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커피여.
신하: 침소에 드실 밤에 가배는 적당치 않사옵니다.
고종: 짐은 가배가 의지가 된다. 정신이 더욱 또렸했으면 함이다.
- 미스터 션샤인 10회, 고종의 대사 中
뒤늦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고종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나도 커피가 의지가 됐다. 나에게 커피는 코로나 시국을 잘 견디게 해주는 힘이자 하루의 쉼표이다.
새벽 3: 34분. 갑자기 눈이 떠졌다. 거실로 나와 보니 남편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초롱초롱하게 티브이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 했는데 강제로 남편이 보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시청했다. 가뜩이나 걱정거리가 있어 잠을 설쳤는데 무거운 내용 때문에 생각은 더 많아졌다. 서로의 시름을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지만 고요한 새벽 남편과의 소통에 애를 쓰는 대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가지고 와 책을 펼쳤다. 향긋한 커피 내음을 맡으니 시름이 덜어지는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책 속의 문장 몇 줄을 읽자마자 스르르 눈이 감겼다. 깜빡 잠들었던 것 같은데 6시 기상 알람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새벽에 비가 왔는지 아침 공기가 싸늘하다. 잠을 깨기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서둘러 챙겨본다. 쌀쌀해진 날씨 덕에 따뜻한 커피가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 같다. 커피가 남편보다 낫구나;;;
커피로 마음을 다스린다.
아이들을 깨워 서둘러 아침을 먹이고 온라인 수업 준비를 채근한다. 느닷없는 역병의 출현으로 등교 횟수보다 집에서 온라인 수업하는 날들이 많아진 아이들 덕분에 1년 7개월째 나는 아이들을 향해 매서운 잔소리를 퍼붓고 있다. 변함없이 온라인 수업 중에 종종 딴짓하는 나의 아이들도 여전하고, 그칠 줄 모르는 코로나의 기세도 여전하지만 커피 한 잔의 여유가 버럭 올라오는 화를 종종 꾹꾹 눌러준다.
커피가 활기를 가져다준다.
아이들을 데리고 독감 접종을 한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달콤하고 바삭한 꽈배기 한 봉지를 샀다. 꽈배기에 곁들인 커피 한 잔으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올 겨울을 대비하여 독감 접종까지 마치니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여 볼륨을 높였다. 아이가 활짝 웃을 때 따라 올라오는 볼 살이 오후의 햇살에 비쳐 눈부시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커피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로 마음 편히 어딜 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커피는 나에게 힐링이 되어주었다. 나의 정신을 깨워주고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준다. 코로나로 일상은 단조롭다가도 답답하고 스트레스는 쌓여가지만 나를 위로해주는 커피가 있기에 하루하루를 무사히 버틸 수 있다.
커피는 어느새 지금의 내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커피에 의지하는 내 마음도 달라질까?
나는 따뜻한 커피를 좋아한다. 나의 커피에 다른 온도는 있을 수 없다. 따뜻하지 않은 커피는 음료수일 뿐 더 이상 커피가 아니다. 씁쓸한 블랙커피 향이 코끝에 퍼지고 부드럽고 진한 크레마 거품 첫 모금을 마시노라면 “ 아~! 좋다.” 하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커피와 예쁜 컵만 있으면 마음속은 날마다 축제다. 매일 어떤 잔에 나의 커피를 마실지 소소한 고민을 즐긴다. 바쁜 아침에는 주로 블랙&화이트의 줄무늬가 그려진 깔끔하고 경쾌한 프랑프랑의 커피잔을 선택한다. 졸리기 쉬운 오후에는 화사한 꽃무늬가 그려진 한때 국민 컵이었던 포트메리온의 커피잔이나 스타벅스의 시티컵을 꺼내어 방구석 여행을 떠난다. 11월 중순이 되면 빌레로이 보흐의 디자인 나이프 크리스마스 머그컵을 꺼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흠뻑 취한다.
커피의 어울림. 커피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보다는, 빵과 함께 잘 어우러질 때 커피의 진가가 발휘된다. 아침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에 다소 뻑뻑한 스콘, 묵직한 베이글, 폭신한 머핀이 어울린다. 피곤이 몰려오는 오후에는 달콤한 디저트 종류의 쿠키, 도넛, 케이크가 함께해야 제격이다.
빵런! 샤넬 오픈런 보다 치열하다는 빵 오픈런을 하기 위해 최적의 날을 기다렸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날이 적당했고, 아이들은 등교를 했다. 오픈런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모두 학교에 보낸 후 20여분 남짓 버스를 타고 바지런을 떨어 핫한 카페 ‘런던 베이글’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8시 45분이다. 비가 보슬보슬 하염없이 내리는 날이어서인지 줄이 길지 않아 얼마 기다리지 않고 매장 안에서 먹을 수 있었다. 매장 안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침울한 바깥 날씨와 대조적으로 귀한 베이글을 득템한 사람들의 기쁨에 찬 긍정 에너지가 매장 안에 흘러넘쳤다. SNS에서 많이 추천하는 수프와 잠봉뵈르 대신 참깨 베이글과 바질 베이글을 주문했다. 심플 이즈 베스트!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집의 베이글은 밀도 높은 묵직한 맛은 덜하지만 고소한 풍미와 쫄깃함이 매력적이다. 그동안 내가 먹었던 베이글은 고무줄이었나? 싶을 만큼 포슬포슬하고 쫄깃쫄깃하다. 하루의 첫 시작을 이렇게나 맛있는 빵과 커피와 함께 할 수 있다니 행운의 날이다.
카페를 나서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베이글을 종류별로 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행복을 살 순 없지만 빵을 사니 금세 행복이 차오른다.
HOT HELLO. 커피는 마시는 시간이 중요하다. 특히 가족들이 아직 깨기 전인 이른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잔은 그날 하루의 감정이 좌지우지될 정도로 중요한 의식이 된다. 모닝커피 수혈을 하며 하루 일과를 체크하고 책도 읽고 메모 한 줄이라도 써내는 날이면 계획적인 인간이 된 듯 뿌듯 해지며 부드러운 엄마가 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겨 집안일도 속사포처럼 해내는 슈퍼 파워를 발휘한다.
me-time. 친구와 함께 일 때는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따뜻한 커피를 마실 타이밍을 놓치기에 홀로 따뜻한 커피를 음미하며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하루의 스트레스도 날리고 에너지 재충전을 한다.
나는 커피가 의지가 됐다. 경건하게 아침을 시작할 때도, 근심으로 밤잠을 설쳐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새로운 생각을 끄집어낼 때도, 옛 추억에 잠길 때도, 잠이 쏟아질 때도, 잠을 깰 때도, 뜨거운 여름날에도, 쌀쌀한 날씨에도, 주저주저 자신감을 내지 못하는 일을 앞에 두고도, 벼락치기 시험을 준비할 때도 언제나 나를 응원하며 함께 하는 나의 따뜻한 친구, 커피가 있기에 나는 나의 일상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언젠가부터 이 녀석에게 꼼짝없이 사로잡혀 하루에 커피 두 잔을 꼭꼭 마셨더니 위염이 재발했는지 속이 쓰리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 커피를 어떻게 끊어야 할지를 걱정하고 있으니 커피를 끊는 것은 정녕 불가능할 것 같다.
힘든 날은 힘든 날대로 , 좋은 날은 좋은 날대로 따뜻한 커피와 함께 울적 하기도, 미소 짓기도 하며 내 마음의 온도는 높아진다. 나의 따뜻한 친구에게 특별한 나의 마음을 전하며 불편한 속이 편안해져 죄책감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한다.
사랑하는 나의 따뜻한 친구와 오래오래 함께 하고프다. 내일은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 우유 거품을 곁들인 부드러운 카푸치노 딱 한 잔만 마시고 싶지만 칡즙으로 대신하련다.
아!~커피여, 우리 잠시만 안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