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이사가 잦았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여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필리핀으로 이민을 간 이후에도 세 번 정도 집을 옮겨 다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몇 차례 이사를 했고, 그나마 가족들은 부천의 한 아파트에 정착했지만 난 혼자 독립을 선언하며 또다시 집을 옮겨 다니는 삶을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 집을 거치는 동안 난 여러 집을 만났다. 부모님의 사업이 망했을 땐 어느 빌라의 3층, 현관을 다른 호수들과 공유하는 독특한 구조의 집에서 지내기도 했고, 반대로 부모님의 사업이 잘되던 때에는 3층짜리 저택에 골프연습을 위한 공간이 있는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난 기본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겐 집이라는 공간이 꽤 중요하다. 그런 나에게 부모님이 아닌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첫 번째 공간이 생긴 것은 2020년의 겨울이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부천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은 내 첫 번째 집이다. 이 집을 구하는 데에는 4개월 정도 걸렸다. 4개월 동안 인근의 오피스텔과 빌라를 모두 돌아봤다. 하지만 썩 맘에 드는 공간이 나오질 않았는데도 재미있게도 어느 시점에 딱! 내가 가진 조건을 맞춘 집이 나왔다. 복층이었고 (당시 난 1층은 사무실, 2층은 집으로 구분할 생각이었다.), 서향이었지만 앞에 막힘이 없어 햇빛이 잘 들어왔고, 그 건물 중 유일하게 딱 일부 호수만 야외 테라스 공간이 있었다. 게다가 금액도 저렴해서 내 예산에도 잘 맞았던 집이다. 집을 본 날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렇게 이사한 집에서 난 나름 즐거운 싱글라이프를 가졌다. 복층 공간에 나름의 영화관을 만들어보기도 했고, 햇빛이 잘 들어오니 예쁜 꽃을 가끔 사다가 그저 꽃을 바라보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게 2년 반을 거주했는데,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집이었지만 몇 가지 문제들이 있었다.
테라스가 있으면 마냥 좋을 것 같았지만, 흙이나 나무와 가까우니 벌레가 많았다. 그것도 그냥 벌레가 아니라 왕개미, 돈벌레, 집게벌레 등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벌레들이 여름이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또, 집주인은 에어컨이 고장 나도 제대로 수리를 해주지 않아 싸우기 일쑤였고, 여름에 이불 널면 좋겠다 생각했던 테라스는 위층의 누군가에게는 쓰레기통이었나보다. 하루가 지나면 어느새 테라스에는 담배꽁초며 과자 봉지, 심지어 어느 날은 고양이 똥이 섞인 모래봉지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테라스는 위에서 날아오는 쓰레기를 피하기 위해 출입금지 구역이 되었다.
무엇보다 테라스가 옆집과 연결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집들을 오갈 수 있었는데, 한 번은 관리사무실 아저씨가 테라스 문을 두드리며 미안한데 우리 집 문으로 좀 나가도 되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 당황스러웠던 경험도 있다. 그 뒤로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좋아 선택했던 그 집에서 난 커튼을 굳게 닫은 채로 지내게 되었다. 여자 혼자 사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일 수밖에 없는데 그 집은 늘 잠에 들면서 누가 테라스 문으로 침입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집이었다.
결국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살고 있던 부천에서 좀 더 먼 곳으로 이사를 가보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었고, 그다음으로는 자연과 가깝고, 도시 자체가 여유로운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바쁘게 살아온 일상 때문인지 북적이는 도시보다는 자연이 더 가까운 그런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 후 1년을 여주, 광주, 양주, 남양주, 그리고 일산을 돌아다니며 내가 정착할 곳을 찾아다녔다.
최종적으로 내가 정착하기로 결심한 곳은 고양시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이전에 살던 곳보다 집세가 2배나 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결심한 건, 나에겐 공간이 주는 힘이 매우 크기 때문이었다. 특히 집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 나에게 집은 거주지인 동시에 일하는 공간이었다. 사무실 월세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하다 생각하며 계약을 했다. 그렇게 나의 고양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의 행복지수는 매우 올라갔다. 우선 집에서 10분쯤 걸어서 나오면 창릉천을 따라 매일 아침 가볍게 걷거나 달릴 수 있는 조깅코스가 있다. 또, 지금 거주 중인 오피스텔은 매우 특이하게도 건물 내에 거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 있는데 중식과 석식을 한식으로 제공한다. 집에서 밥을 잘 해먹지 않기 때문에 배달어플의 VIP가 되어버린 나에게 이보다 좋은 서비스는 없다. 덕분에 이사를 온 이후 영양가 있는 밥을 챙겨 먹게 되었는데, 지난 3년간 꽤 심하게 앓았던 폭식증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잘 먹는 게 건강에, 그리고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또 건물 내에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는데,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난 수영을 좋아한다.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땀 흘린 상태에서 수영장으로 향한다. 샤워를 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찬 물에 입수하면 온몸의 땀구멍을 통해 행복 세포가 마구마구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문득 하루를 보내다가 고개를 돌렸을 때 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 창을 넘어 집 안에 만들어지는 무지개. 이런 사소한 것들이다.
집이라는 공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야 한다. 작은 빌라에서 살던 때에도 난 나름 행복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함께 치킨을 시켜 먹으며 웃던 즐거운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이제 안타깝게도 1인 가구이고, 집은 이제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아닌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 그러니 그를 대신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들로 집을 채워야 했다. 나에게 집이란 최소한 안전감을 주면서, 자연과 가깝고 언제든 하늘을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감사하게도 지금 이 집은 이 모든 요건들을 채워줄 뿐 아니라 조깅, 수영, 운동과 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더 채워져 있으니 내 행복감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공간에는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야외취침에서 동굴로, 동굴에서 움막으로, 움막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목조주택으로, 그리고 지금의 아파트단지로 점점 공간을 업그레이드해왔다. 청와대에 처음 입장하면 보이는 거대한 계단은 들어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오랜 시간에 걸쳐 베르사유 궁전을 짓기 시작한 건, 그에게도 궁전이라는 공간이 그의 절대권력을 상징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거다. 공간에는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공간은 우리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보통은 집, 혹은 직장이다.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내 주변환경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우선 청소를 해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정돈된 집에서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집을 채워보자. 이전 오피스텔에서 난 그에 대한 노력의 일환으로 꽃다발을 사보거나, 중고앱에서 저렴한 가격에 프로젝터를 구매해 영화관을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내 경우엔 안전감이 채워지지 않았다) 아예 집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물론 경제적이나 기타 여러 이유로 쉽지 않은 결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불행하다 느끼며 허덕이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굳이 비싼 집이 아니어도 된다. 내 주변엔 빌라의 옥상층에 사는 지인이 있다. 그에겐 게임이 삶의 낙이었기 때문에 그는 집의 거실에 큰돈을 들여 홈시어터를 설치했다. 소파에 앉아 콘솔게임을 하는 순간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는 내 주변사람 중 누구보다 삶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다. 아님 나처럼 도심에서 조금 멀어질 수도 있을 거다. 서울 도심 한복판이라면 난 절대 같은 예산으로 지금의 집과 같은 조건을 찾지 못했을 거다.
이사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내가 무엇에 행복감을 느끼는지를 되새겨 보며 배워가는 요즘이다. 대신 어떻게든 이 집세를 낼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요즘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