초에 내가 성취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한 목적을 떠올려봤다. '나도 아직 할 수 있다'라는 나에 대한 믿음. 이 무기력함을 밀어낼 수 있는 용기. 그래서 당장 지금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쉽고도 사소한 나만의 '실패 불가능한' 리스트를 작성했다. 이제 계획만 성대해서 또 나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고 좌절할 일은 없겠다.



내가 리스트를 다시 적으며 유의했던 점들이다.


1.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게 적을 것

2. 난이도는 확실히 할 수 있을 만큼 낮게 정할 것

3. 성공 기록은 '체크' 표시할 것

4. 보상: 스스로에게 작은 칭찬을 해줄 것

5. 매일 하는 것과 하루에 한 개씩으로 구분할 것



아래가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다.

아주 사소하고 '뭘 이런 당연한 걸 리스트까지 적어야 하나'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소하다 싶을 정도로 쉽고 일상적이어야 한다. 나를 다시 일으키는 것들은 그런 사소함에 있다고 믿는다.



나의 작은 성취 리스트 0/22


[ 매일 하는 것들 ]

☐ 1. 기상 직후 이부자리 정리하기

☐ 2. 물 한 잔, 약 먹기, 다시 눕지 않기

☐ 3. 자기 전 5분 폼롤러 마사지


[ 하루에 한 개씩 ]

☐ 4. 화장실 줄눈 곰팡이 청소하기

☐ 5. 안 입는 옷 5개 버리기

☐ 6. 옷장 청소하고 제습제 교체하기

☐ 7. 살 빼면 입고 싶은 옷 걸어두기

☐ 8. 콩이 건강검진 하기

☐ 9. 콩이랑 5분간 사냥놀이하고 사진 찍기

☐ 10. 콩이 새 숨숨집 만들어주기

☐ 11. 조카들 크리스마스 선물 고르기

☐ 12. 몸 일으켜 헬스장 가기

☐ 13. 한강 따라 30분간 자전거 타기

☐ 14. 5분 멍 때리기

☐ 15. 1시간 예능 보며 깔깔거리기

☐ 16. 조조영화 1편 보기

☐ 17.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 마시기

☐ 18. 장태산에서 단풍 사진 찍기

☐ 19. 사피엔스 한 챕터 읽기

☐ 20. 30분 집중해서 글쓰기


[ 도전 과제 ]

☐ 21. 8시 이후 금식 3일 연속 성공하기

☐ 22. 1시 반 이전 취침 3일 연속 성공하기



이제 하나씩 지워가며 여기에 기록할 것이다. 완벽하게 할 자신은 없다. 실패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날 힘이 생길 때까지. 오늘부터,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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