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친구의 신혼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그 친구는 한창 새로 장만한 신혼집을 꾸미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우리에게 예쁜 접시에 담긴 잔치국수를 대접해 주었고, 나와 다른 친구들은 (왜인지 용도를 알 수는 없는) 예쁜 라탄바구니가 한켠에 놓인 거실에 둘러앉아 그녀의 인테리어 감각에 감탄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친구는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예쁜 접시에 담긴 과일을 내주었다. 별생각 없이 손으로 집어 먹으려는데, 친구가 깜빡 잊었다는 듯 탄성을 지르며 부엌으로 달려가 과일포크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그 과일포크를 사는데 몇천 원을 썼는데, 너무 예쁘지 않냐고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친구에게 말했다.
"이걸 사는데 몇천 원을 쓴다고?? 과일은 손으로 먹거나 하다못해 이쑤시개 꽂아서 먹으면 되지!!"
내 말에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고, 그날의 내 발언은 "이쑤시개 선언"으로 회자되며 지금까지도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물론, 난 꽤 오랫동안 어째서 그런 사소한 소품을 구매하는 데 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왔지만 말이다.
얼마 전부터 그런 내 생각에도 변화는 찾아왔다. 최근에서야 나는 그때 그 친구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유리잔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난 잘 깨지는 데다, 쉽게 손자국이 남는 유리잔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손잡이가 달린 머그잔 같이 실용적인 것을 선호했고, 공짜로 어디선가 받은 컵을 사용하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조깅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언젠가 위스키 한 병을 사면서 공짜로 받은 유리컵이 눈에 들어왔다. 큰 의미 없이 냉동고에서 꺼낸 얼음과, 냉장고에 있던 콜라를 유리컵에 담아 한숨 돌리며 창 밖을 바라보는데 아주 찰나의 순간 행복감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작은 행복감이 나에게 꽤 인상적으로 남았던 건지, 며칠 후 나는 충동적으로 좀 더 예쁜 유리잔을 구입했다. 왜인지 4000원 남짓한 머들러(음료를 휘젓는 스틱)도 구입했다. 집에 와서 그때처럼 얼음과 음료를 담고, 거기에 머들러까지 꽂았다. 창 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무더운 더위와 대조되는 시원한 음료를 손에 쥐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굉장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예쁜 유리잔에 물이나 차, 음료를 담아 마시는 순간을 즐기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나를 대접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깨달음과 함께 자존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자존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오랜 사색 끝에 내가 내린 자존감의 의미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었다. 가령, 누군가가 내가 새롭게 시도한 머리스타일이 별로라고 이야기하면 "그래?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지만 난 마음에 드니까 상관없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자존감이다. 그래서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나는 오랫동안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 나의 신념을 지키는 법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 약간의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에 내가 예쁜 유리잔을 구매하고 또 사용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자존감에 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이다. 자존감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사실 더위를 떨치기 위해 시원한 물을 마시고자 한다면 그저 아무 컵이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가 집에 온 손님을 대접할 때 굳이 더 예쁜 컵을 찾는 이유는, 그게 그저 낡은 컵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것을 찾는 노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마시는 사람을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 그리고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 유독 자신에게 가혹했다. 좋은 화장품을 선물 받으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나눠주고, 식사자리에서 메뉴를 선택할 때 타인의 취향을 고려했다. 나를 위한 물건들, 예를 들면 집에서 쓰는 집기나 잠옷, 운동복 등은 그냥 실용적이면서 저렴한 것으로 골랐다. 솔직히 말해,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집에서 입거나 가족들이 입던 옷을 가져와 입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나 자신에겐 푸대접을 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왜 그랬을까? 어째서 난 나 자신을 귀히 여겨주지 않았던 걸까?
이런 생각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또 하나의 계기는 배우 최화정 씨가 출연한 한 팟캐스트 방송이었다. 다른 패널은 그녀의 잠옷을 언급하며 그녀가 정말 인형들이나 입을 것 같은 옷을 잠옷으로 입는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그녀는 예쁜 잠옷이나 속옷을 좋아하고 또 모은다고도 이야기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난 그 이유가 내가 유리잔을 모으는 것과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가장 좋고 예쁜 것을 해주는 것. 그리고 나아가 타인보다 내가 먼저 나를 챙기고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게 바로 그녀가 60대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아름답고, 밝을 수 있는, 그리고 그처럼 높은 자존감을 가진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요즘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선물을 하는 재미에 빠졌다.하나 둘 모은 유리잔은 어느새 6가지가 넘었고, 머들러도 2가지. 빨대는 스텐빨대 4개를 세트로 구입해 아주 잘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북엔드를 구입할 일이 생겼는데, 평범하고 실용적인 것을 구입하려다가 귀여운 디자인으로 마음을 바꿨다. OK라는 디자인의 제품인데 이걸 한번 볼 때마다 긍정적인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작은 생각에서 이 제품을 골랐다.
새로 구매한 바디샴푸의 헤드에 문제가 있는 건지 계속 펌핑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던 중에는 호텔에 비치될법한 예쁜 샴푸통 세트도 구입했다 (진짜 비싼 호텔들은 브랜드를 보여줘야 하니 쓰지 않고, 실제로는 모텔이나 펜션에서 많이 비치되지만). 이런 걸 누가 사?라고 언젠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기억이 있는데, 34살의 내가 그것을 사고 있었다. 최화정 배우님의 이야기를 듣고 예쁜 레이스가 달린 잠옷도 구입했다. 왜인지 밤에 샤워를 마치고 부드러운 소재의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우면 내가 제법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게 신기하다.
누군가는 사치라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실용성 면에서 불필요한 것이니 사치가 맞다. 하지만 해외직구사이트를 이용하면 기껏해야 커피 한잔, 밥 한 끼 비용인 것들을 내 행복을 위해 지출한 것이니 이 정도 사치는 괜찮지 않을까? 하물며 친구의 결혼식에서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부리는 이 작은 사치보다 큰돈을 축의금을 내면서, 정작 내 행복에는 왜 그렇게 인색하게 굴어야 할까? 어쩌면 내가 이제야 나 자신을 돌보고 내 행복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하게 된 건, 이렇듯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좋은 것을 챙겨줘야 한다는 생각이나 마음이 내 안에 부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행복을 공부하는 중이라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오늘 당장 자존감을 높이고 싶다면, 나를 대접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라면을 먹더라도 냄비채가 아니라 예쁜 접시에 옮겨서 먹어보는 것. 물 한잔을 마시더라도 예쁜 잔에 담아서 마셔보는 거다. 그 작은 행동에서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날 수도 있지 않을까. 최소한 요즘의 난, 그렇게 조금씩 나를 귀하게 여겨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