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밥이 불편한 나, 순대국밥에 진심인 너.
갑작스레 바람이 불고 쌀쌀해진 날에는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이런 날에 많은 이들의 힐링 푸드인 순대국밥 앞에서 나는 작아진다.
“순댓국을 못 먹습니다만......”
순댓국을 못 먹는다고요?
왜요?
왜 그 맛있는 순댓국을 안 먹어요?
순대는 소금 혹은 새우젓, 쌈장에 찍어야 제 맛이지 물에 빠진 순대는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 고기 국물에 빠진 순대에게서는 어쩐지 특유의 잡내가 나는 것 같다. 콩나물국이나 해산물로 우려낸 맑은 국물을 선호하는 나에게 고깃국에 빠진 순대는 가까워지기 힘든 음식이다.
여러모로 나와 잘 통했던 직장동료 k가 있었다. 동갑인 그녀와 나는 만날 때마다 즐거웠다. 하루는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순댓국을 먹으러 가자는 그녀에게 나는 순댓국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순댓국에 불호인 나를 믿기 힘들다는 듯 쳐다봤다.
“순댓국을 못 먹는다고? 왜 그 맛있는 순댓국을 안 먹어?”그동안 냄새나는 순댓국을 먹어서 일거야 내가 추천하는 집은 순대에서 잡내가 하나도 나지 않으니 분명 좋아할 거라며 확신에 찬 걸음으로 단골 순대국밥 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분명 내가 깍두기만 먹고 나오리란 것을 알았지만 할 수없이 그녀를 따라나섰다. 역시나 순대국밥의 국물 몇 숟가락만을 뜨고 깍두기에 흰 밥만 먹는 나를 본 그녀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사람들은 연신 뜨거운 국물을 호로록 마시며 이마와 콧잔등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순대국밥을 싹 비운 서로를 기특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우리의 테이블에는 정적과 썰렁함이 감돌았다. 순대국밥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던 그녀는 순대국밥을 다 먹지 못하고 절반을 남겼고 나는 그 순댓국집의 깍두기 두 접시로 밥 한 공기를 비웠다. (사실 깍두기 맛은 정말 최고였다.)
좋아하는 사람과 식성도 맞으면 좋았으련만......
몇 주 전 가족여행으로 천안에 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서둘러 짐만 내려놓고 순대국밥을 먹으러 가자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거리 양쪽이 전부 순대국밥집인 병천 순대거리에 도착하자 남편은 많은 식당 중 어디를 가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짧은 거리에서 유턴을 하고 멈춰 서다를 몇 번 반복한 후에야 심사숙고해서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그는 망설임 없이 순대국밥과 모둠순대를 주문했다. “국물만 조금 덜어줄까? 맛만 볼래? 남편은 조심스레 나를 향해 묻는다. 평범한 동네 분식집의 당면 가득한 찰순대를 기대했는데 돼지 내장에 선지를 넣은 병천 순대는 그와는 다른 스타일이었다.
‘아……. 난 순대가 물에 빠진 게 싫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가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초를 치고 싶지 않아 조용히 깍두기를 베어 물었다. 잘 나가는 순댓국집의 깍두기는 푹 익지 않고 달큼한 맛이 흰 밥에 일품이다.
평소 맛집을 찾아다니며 긴 줄에 서서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희열과 소소한 행복을 알기에 순댓국집에서의 온도는 일방적이고 썰렁했다. 아무거나 잘 먹는 남편은 늘 나에게 메뉴 선택을 맞춰줬다. 그 자상함을 알기에 순댓국을 한 술 떠보았지만 물에 빠진 순대의 맛은 역시나 내겐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유독 순댓국 앞에서 작아졌던 이유는 순댓국을 대하는 그들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댓국 앞에서 해맑은 미소를 짓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 행복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순댓국이 입에 맞지 않는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진심을 나누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같은 취향을 가지고 있을 때 진심은 가장 쉽게 서로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취향이라는 것은 호불호가 있고 취향이 같다고 100% 진심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취향이 다르더라도 얼마든지 진심을 나눌 수 있다.
비록 내가 순댓국에 진심인 사람과 같은 음식 취향은 아니지만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진심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니 순댓국을 못먹는 것에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 순댓국 앞에서 진지했던 어느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