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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 in Nov 29. 2021

그녀는 오늘도 궁에 갑니다

한국 속의 이방인

 “캔 커피라도 스타벅스 커피는 사 오지 마세요! 저는 스타벅스 커피 안 먹습니다. “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스타벅스 캔커피를 내민 내 손은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몰랐다. 한국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일본이 저지른 만행이 떠올라 일본을 옹호하는 사람에 대해 좋은 말을 할 수 없다는 그녀의 표정이 비장하다.


 지난 평창 동계 올림픽 때 NBC 해설가로 나선 조슈아 쿠퍼 라모 스타벅스 이사가 “일본은 1910년부터 45년까지 한국을 식민 지배했다. 하지만 모든 한국인은 발전 과정에서 일본이 매우 중요한 문화·기술·경제적 모델이 되었다고 말할 것”이라고 발언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녀는 지금까지 스타벅스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카카오톡 선물함에는 스타벅스 기프트카드가 쌓여있지만 사용을 하지 않고 있다.


 6년 전 겨울 중국어 스터디 모임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서울시 (중국어, 한국어)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었던 그녀는 중국어와 한국어가 유창한 조선족이다. 영어 관광통역사인 중국어 스터디 멤버의 추천으로 그녀는 우리 중국어 스터디 모임의 선생님으로 초빙되었다. 당차고 씩씩한 모습의 그녀는 어색함 없이 곧바로 중국어 수업을 시작하였다. 한어 병음을 막 마친 기초 레벨부터 중급 중국어 레벨까지 멤버들의 다양한 중국어 실력을 아우르며 그녀는 찬찬히 수업을 진행하였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그녀의 수업은 중국어는 물론 수업 중간중간 중국 문화와 역사, 중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지루할 틈 없이 흥미진진했다.


 그녀의 고향은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함경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하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경상도에서 교회의 전도 활동으로 중국에 건너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낯선 중국 땅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어 자식을 낳아 일가를 이루었다. 중국에서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언어, 문화, 세시 풍속, 먹거리 등 한국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며 따르게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대체로 함경도의 풍습을 따르도록 하였는데 함경도에서는 입춘이 되면 먹거리가 부족해서 무를 꼭 먹었다고 해서 그녀와 오빠들에게도 입춘 아침에는 무를 꼭 챙겨 먹였다. 자상한 아버지와 검소한 어머니 밑에서 생활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오빠들이 막내인 그녀를 유독 예뻐하였다.  조선족 특별 자치주인 연변의 학교에는 한족과 조선족 반이 있어 한국말과 글을 배우며 공부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 덕에 중국에 살지만  부모로부터 배운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고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었다.


 활달하고 당찬 성격의 그녀는 중국 상해에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10년 동안 관광가이드를 했다. 그녀의 성격과도 아주 잘 맞아서 10년 동안 일을 쉬어본 날이 한 달이 채 안될 정도로 부지런히 상해 및 항주 소주 등지의 남방지역 일대를 다니며 그녀의 황금기를 보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한국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궁금증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고 중국에서 한국 책을 구하기가 여의치 않았기에 어렵게 구한 한국 역사책을 사촌 언니와 직접 타이핑해서 나눠 가지기도 했었다.  관광 가이드를 하며 한국에서 온 여러 여행객들을 만났는데 그중에 한국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으로 역사 탐방 온 ‘죽은 자의 숨결, 산 자의 발길’의 구호를 썼던 여행 단체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들을 위해 관광에 치중한 가이드 역할보다는 역사 해설에 더 치중하며 자료 준비를 하다 보니 어린 시절 한국 역사 공부에 대한 꿈이 떠올랐다.


 한국사는 그녀에게 운명의 수레바퀴가 되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오빠들과 사촌들이 한국으로 먼저 건너가 자리를 잡게 되었고 그녀도 한국에서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서른한 살의 나이에 한국땅에 도착했다. 한국이 낯설었지만 언어가 잘 통하고 그녀의 사촌들이 많이 있어서 쉽게 적응을 했고 인연을 만나 결혼도 했다


 한국에 와서도 관광 가이드 일을 계속했지만 결혼 후 갓난아기를 키우며 며칠씩 집을 비워야 하는 관광 가이드 일은 주변의 도움 없이는 육아와 병행하기 힘든 직업이었다. 아이의 아빠는 자신의 일로도 바빠서 기저귀 갈아줄 시간조차도 없었고, 시어머니는 일을 하시느라 아이를 돌봐줄 형편이 안되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관광 가이드 일을 접고 돈은 적게 벌지만 시간을 많이 뻿기지 않는 서울시 해설사가 되었다. 관광가이드 일과 멀어지지 않으려고 택한 차선책이었지만 서울의 궁을 누비며, 역사 현장 답사를 쫓아다니며 한국사 공부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다 보니 그녀는 서울시 해설사 직업에 흠뻑 빠져버렸다.


서울시 도보 해설 프로그램을 선청한 대만 유학생 두 명과 함께 나도 그녀의 해설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던 날이었다. 중국어로 길상사, 한용운 집터, 최순옥 가옥 등 성북동 일대를 걸어 다니며 해설을 하는 그녀는 두 시간 동안 지칠 줄 모르고 신이 나보였다. 실내에서 까리스마 있는 중국어 선생님의 모습보다는 확 트인 바깥에서 해설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황금빛 태양의 광합성 에너지를 받아 쑥쑥 자라는 노란 해바라기처럼 힘이 넘치고 빛이 났다.


 그녀와 중국어를 매개로 인연을 맺은 지 6년째이다. 중국어 공부를 통해서만 만나다가 코로나로 집에서 게임만 몰두하고 있는 초등 남자아이들의 육아에 대한 고민거리를 나누다 그녀가 아이들을 위해서 궁해설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녀의 아이, 나의 아이들을 데리고 일정 없는 주말에 날을 잡아 창경궁, 경복궁, 한양도성, 청계천 일대를 가을 동안 해설을 해주며 역사에 대해 풍성한 관심을 갖게 해 주었다.  (생후 9개월부터 아가띠에 업혀 문화센터나 키즈카페가 아닌 서울의 5대 궁궐로 엄마를 따라다녔던 그녀의 9살 된 아들은 창경궁에 가면 금천교부터 찾는다. )


 경복궁 해설을 1시간쯤 들었더니 어느새 아이들은 흩어져 널따란 궁을 뛰어다닌다. “궁에 오면 신나는 것을 보니 너희들은 전생에 왕이었나 보다.” 라며 그녀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잠시 후 아이들을 불러 모아 준비해온 스케치북을 나눠주며 오늘 해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를 그리자고 했다. 아이들은 집중을 해서 경복궁 근정전의 용을, 일월오봉도의 병풍을, 수정전 앞의 소나무를 그렸다.


 아이들과 같이 그녀의 해설을 들으며 나도 조선시대에 대한 역사 인식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이십 년이 넘게 서울에 살고 있지만 서울이 고향이 아닌 탓에 서울의 맛집을 찾아다니고, 쇼핑을 하는 것  말고는 딱히 서울에 대한 애정이 없었는데 그녀의 해설을 들으며 조선시대 역사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는 서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기게 되어 서울에 대한 애정이 싹트게 되었다.


  며칠 전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던 날 가을 단풍을 보러 그녀와 덕수궁에 갔다.  평소 다녔던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이 아닌 영국 대사관 쪽의 덕수궁 돌담길로 향했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먼저 세실 극장의 낮은 옥상에 올라 덕수궁, 시청 , 성공회 건물을 눈에 담은 후 영국 대사관 옆 덕수궁 안쪽의 샛문을 열고 들어가니 보행로에 노란 은행잎들로 낙엽길이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니 입을 다물수가 없다.” 와 아름다워라! “

 한적한 돌담길을 걸으며 미대사관저를 지나 서울 시립미술관, 서울 시청 별관 앞의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 앞에 섰다.  “대한제국은 처절하게 일본에 저항한 항일 정부입니다. "라고 시작하는 그녀의 해설을 듣고 있자니 깊은 밤에도 국권을 지키기 위하여 쉬이 잠들 수 없었기에 가배로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팠던 고종의 심정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라를 팔아먹은 황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일제에 치욕을 당하면서도 최대한 국민들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하지 않으려고 애쓴 고종의 깊은 고뇌가 느껴져 덕수궁의 떨어지는 낙엽이 더욱 애잔하고 쓸쓸하게 보였다. 덕수궁을 돌아보고 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장 뒤편에 조선호텔 앞의 환구단의 해설까지 알차게 마치고 집으로 가는 나의 버스 편을 확인해주는 것으로 그녀의 다정한 일정을 마쳤다.


 나는 그녀를 한국어를 잘하는 이방인이라고만 여겼는데 한국사를 사랑하고 한국사를 꿰뚫고 있는 그녀와 함께 있다 보면 누가 이방인인지 헷갈린다.  오늘도 그녀는 창덕궁에서 해설을 한다. 그녀의 한국살이에서 서울시 역사 해설이 삶의 기쁨이 되어 쑥쑥 성장할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며 그녀의 해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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