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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브랜드유 Jul 14. 2024

‘녹색의 반란: 도시 정글에서 살아남기’


누가 말했던가, 도시에서는 꽃 한 송이 피우기 힘들다고. 하! 그들은 내가 베란다를 정복할 줄은 몰랐지.


첫 번째 화분을 들여놓던 날, 나는 마치 정글의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콘크리트와 유리로 둘러싸인 내 작은 영토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모험인가! 물론, 첫 번째 희생양은 불쌍한 바질 화분이었다. 과잉보호는 식물에게도 독이 된다는 걸, 물을 너무 많이 준 나머지 익사시킨 후에야 깨달았다. R.I.P. 바질, 넌 내 정원사 커리어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어 영광이었을 거야.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미니 선인장을 선택했다. 이놈들은 질긴 생명력으로 유명하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 햇빛을 너무 많이 받아 타 죽을 뻔했다. 아, 선인장도 그늘이 필요하다니, 사막의 아이들도 때론 휴식이 필요한 법이지.


세 번째 도전에서야 비로소 성공의 기미가 보였다. 허브 가든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로즈마리, 타임, 민트... 이름만 들어도 향긋한 녀석들이 내 베란다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이 녀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안녕, 로지? 오늘도 향기롭구나. 타임, 넌 언제쯤 자라서 내 파스타에 얹혀줄 거니?"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이 식물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니!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 아니, 어쩌면 이게 바로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도시의 소음과 스트레스로 메마른 내 감성이, 이 작은 녹색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촉촉해지고 있었던 거다.


내 정원은 점점 더 확장되어 갔다. 베란다를 넘어 거실 창가로, 심지어 화장실 선반에도 작은 다육이를 올려놓았다. 친구들은 내가 식물 중독에 걸렸다며 놀려댔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르겠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게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푸른 잎사귀라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물론 모든 게 순탄했던 건 아니다. 한 번은 집에 놀러 온 친구의 아이가 내 소중한 토마토 모종을 '괴물'이라 부르며 도망쳤다. 그 녀석, 도시에서만 자라더니 진짜 토마토 모습을 모르는구나. 슈퍼에서 파는 완벽한 모양의 토마토만 봐왔으니 당연하지. 그래서 나는 조카에게 '식물 성장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물론 조카는 지루해 죽을 뻔했겠지만.


또 한 번은 베란다에서 키우던 민트가 탈출을 감행했다. 그 녀석, 화분을 넘어 바닥 타일 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한 거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곧 감탄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강한 생명력이라니! 결국 그 민트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내 베란다의 작은 반란군이라고나 할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더 식물들과 하나가 되어갔다. 비 오는 날이면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싶어 졌고, 맑은 날이면 그들과 함께 광합성하고 싶어졌다. 친구들은 내가 시간이 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내 식물들을 체크하는 걸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들도 언젠가는 이 녹색 마법에 빠지게 될 거라는 걸.


내 작은 도시 정원은 이제 단순한 취미를 넘어 삶의 철학이 되었다. 식물을 키우며 나는 인내를 배웠고,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을 익혔으며, 작은 성공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도시 생활 속에서도 자연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매일 감사하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키우는 게 식물인지 식물이 나를 키우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녹색 혁명이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거다. 이제 나는 도시 한복판에서도 숲 속에 사는 것처럼 느낀다. 내 집 주소는 여전히 서울이지만, 내 마음의 주소는 이미 "깊은 숲 속"으로 바뀐 지 오래다.


불혹이 훨씬 넘은 나이에 이런 취미가 생길지 몰랐지만, 자! 이제 당신 차례다. 창가의 작은 화분 하나로 시작해 보는 게 어떨까? 조심하라고.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테니. 하지만 그게 바로 이 녹색 마법의 묘미 아닐까? 어서 오라, 도시 정글의 새로운 탐험가여. 당신의 베란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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