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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in Apr 11. 2021

남편이 달라졌다

찾았다. 부캐!

 '쓰윽 쓱 쓰윽 쓱 탁! 쓰윽 쓱 쓰윽 쓱 탁!'


 잠결에 일정하게 반복되는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안방 문을 살포시 열었다. 주방 불은 환하게 켜져 있고 남편이 커다란 포대자루에서 긴 먹갈치를 꺼내어 손질하고 있었다. 나를 본 남편은 환하게 웃으며 나와 아이들이 자고 있는 동안 혼자 노량진 수산물 새벽 경매 시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생물 주꾸미와 싱싱한 제철 먹갈치를 득템 했다는 남편의 미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

< 새벽 4시 노량진에서 온 먹갈치 >

  잠이 깨자 그제야 온 집안에 진동하는 생선 비린내가 느껴졌다. 창문을 열어 집안 공기를 환기시킨 후 아침에 먹을 갈치 몇 마리만을 남기고 남편이 직접 손질한 갈치를 소분하여 냉동실에 얼렸다.

 “아침에 갈치구이 어때?”

 “아주 좋지!! 얼른 굽자”

 남편은 튀김가루를 살짝 입혀 노릇하게 갈치를 구웠다. 굽는 내내 그는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우며 갈치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갈치구이로 맛난 아침을 먹은 후 남편은 전날 밤 밑간을 해 둔 닭 두 마리를 꺼내어 후라이드 치킨을 만든다.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모습으로 그는 일사불란하게 닭을 튀긴다. 치킨이 완성되었다. 남편이 특별 공수한 브라운백 4 봉지에 다 튀겨진 치킨을 나눠 담았다. 조카들에게 줄 외삼촌의 치킨요리이다. 조카들이 맛있게 먹을 모습을 상상하는지 미소 가득한 표정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누가 시켜서도 아닌 요리에 진심인 그의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다. 어째서 그는 요리에 빠지게 되었을까?  


 매일 저녁 7시. 핑크색 종량제 봉투를 든 남편이 귀가한다. 코로나가 길어지고 배달음식을 먹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돈도 많이 들고 배달음식에 질리기 시작한 남편은 작년 12월부터 직접 요리를 시작했다. 주로 치킨 마니아인 아이들을 위하여 후라이드 치킨, 간장 치킨, 양념치킨, 뿌링클 치킨, 안동 찜닭 등 닭 요리 위주였다. 입에서 병아리가 나오지는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주 4회 치킨을 먹었다. 1월에는 요리 실력이 나날이 향상하여 만두, 수제 햄버거, 아롱사태 수육, 황태 해장국, 김치전, 팟타이, 해물짬뽕, 오징어 볶음 등등 다양한 음식에 도전했다. 요리를 할 때의 진지한 그의 표정과 뒷모습은 영락없는 실험실의 과학자의 모습이다.

   

 남편이 요리를 시작하면서 좋은 점도 많이 있지만 반면 엥겔지수는 높아졌다. 남편은 매일 장을 봐오기에 이제 핑크빛 종량제 봉투만 봐도 두근거린다. 오늘은 또 어떤 요리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과 동시에 오늘은 얼마나 썼을까 하는 근심, 두 마음이 오고 간다. 그래도 단기간에 요즘 유행한다는 부캐를 찾고 행복도 찾은 것 같다.  


 요리를 통하여 주변에 웃음이 넘치고 남편에게 레시피를 알려달라며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사위가 해주는 후라이드 치킨을 먹고 엄지 척을 외치는 친정아버지, 고모부의 치킨을 숨도 안 쉬고 먹는 조카들, 매형의 요리에 눈이 동그래진 요리사 남동생, 남편이 만든 음식에 감탄하는 가족 같은 동생들. 우리들 모두는 남편의 요리로 행복해진다.


 “난 네가 요리하는 거 싫다!”

 시어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아들이 수고롭게 일하고 퇴근한   힘들게 요리를 하는 모습이 여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언짢음에도 나눔의 행복을 알아가고 있는 남편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먹일 요리를 계획하며 오늘도 마트에 간다.



 “은퇴 후에 치킨 가게를 할까? 와인바를 할까? 아니야 너무 힘들어지니 그냥 우리끼리만 먹자”하면서 하하호호 소소하게 행복한 노후 계획도 세워본다.


  나와 남편의 관계도 편안해졌다. 요리에 빠지기 전에는 조그만 일에도 신경질을 자주 냈고 나와 관심사와 성격이 정반대인 남편과의 대화는 아이들 학원비에 대한 상의 이외에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고 싸우기만 하니 대화를 꺼려했다는 것이 옳다. 하지만 남편이 요리와 사랑에 빠진 후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대화 주제가 더 폭넓어졌고 그의 말투도 눈빛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요리를 시작하고부터 가끔씩 저녁은 물론 점심 메뉴까지 살뜰하게 챙겨줘서 나에게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매일 아침 6시. 나는 잠에서 깬 후 그 날 해야 할 일을 적은 후 책을 읽는다. 처음에는 30분을 목표로 했는데 조금만 더 읽다 보면 1시간은 후다닥 지나가고 어두컴컴했던 하늘은 책을 덮을 즈음엔 환하게 날이 밝아온다. 나를 돌보는 고요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내 마음도 풍성하게 넉넉해졌다.  


 남편의 요리로 인해 우리 집에도 대화가 늘고 행복이 찾아왔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집 식탁에, 나의 고요한 아침에 풍성하게 존재하여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다.


  짧은 첫째와 통통이 둘째를 위한 아빠의 다음 요리는 무엇일지 기대된다. 요리로 자신 안의 열정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할  알게  남편의 요즘 모습이 멋지다.


 그대의 요리 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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