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절망 사이

노견 간병일기 - 06

by 하루


환자를 둔 모든 보호자가 그러하듯, 수치가 정상화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병원만 가면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불안함을 애써 누르며 오늘 오후 하루의 상태를 봐서 내일은 퇴원을 건의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행복회로를 열심히 돌려봤다. 12시, 상담이 시작됐다. 그런데, 주치의 선생님이 예상도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어젯밤, 하루가 발작을 일으켰어요 보호자님..'


주먹만 한 돌덩이가 내 행복회로를 와장창 깨트렸다. 발작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를 추정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뇌종양, 두 번째는 뇌혈전, 세 번째는 수술 후 일시적인 현상이다. 일시적인 현상일 경우 다른 수치가 높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 뇌종양과 뇌혈전이 더 의심되는 상황이라는 거다. 정확한 원인을 알려면 MRI촬영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불가하고 서울로 가야 할 뿐 아니라 또다시 긴 시간 마취를 해야 한다. 뇌종양임을 안다고 하더라도 대뇌의 경우엔 수술이 가능하지만 소뇌에 문제가 있을 경우는 수술조차 불가하단다. 또, 항암치료도 예후가 별로 좋지 않단다. 뇌로 가는 막이 하나 더 있는데 항암 약물이 이 막을 뚫지 못한다는 거다. 뇌종양을 진단을 받더라도 치료 방향을 바뀌지 않을거기 때문에 MRI는 크게 권하지 않는다는 게 주치의선생님의 의견이었다.


발작이 생기는 건 뇌에 스파이크가 생기는 건데 이게 너무 커져버리면 멈추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약한 발작약을 써볼 것이고, 발작약을 투여하면 힘이 많이 빠질 거라고 했다. 멈추면 다행이지만 계속해서 발작이 생기면 뇌종양의 가능성이 더 커지는 거다. 그리고도 발작이 계속되면 24시간 내내 약을 넣으며 아예 재우거나, 안락사를 고민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안락사라니.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였고, 정말 고통에 몸부림치는 상황이 아니라면 전혀 마음에 없는 단어였다. 도저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으로 멍하니 있다가, 6시쯤 다시 하루 면회를 갔다. 하루가 밥을 잘 먹고 힘을 내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무력했다.


'제발, 하루야. 조금만 힘내자. 언니가 미안해. 우리 하루 좋아하는 것도 많이 먹고 놀러도 가야지.'


하루의 상태가 위중해질수록, 내가 병원을 찾는 시간도 앞당겨졌다. 아마도 밤새 하루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병원을 찾을 때마다 힘없이 누워있던 하루는 누워있다가 나를 보고는 부랴부랴 일어나 앉았다. 매번 밥은 여리조리 피하며 거부하지만, 나도 그걸 간파해 먹이는 스킬이 늘었다. 열심히 꾸역꾸역 밥을 먹였다. 입천장에 묻히면 하루는 입을 쩝쩝대며 꾸역꾸역 삼켜주었다. 이것만도 어찌나 고마운지. 싫은 걸 하면 입질을 하며 온갖 반항을 하던 하루가 입에 손을 몇 번이고 넣어도 물려고 하지 않는다. 물 힘조차 없거나, 먹기는 싫지만 억지로라도 먹이려는 내 맘을 아는 거이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테다.


최소량으로 투여했던 발작약은 안 맞는 건지 강한 건지 기력이 너무 없어서 일단 중단하기로 했다. 그 덕분인지 놀랍게도 수술 후 4일 차인 오늘 하루가 투약용 미니캔 하나를 스스로 먹어주었다! 고맙고 장하고 사랑스럽고 내 안에서 기쁨과 행복감이 마구 넘쳐났다. 정작 장에 좋은 사료는 거부하는 바람에 강제로 먹여야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 먹으려고 했다는 게 어딘지.


'아! 됐다. 살았다. 우리 하루 돌아왔다!'


하루의 콩팥수치는 정상이 되었다가 또다시 조금 오른 2.7가 되었다. 정상수치에서 다시 오른 이유는 폐침윤으로 줄인 수액량 때문일 것으로 추측됐다. 하지만 폐부담으로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피하수액을 추가하기로 했다. 피하수액은 정맥주사보다 폐부담은 적지만 그만큼 흡수율도 떨어진다. 폐침윤도 나아져야 하는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다. 선택지는 없다. 아직도 배변을 하지 않아서 오늘은 진료실 밖에서 조금 걷게 했다. 여전히 배변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하나씩 나아지고 있으니까.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 내 불안을 하루가 읽을 수도 있다.


저녁 병원에서 메시지가 왔다. 주사기로 액상사료를 주니 그건 잘 받아먹는다고! 그동안 받은 메시지중에 처음으로 기분 좋은 메시지였다. 계속 안 먹으면 콧줄을 달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듣는 중이라, 꾸역꾸역 내가 억지로 먹이고 있었는데 다행스러웠다. 기쁨과 절망을 오가는 어제와 오늘이었다.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나날이지만 나는 오로지 희망만을 생각하고 싶다.


'하루야. 오늘은 다시 입원실로 들려 보냈지만 내일 혹은 모레는 집으로 가자!'


입원첫날부터 병원에서 아픈 아이들을 정말 많이 보았다. 뇌종양수술을 해서 한쪽눈을 적출하고도 엄마가 오니 품에 안기는 고양이, 박스채로 처연한 표정의 엄마품에 안겨 병원을 나가는 소풍을 떠난 아이, 이제 막 숨을 거둔 건지 위험한 상태가 된 건지 오열하는 노부부의 아이. 하루 말고도 아픈 아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 아이들을 보며 나도 함께 마음이 아픔과 동시에, 하루에게 얼마간의 시간이라도 더 주어졌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고 기뻤다. 아픈 아이들을 대신해서라도, 남은 시간을 하루와 더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고 그걸 기록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