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모닝에는 빵모닝이지.
오전 6시. 일요일에도 일찍 눈이 떠졌다. 스마트폰으로 누워서 뉴스를 확인하고 잠을 깨우니 뜨거운 커피에 달콤한 빵이 먹고 싶어졌다. 간단히 걸을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니 7시 10분 전이다. 아주 오랜만에 동네를 걷는다. 어제 내린 비로 더위가 한 풀 꺾여 날이 선선해지고 해도 없고 바람까지 솔솔 불어오니 걷기에 최적인 환경이다. 십분 정도 걸려 목적지인 도넛 가게에 도착했더니 아직 오픈 전이다.
나도 런데이 어플을 사용해볼까? 집에 다시 들어가기에는 아직 빵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고 나온 김에 걷기 시작했다.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런데이 어플’을 켰다. 가볍게 걷기를 선택하여 어플에서 시키는 대로 턱을 당기고 걸어본다. 걷기가 지루할 때쯤 ‘런데이 AI’ 코치가 잘 걷고 있다고 격려를 해주니 혼자 걷기도 제법 즐겁다. 걸으면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목적으로 걷고 달리고 있다. 꽤 커다란 동선으로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40분을 훌쩍 지나서 원점인 도넛 가게로 돌아왔다. 8시 오픈까지 아직도 10분은 더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기가 지루하고 조금 더 걷고 싶은 마음에 5분 거리의 꽈배기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일요일 오전에는 일찍 가게문을 열지 않는구나. 다시 도넛 가게에 돌아왔다. 매장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는데 갑자기 달콤한 것에 대한 식욕이 사라졌다. 그래도 이왕 애초의 목적이었으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걸었던 것이 아까워서였을까? 건강하게 열심히 걸었더니 달콤한 유혹이 느껴지지 않는다.
"빵 속 파주시고 야채 듬뿍 넣어 주세요"
도넛 가게 옆의 샌드위치 가게에도 매장 간판에 오픈 사인이 들어왔다. 계획에 없었지만 빵은 먹어야겠고 더 건강한 빵이 먹고 싶어 졌다. 다이어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빵 파기’ 주문을 해보았다. 빵은 호밀로! 요술 주문 덕이었는지 자동으로 눈이 갔던 덩어리 초콜릿 쿠키는 눈길만 주고 주문하지 않았다.
8 천보를 걸었더니 생긴 활력. 집을 나섰을 때는 당장 당분이 채워줘야 할 정도로 에너지가 없었는데 공복에 1시간가량을 움직이고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힘이 났다. 집에 돌아와 뜨거운 커피에 샌드위치를 먹었더니 꿀맛이다. 평소 올리브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짭조름한 올리브가 유난히 맛있다. 걸었더니 활력이 생긴다. 오후에 할 분리수거함을 정리해놓고 세탁기를 돌리고, 마지막으로 샤워까지 마치고 나니 아침의 경건한 의식을 마친 듯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그저 가볍게 걷기만 했을 뿐인데 머릿속이 정리되어버렸다
컴백 글쓰기. 서재방으로 들어와 책을 한 권 집어 들다 갑자기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브런치에 글쓰기 생활에 입문한 지 6개월의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며 나를 다독여주며 위로가 되었던 글쓰기가 언제부터인가 주저주저 쓰지 못하고 겨우 꾸역꾸역 쓰고 있었던 것 같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다시 쓰고 싶어질 줄이야. 무엇을 써야 할지 여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오늘 아침의 단상을 기록하며 이렇게 충동적으로 다시 글쓰기 생활로 돌아와서 참으로 다행이다.
오늘의 8천 걸음이 다시 글쓰기와의 소통을 하게 해 준 듯하다. 게으름과 코로나 시국이라는 이유로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우중충해진 마음의 커튼이 걷힌 듯 내 앞에 세상이 다시 반짝인다. 다시 찾은 나의 선데이 모닝 글쓰기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글쓰기를 사랑한다. 글을 쓰는 것에 뒤늦게 흥미가 생긴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부족한 능력에 글을 쓸 때마다 자꾸 앞과 뒤, 옆, 주변과 결과를 의식하게 된다. 글을 쓰는 과정을 즐겨야 하는데 뒤 따라오는 많은 생각은 글쓰기를 두렵게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며 생각을 비워보자, 비워낸 만큼 또 담을 수 있을 것이다.
글태기가 다시 찾아오면 맛있는 빵을 먹으러 묵묵히 걷고 또 걸어야겠다. 걸었더니 마법처럼 머릿속 뿌옇던 안개가 걷히며 몸이 가볍고 마음도 새털처럼 가볍다. 빵과 걷기의 콜라보로 글태기를 극복하게 되어 한없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