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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베투 My Better Today Jun 20. 2024

#1 부천 송내역 브런치카페 올리브앤올리비아

에그인헬 - 연옥, 49제, 그리고 할아버지와의 이별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규칙적으로 나를 위한 아침식사를 가져보기로 했다. 내가 요리를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난 요리를 못한다. 게다가 혼자 먹는 밥은 식사가 아니라 생존이라고 그랬던가. 그래서 요리도 해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냉장고에 식재료들이 쌓이는 대신, 차라리 나 자신에게 제대로 아침식사를 대접해 보기로 했다. 


그 시작은 집 근처에 위치한 식당으로 올리브앤올리비아라는 브런치카페다. 이 동네에 산 게 벌써 10년을 넘는 데 이쪽을 와본 건 또 처음이라 낯선 길을 걷는 게 새삼 새롭기도, 설레기도 한다.



골목 끝에 이런 초록문의 카페가 등장한다. 사실 더 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가까운 곳을 방문해야 했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있었는데, 유럽의 길거리 카페를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와 문에 괜히 설렌다. 날씨까지 어쩜 이렇게 화창한지...! 완벽한 하루의 시작이다.



일부러 오픈시간에 맞춰 왔더니 식당에 손님이 한 명뿐이다. 그마저도 내가 들어갈 쯤엔 식사를 마치고 떠나서 통째로 카페를 빌린 기분이다. 혼밥하는 경우에는 왠지 망설여지게 되는 창가자리도 부담 없이 앉았다. 햇빛은 제법 들지만 날씨가 너무 좋다.



현관과 비슷한 초록색의 카운터에서 커피와 메뉴를 주문했다. 고민됐던 메뉴는 가지라쟈나와 에그인헬. 내가 좋아하는 가지와 내가 좋아하는 라쟈나의 조합이라는 점이 굉장히 끌렸지만, 다음 기회에 먹어보기로 하고 전체적으로 후기가 좋았던 에그인헬을 먹어보기로 했다. 


5분에서 10분쯤 기다렸을까? 커피와 에그인헬이 순차적으로 나왔다. 커피맛도 좋고, #닦고먹자 라고 쓰인 물티슈도 센스 있다. 에그인헬에는 계란 2개가 반숙으로 들어갔고, 소시지, 양파, 토마토 등이 보였다. 빵은 메뉴판에 의하면 호밀빵이라고 하는데, 빵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서 식사 후 꽤 포만감이 느껴졌다. 



에그인헬은 참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미국에선 Egg in Hell. 아랍권에서는 샥슈카. 한국에서는 연옥 안의 계란. 이스라엘에서는 특히 대표적인 브런치 메뉴라고 하는데, 기원지로 여겨지는 중동에서 부르는 이름인 '삭슈카'는 아랍어로 "섞다"라는 뜻을 갖고 있어, 다양한 재료들을 섞어서 조리되는 방식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니까 정해지지 않고 다양한 재료들을 한데 모아 요리하던 것이 서양권 문화에 스며들면서 '에그 인 헬'과 같은 꽤 근사한 이름을 가진 셈이다. 




Egg in Hell이라는 이름은 요리의 비주얼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붉은 토마토 소스는 지옥의 불길을 연상시키고,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계란이 마치 지옥에 빠진 계란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처음 이 요리를 접했을 때 이보다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거라며 감탄했다.  


나무위키에서는 에그 인 헬을 '연옥 속의 계란'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사실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연옥과 지옥은 엄밀히 말해 다른 개념이라는 것인데, 연옥은 죽은 영혼들이 천국에 가기 전에 죄를 씻고 정화하는 중간 단계의 공간을 말한다. 반면, 지옥은 영원한 형벌과 고통의 장소로, 신을 거부하고 죄를 회개하지 않은 영혼들이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Hell을 뜻하는 지옥과 Purgatory를 의미하는 연옥은 비슷하지만 상당한 차이를 갖는 개념인 셈이다. 


여담을 붙이자면 올해 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연세가 있으셨으니 어쩌면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은 생각보다 슬펐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떠올리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시기 직전 찾아갔던 추석 때까지 할아버지와는 적지 않은 추억의 조각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연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할아버지는 불교의 장례문화에 따라 49제를 지냈다. 어머니는 꽤 종교적인 분이신데, 49일 동안 큰 절에서 적지 않은 비용으로 할아버지를 보내기 위한 제사를 지냈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린 직후 우리 가족을 찾아왔던 갑작스러운 슬픔은 그렇게 49일의 기간 동안 할아버지의 안식을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연옥의 의미를 떠올리며 동양과 서양은 사실 꽤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톨릭 교리에서는 이승을 떠난 영혼이 연옥 속에서 정화되어 천국을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사들이 기도를 한다. 불교에서는 49일 동안 혼령의 다음 생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 결국 남은 사람들이 떠난 사람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건 떠난 이를 위하는 길인 동시에 영원한 이별 앞에서 마주한 슬픔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이 아니었을까. 



요리는 만족스러웠다. 평소에도 좋아하는 메뉴라 기대가 컸는데, 실망스러운 맛은 아니었다. (실제로 몇 번쯤 새로운 레스토랑에서 도전했다 실패했던 기억이 있어서 만족감이 더 컸다.) 특히 양파나 토마토가 작지 않은 크기로 들어가 식감이 살아나는 게 만족스러웠고, 호밀빵이 바삭하니 잘 구워진 상태였다. 특히 중요한 건 반숙의 계란이라고 생각했는데, 적당한 정도의 반숙이라 매우 만족스러웠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긴 했는데, 빵의 굽기는 딱 좋았지만 빵 자체의 맛이 평범했고 요리와 잘 어우러지는 맛은 아니라 따로 먹는 것을 택했다. 무엇보다 아쉬웠던 건 소시지였는데, 개인차가 있겠지만 가공육의 맛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토마토와 양파 같은 자연스러운 맛 사이에 인공적인 맛이 섞인 게 아쉬웠다. 그럼에도 전반적인 맛 (커피 포함), 인테리어, 플레이팅까지 만족스러워서 조만간 가지 라쟈나를 도전하러 재방문을 하게 될 것 같다.


처음 나를 위한 제대로 된 아침식사를 하고 느낀 점은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보통은 일어나서 대충 요거트를 먹거나, 오트밀을 먹거나, 간편식을 데워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잘 차려진 식사를 앞에 두고 느긋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보니,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아침식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외롭게 느껴지진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반대로 나를 위해 특별한 식사를 찾아가는 것이 나를 소중히 한다는 느낌을 안겨주어 자존감을 한 스푼 정도 높여준 것도 같다. 



깨끗하게 한 그릇을 비웠다. 근래 들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번아웃이랄까, 왠지 모르게 위축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는데 나를 위한 아침 한 끼는 제법 따뜻한 힘을 준다. 오늘도 아침밥 잘 챙겨 먹고 소소하게 행복해지자! 오늘 하루도 Bon ap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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