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인헬 - 연옥, 49제, 그리고 할아버지와의 이별
Egg in Hell이라는 이름은 요리의 비주얼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붉은 토마토 소스는 지옥의 불길을 연상시키고,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계란이 마치 지옥에 빠진 계란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처음 이 요리를 접했을 때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거라며 감탄했다.
나무위키에서는 에그 인 헬을 '연옥 속의 계란'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사실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연옥과 지옥은 엄밀히 말해 다른 개념이라는 것인데, 연옥은 죽은 영혼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죄를 씻고 정화하는 중간 단계의 공간을 말한다. 반면, 지옥은 영원한 형벌과 고통의 장소로, 신을 거부하고 죄를 회개하지 않은 영혼들이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Hell을 뜻하는 지옥과 Purgatory를 의미하는 연옥은 비슷하지만 상당한 차이를 갖는 개념인 셈이다.
여담을 붙이자면 올해 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연세가 있으셨으니 어쩌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은 생각보다 슬펐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떠올리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시기 직전 찾아갔던 추석 때까지 할아버지와는 적지 않은 추억의 조각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연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불교의 장례문화에 따라 49제를 지냈다. 어머니는 꽤 종교적인 분이신데, 49일 동안 큰 절에서 적지 않은 비용으로 할아버지를 보내기 위한 제사를 지냈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린 직후 우리 가족을 찾아왔던 갑작스러운 슬픔은 그렇게 49일의 기간 동안 할아버지의 안식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연옥의 의미를 떠올리며 동양과 서양은 사실 꽤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이승을 떠난 영혼이 연옥 속에서 정화되어 천국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사들이 기도를 한다. 불교에서는 49일 동안 혼령의 다음 생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 결국 남은 사람들이 떠난 사람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건 떠난 이를 위하는 길인 동시에 영원한 이별 앞에서 마주한 슬픔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이 아니었을까.
요리는 만족스러웠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메뉴라 기대가 컸는데, 실망스러운 맛은 아니었다. (실제로 몇 번쯤 새로운 레스토랑에서 도전했다 실패했던 기억이 있어서 만족감이 더 컸다.) 특히 양파나 토마토가 작지 않은 크기로 들어가 식감이 살아나는 게 만족스러웠고, 호밀빵이 바삭하니 잘 구워진 상태였다. 특히 중요한 건 반숙의 계란이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한 정도의 반숙이라 매우 만족스러웠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긴 했는데, 빵의 굽기는 딱 좋았지만 빵 자체의 맛이 평범했고 요리와 잘 어우러지는 맛은 아니라 따로 먹는 것을 택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건 소시지였는데, 개인차가 있겠지만 가공육의 맛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토마토와 양파 같은 자연스러운 맛 사이에 인공적인 맛이 섞인 게 아쉬웠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맛 (커피 포함), 인테리어, 플레이팅까지 만족스러워서 조만간 가지 라쟈나를 도전하러 재방문을 하게 될 것 같다.
처음 나를 위한 제대로 된 아침식사를 하고 느낀 점은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보통은 일어나서 대충 요거트를 먹거나, 오트밀을 먹거나, 간편식을 데워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잘 차려진 식사를 앞에 두고 느긋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보니,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외롭게 느껴지진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반대로 나를 위해 특별한 식사를 찾아가는 것이 나를 소중히 한다는 느낌을 안겨주어 자존감을 한 스푼 정도 높여준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