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알사탕'
소리를 듣고 나를 인정해주는 친구,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라는 뜻의 知音知己 지음지기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처럼 백아의 거문고 소리만을 듣고 종자기는 백아의 속마음까지 알아들었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를 부수고 평생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자기의 소리를 들어줄만한 사람이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남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의 마음을 이해받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법이다.
구름빵으로 잘 알려진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알사탕』은 주인공이 우연히 마법 알사탕을 먹고 주변 사물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 동동이는 혼자 구슬치기를 하며 논다. 동동이는 새 구슬이 필요해서 문구사에 갔다 여러 무늬의 알사탕 봉지를 발견한다. 각각의 무늬 알사탕을 먹을 때마다 무늬와 비슷한 색깔의 사물이나 사람의 마음 소리가 주인공 동동이에게 들린다. 동동이는 마법 알사탕을 먹고 아빠의 잔소리가 아빠의 사랑인 것을 알게 되고, 이제 늙어서 자꾸 눕고 싶었던 강아지 구슬이가 동동이를 싫어한다는 오해도 풀게 되고, 소파의 힘든 점도 알게 되었다. 특히 돌아가신 할머니가 혼자 노는 동동이가 외롭지는 않을까 걱정해주는 마음이 뭉클했다.
어릴 적 나는 부모님과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대학생이 되어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에 동동이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않고 집에만 쳐 박혀 혼자 놀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할머니는 꼬깃꼬깃 모와 두셨던 만원 몇 장과 동전을 꼭 쥐어주시며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 사 먹고 오너라. 집에만 있으면 외로워서 못 쓴다”하며 걱정을 하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갑자기 음식을 삼켜 넘길 수도, 말씀을 하실 수도,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릴 수도 없을 만큼 기력이 쇠진해지셨다. 대학 졸업 후 직장 때문에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던 나는 아프신 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곁에서 간호해드리지 못해 속만 탔다. 하루는 시간을 내어 할머니를 보러 집에 갔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셨던 것 같았다. 한마디 단어조차 내뱉을 수 없이 몹시 쇠약해진 할머니였지만 내 얼굴을 보자마자 어디서 힘이 나셨는지 할머니의 거칠고 메마른 손을 들어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고는 베갯잇 안에 넣어 둔 만원 지폐 두 장을 꺼내서 내 손에 꼭 쥐어 주셨다.
대학생 시절의 그때처럼...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타지에서 외롭게 혼자 있지 말라고’.......
마법의 알사탕을 먹지 않아도 할머니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셨을지 할머니의 마음을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나에게도 동동이의 마법 ‘알사탕’이 생긴다면 지금 외로울 새도 없이 바쁘게 잘 지내고 있는 손녀딸의 모습을 보며 안심하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자주 꺼내 먹지 않을 뿐 내 마음속에도 동동이의 마법 ‘알사탕’이 존재하는 것 같다. 어쩌면 글쓰기 시간은 내 마음속의 알사탕을 꺼내어 녹여 먹으며 나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마법의 시간일지 모른다. 그 시간을 통하여 아임 낫 파인이었던 마음은 어느새 아임 파인이 된다.
할머니 내 목소리 들려?
아주 잘 들려.
할머니는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어.
여학교때 친구들을 모두 만났거든.
옛날처럼 막 뛰어다니면서 논단다.
동동이도 친구들이랑 많이 많이 뛰어 놀아라.
《알사탕,백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