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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Jun 13. 2021

엄마의 은밀한 취미 생활

 나는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의 아들 둘 엄마이자 전업주부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젯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자잘한 설거지들과 제자리를 못 찾아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이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집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커피 한 잔으로 숨을 고른다. 아이들이 일어남과 동시에 분주한 일상이 시작된다. 아이들의 끼니와 간식 챙기기, 오후에는 아이들의 운전기사, 저녁에는 아이들의 숙제 도우미가 되어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을 하며 일상을 따라다닌다. 이 바쁜 틈바구니 생활 속에서 단비 같은 나만의 은밀한 취미생활이 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외국어 책을 펼친다. 처음 보는 단어를 찾아보고 문장을 해석해본다.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구절을 만나면 문장도 외워본다. 단어 외우는 틈틈이 소란스럽고 복잡스러운 마음이 점점 차분해진다. 오늘은 단어 백 개를 외워 단어탑을 쌓아야 뒤죽박죽 불편해진 내 마음에 평화가 오려나?


 나에게 외국어 단어 암기는 걱정 지우개다. 눈앞에 보이는 단어 외우기에 집중하다 보면 불필요한 생각 따위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단순한 암기 활동이지만 어느새 근심은 사라지고 대신 뿌듯함이 차오른다. “잘 외웠어! 잘했어! “내 단어 노트에 칭찬 스탬프 하나 꽝 찍어준다.


 멀뚱하게 혼자 앉아 있어야 하는 장소에서 듣고 싶지 않지만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물리치고 싶을 때 외국어 공부는 소음 마개가 되어준다. 외로움, 초조함, 어색함도 단어 외우기가 방패막이 되어 잘 감싸준다. 당장 어딘가에서 써먹을 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부끄러운 수준의 외국어 실력이지만 내 젊음이 반짝반짝 빛나던 시절에 만난 언어이기에 계속 그 인연을 붙잡고 싶다.


  추억과 친구는 나의 외국어 학습의 동력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국과 중국에서 체류하면서 공부한 영어와 중국어에 아쉬움이 남아 있고 그곳에서의 추억이 있다. 여전히 연락하는 친구들과의 소통은 촘촘히 바쁜 일상의 나로 하여금 외국어 학습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매일 따로 시간을 내어 꾸준히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일을 하면서 계속 사용하는 것도 아닌 나의 영어, 중국어 실력은 날로 퇴화되는 것 같다. 차분히 책을 보거나 최신 기사를 읽고 싶지만 아이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활자를 눈에 담을 겨를이 없다. 중간중간 돌발 상황이 많고 틈틈이 이동이 많은 나의 스케줄에 적합한 영어 공부법은 라디오 듣기다.


 여러 영어 라디오 방송 중 내가 즐겨 듣는 채널은 101.3 FM과 102.7 FM이다. 특히 101.3 FM 채널을 즐겨 듣는다. 아이를 픽업하러 가는 길에 나 홀로 차 안에서 듣는 TBS eFM 101.3 K-RIDE는 대부분 한국 가요를 많이 들려주고 영어를 잘하는 한국인의 출연자가 많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는 내용이 많아 쉽게 잘 들리고 신나는 음악과 함께 가볍게 영어를 들을 수 있다. 아이 만나기 30분 전의 달콤한 나만의 틈새 외국어 공부 시간이다. 집에서 들을 수도 있겠지만 운전대를 잡고 신호 대기하며 들어야 제 맛이다. 게다가 101.3 FM에서는 저녁 6시~10시까지는 중국어 방송이어서 집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며 중국어로 한국 뉴스를 들을 수 있었다. 중국어에 목마름을 느끼는 나에게 영어와 중국어를 둘 다 즐길 수 있는 단비 같은 채널이다. 하지만 중국어 방송 시간대가 9시로 옮겨져서 더이상 나와 시간대가 맞지 않아 라디오 방송을 듣지 못하고 있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 각 시간대 별로 알찬 프로그램이 많은 TBS eFM

http://tbs.seoul.kr/eFm/programsDaily.do


 101.3 FM이 한국 뉴스와 한국 가요 위주의 방송이라 내용이 찰떡 같이 이해되고 쉽게 들린다면 주한 미군에서 송출하는 AFN(AMERICAN FORCES NETWORK) The eagle ,102.7 FM은 미국인 청취자를 대상으로 하는 채널이라 디제이의 목소리와 분위기가 제대로 미국이다. 속사포처럼 빠른 호흡의 영어와 한국의 늦은 오후 시간대에 아침 시간의 미국 내 소식을 들으면 마치 미국에 와 있는 듯 한 착각이 든다. 이 채널은 음질이 다소 떨어지고 미국인을 위한 방송이니 디제이의 빠른 진행에 귀를 쫑긋하고 잘 들어야 한 문장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 음악은 미국 최신 팝송이 대부분인데 정말 정말 좋은 노래가 많이 나온다.



 자동차 안에서 음악 여행으로 충전된 긍정의 에너지는 짜증 섞인 아이의 말 한마디에 공중으로 흩어져버리고 나는 그만 또 아이에게 버럭하고 만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은 큰 기쁨이지만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쏟아 낼 때가 많다. 어린아이들에게 날린 직격탄들로 나의 모성애와 인격이 의심되고 육아 자존감은 한없이 떨어진다. 곤두박질쳤던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하루 종일 복잡했던 머리를 식히기 위하여 어슬렁어슬렁 해외 직구 사이트를 둘러본다.

 아웃렛 세일이 시작되었다. 60~80% 핫딜이 떴으니 냉큼 달려야 한다.  (관세를 내지 않도록) 150~200 달러 미만으로! 황금 사이즈가 솔드아웃 되기 전에!  신중하게 직구 한 판을 한다.


 한국 드라마는 고사하고 미드나 중드를 볼 시간 여유가 없는 나에게 라디오 채널에서 리스닝과 들리는 대로 따라 하는 쉐도잉 연습을 하고, 핫딜과 함께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직구 쇼핑을 하며 쫄깃하게 신나게 리딩을 익히는 것이 나의 틈새 외국어 학습법이자 나의 은밀한 취미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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