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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베투 My Better Today Aug 21. 2024

할머니는 왜 돌아가셨을까

"ㅇㅇㅇ, 잘 살아"


마지막 통화에서 할머니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붙였다. "네 할머니, 들어가세요~"하고 대답했지만, 전화를 끊고 그 인사말이 참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은 "잘 있어", 아니면 "그래 잘 지내"로 전화통화를 마무리하셨던 분인데, 잘 살라는 말은 뭔가 굉장히 어색하고 낯선 단어였다. 그 통화를 끝내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 할머니는 주무시던 중에 조용히, 평온하게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그러니 할머니가 내게 건넨 마지막 말은 잘 살라는 말이었다. 그냥 우연이었던 걸까. 아니면 그네 가는 길, 방황하고 또 방황하는 손녀딸이 걱정되어 유언처럼 하신 말씀이셨을까.


올 한 해는 내 곁에 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새해가 밝고 한없이 추운 어느 날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이상하리만치 비가 자주 내리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외할머니마저 보내드렸다. 19년 동안 함께한 우리 막내(푸들)는 할아버지 장례식 마지막 날, 큰 수술을 했다. 다행히 잘 회복했지만 몸이 많이 쇠약해져서 아마도 올해는 작별인사를 하지 않을까 모든 가족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나를 지나가는 여러 죽음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할머니의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했다. 강원도 산자락에 위치한 외갓집에 들어서며 "할머니!!"를 외치면 단숨에 마당으로 나와 반갑게 맞아주던 할머니를 이젠 만날 수 없다. 용돈을 주신다 하면 거듭 손사래 치는 언니와 나를 향해 길바닥에 오만 원짜리 두장을 쿨하게 버리고 가던 할머니는 이제 추억의 한 모습으로만 남았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외갓집은 사촌들이 모이는 놀이터였다. 닭집에서 계란을 꺼내와 털모자와 품다 깨졌던 날, 사촌오빠들의 장난에 울며 부모님께 전화하니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호통치던 날, 잠자리를 잡다 할아버지가 아끼시는 꽃밭을 엉망으로 망친 날, 그 외에도 우리는 늘 몰려다니며 온갖 사고를 쳤다. 우리들을 성가셔하고 저리 가라며 쫓아낼 때도 있었지만, 매 한번 들지 않고 늘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셨던 할머니는 이제 내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소비한 후에나 다시 만나게 될 거다. 할머니의 죽음은 매우 슬픈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슬픔이 있기에 할머니와의 추억은 더욱 반짝이는 힘을 갖게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 강원도에 위치한 한 사찰의 수목장에 함께 잠드셨다.



한 때, 인간은 왜 죽음을 나아가 고통을 느껴야 할까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만약 창조주가 존재하고, 그가 우리를 정말 사랑한다면, 왜 그는 인간을 그냥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왜 그는 인간에게 고통과 죽음을 함께 주어야만 했을까? 


성경책에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살게 한다. 그곳에서 그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으며 그저 신이 선물한 열매들을 따먹으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신은 이것들을 조건 없이 제공하진 않았다. 그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결국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에 손을 댔고, 그 결과 그들은 '기쁨'을 의미하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노동하고, 땀을 흘리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신의 뜻대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에 손대지 않고 에덴동산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불사의 몸을 가졌다고 가정했을 때, 수천 년을 산다고 한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에덴동산에서 신이 허락해 준 열매만을 따먹고 살았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농업은 발달하지 않았을 거고, 그들은 옷을 입지 않았으니 의류산업이 발달했을 여지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며, 에덴동산을 벗어나지 않는 그들에게 말, 마차, 자전거, 자동차 나아가 비행기가 필요한 날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는 신의 뜻을 어기고 나서, 고통스러운 삶을 시작했지만, 평화와 평온 대신 고통을 시작했기에 그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 


장례식장을 지키며 앉아 할머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는 내내 할머니가 곱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사진 속 할머니의 모습은 참 고왔다. 할머니와의 이별은 마음 아팠지만, 그래도 장례식장을 채운 조문객들을 보면서 7남매를 키우고, 평생을 강원도의 한 산골에서 농부의 아내로 살다 간 그 80년의 인생이 꽤나 치열했겠고, 또 꽤나 의미 있는 삶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저 내게 '할머니'로만 이름 붙여졌던 한 '인간'의 삶이 새로운 시각에서 보이니 그제야 난 어쩌면 오래전에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삶은 죽음이 있어야 아름답다. 끝이 있으니 한평생을 전력질주할 힘이 생긴다. 끝이 있기 때문에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리고 할머니, 그리고 이전에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나는 끝이 있어야지만 그 삶의 모든 치열함이 드디어 빛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의 할머니는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짧은 시간 처녀로 살았고, 농부의 아내로, 7남매의 엄마로, 그리고 그 7남매의 여러 자식들과 손주들의 할머니로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래서 난 그녀와의 이별이 매우 슬프지만, 막을 내리는 연극의 배우를 향해 그러하듯 그저 오랜 시간 그녀의 마지막에 눈물 대신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장례식장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철없이 뛰어다니는 사촌동생의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저 나이의 난 아마도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겠지. 그렇게 철 없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과 10대, 20대를 거쳐 어느새 30대에 다다른 지금. 당연하게 곁에 있던 사람들의 죽음을 만나며 난 조금씩 죽음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또 몇 년이 흐르면 이젠 부모님의 죽음을, 더 나아가면 친구들의 죽음을, 그리고 종내에는 나의 죽음을, 나만의 커튼콜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난 또 어떤 것들을 경험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그저 할머니와의 통화를, 그녀의 마지막 인사를 머릿속에 되새겨본다. 



"ㅇㅇㅇ,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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