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크게 뜨고 보세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 눈물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만남> 노사연
삶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만남을 경험합니다. 떠나버린 그리운 만남, 이제 시작하는 설레는 만남, 옅어지고 시들어가는 만남, 오래도록 붙잡고 싶은 현재의 행복한 만남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리운 얼굴이 떠올라 이 노래를 발표곡으로 정했습니다. 가창력이 필요한 곡인데 괜찮겠냐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귀를 틀어막을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준비한 발표는 손짓 언어인 수어로 진행됩니다.
지난 6, 7월 4주 동안 황금 같은 토요일 4시간을 수어 특강에 참여했습니다. 놀랍게도 4주 만에 자그마치 수어 기초 단어와 총 14곡의 노래를 수어로 배웠습니다. 당장이라도 안녕하세요?라고 수어로 인사가 나옵니다.
첫 수업 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농인은 못 듣는 사람이 아니고, 잘 보는 사람입니다.
관점을 바꾸면 상황이 바뀝니다. 막혀있는 듯 하지만 열려있습니다. 그러니 긍정 관점을 가지세요.”
교수님의 말씀처럼 정말로 관점을 바꾸면 긍정적인 상황으로 바뀌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수어는 그동안 관심 밖의 영역이었습니다. 교수님이 시범으로 보여주는 수어 동작은 머리로는 이해한 것 같았지만 막상 갈 곳을 잃은 두 손은 허둥지둥 대느라 바빴고, 잠시 딴생각을 하다 보면 금세 뒤쳐져서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네 시간의 수업을 받으며 하루의 총명 에너지를 다 써버렸는지 첫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면서 반대 방향의 지하철을 타버렸습니다. 40분이면 집에 도착하고도 남았는데 1시간 30이나 걸려서 집에 겨우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눕혔습니다. 다음 주에 출석하지 말아야 할 오만가지 이유를 생각해 내면서요.
토요일에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고, 약속이 생기거나 여행을 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딱히 정해진 약속도 계획도 없으니 결석을 할만한 중대한 핑계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참여하는 데에 의의를 두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두 번째 수업에 출석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수업을 빠졌더라면 좋은 기회를 놓칠 뻔했구나 싶을 만큼 단어를 익힌 후 노래로 배우는 수어 교육은 힐링이 되었습니다. 멜로디와 가사가 가진 노래의 힘을 통해 수어를 배우니 매우 즐거웠습니다. 지난주 힘들다고 생각 들던 수어교육이 두 번째 수업에는 쏙쏙 쉽게 이해되었습니다.
뜨거웠던 열기로 가득했던 4주간의 수업이 끝나고 드디어 마지막 수료식과 함께 수어 발표식을 남겨 놓았습니다. 따라 하기 쉬운 단순한 동작이 제일 마음에 들었고,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가사가 좋아서 발표곡 리스트에 있는 <만남>에 지원했습니다. 다소 가라앉는 침울한 분위기의 곡이라 발표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서인지 지원자가 저와 다른 한 명뿐이어서 둘이서 오붓하게 연습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짝꿍복이 있었는지 성실하게, 열심히 연습해 온 짝꿍의 리드로 꼼꼼하게 동작을 잘 따라 하며 순서를 익혔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한다 생각하니 너무나 긴장을 했는지 자꾸 화장실에 가느라 방광이 지쳤고, 어깨가 뭉쳐서 뻐근해졌습니다. 아무튼 나름 비장한 표정 연기까지 더하여 발표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수어 발표가 성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제대로 즐기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 이런 발표의 기회가 생긴다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발표하는 과정을 즐겨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발표곡은 <만남>이었습니다. 떨렸지만 차분하게 곡을 마무리했습니다. 발표가 끝나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어 다른 분들이 준비한 곡을 함께 따라 하기도 하고, 신나는 발표곡을 보며 덩달아 많이 웃었습니다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받고 있지요”
“ 야~야~야~내 나이가 어때서 수어 하기 딱 좋은 나인데” (안녕하세요~ 웃으며 깜찍한 율동과 발랄함에 웃음이 만개했습니다.)
“ 거친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 양을 마~시자 보석처럼 찬란한 무지개가 살고 있는 저 언덕 너머 내일의 희망이 우리를 부른다. 젊은 그대 잠 깨어 오라 아~아~사랑스러운 젊은 그대 아~아 태양 같은 젊은 그대 젊은 그~대” (젊은 그대가 되어 어디든 달려가고 싶어 집니다. )
(합창곡)
“내가 사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따르고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손을 앞으로 펼쳐서 )”
노래 가사, 멜로디와 함께 수어로 전달되니 벅차오르는 뭉클함이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 셀프로 나를 안아주는 동작에서 정말 마음이 행복해졌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두 손을 뻗어 행복 주문을 걸었습니다. 행복해졌나요?
개인적으로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시기에 만난 너무도 시기적절한 행복한 수어 통역 수업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의 세상, 세상의 편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감히 평생을 소리와 단절된 채로 살고 있는 농아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자 하는 거룩한 생각으로 수업에 등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는 현재 사회복지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도움이 될까여서였고, 두 번째는 언어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수어는 일반적인 언어와 달리 어떻게 소통하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세 번째는 어릴 때 아이와 문화센터 강좌인 베이비사인을 매우 재미있게 배웠던 기억이 있어서였습니다. 베이비사인과 수어는 같지는 않았지만 언어 구사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과 손으로 하는 소통 방법인 것은 같았습니다. 아직 말문이 터지지 않아서 답답할 아이 입장에서 즉각적인 소통을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웠던 베이비 사인으로 아이는 버스가 온다며 엄마한테 버스 사인을 보여주고, 자동차, 오토바이 비행기등의 단어를 손짓으로 표현하며 매우 후련해하고, 뿌듯해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청각장애인은 병리적 의학적 관점에서 청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농아(聾啞)라는 표현도 있는데 聾(귀머거리 롱)은 듣지 못하는 사람, 啞(벙어리 아)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농아인은 청각장애인 중에 내가 청각장애인이지만 수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 농 聾 (귀머거리 농) 啞(벙어리 아) 문화를 가졌다고 인식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 달간 수어 통역을 교육해 주신 정택진 교수님의 아내인 이주순 님은 농아인입니다. 결혼 전 아름다운 아내와 소통하고자 교수님은 수어를 배우셨다고 합니다. 오늘 이주순 님이 발표식에 오셔서 수어 통역을 배우는 학생들과 대화를 해보고 한 명 한 명 얼굴 이름을 지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배운 것을 어렵사리 기억해 내어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000입니다. ”라고 수어로 인사를 했는데 막상 손동작이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 긴장을 했습니다. 내 동작에만 초점이 맞춰지니 상대와 눈 맞춤을 생각할 겨를도 없고, 소통이 어렵다는 생각이 강해져 마음이 닫혀버렸습니다. 그럼에도 열심히 저를 관찰하신 후 고심한 끝에 제 얼굴 이름을 단발머리라고 지어주셨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막 감고 급히 말리고 온 머리가 붕 뜨고, 곱슬머리가 한층 부해 보여서 인상에 콱 박히셨나 봅니다. 제대로 소통을 다시 해 보고 싶습니다. (엉엉 다른 얼굴 이름 만들어주세요. : D)
드디어 발표가 끝났습니다. 함께 수어를 배웠던 모든 분들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해내었습니다. 저마다의 열정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멋진 만남을 연결해 준 빛나는 수어 덕분입니다.
수어 교육을 마친 지금, 4주 전의 관점에서 저마다의 관점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수어 발표를 마친 사람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행복한 얼굴로 상기된 표정을 보니 긍정적인 관점으로 바뀌어 보입니다. 상황도 조금은 바뀌었겠지요.
단체 촬영도 끝냈고, 교수님께 다가가 내 짝꿍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애정과 보람 없이는 못할 알찬 강의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번에는 자신 있게 교수님과 아내분께 수어로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다음에 또 만나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특강은 끝났지만 정택진 교수님의 유튜브와 밴드에 올려진 곡들을 여름 동안 연습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평소 써보지 않던 손동작을 많이 사용해 보니 깜빡하던 기억력이 좀 좋아졌고, 굼뜨던 손동작이 꼼꼼해졌습니다.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서 따라 배우니 덩달아 유쾌해져서 유익함이 많았던 수어 교육이었습니다.
https://youtube.com/watch?v=ut5GLiTGWfg&si=-lcu_NGK-RZYTvjJ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고(지각 두 번) 받아낸 수료증을 보니 뿌듯하기 그지없습니다. 내 이름과, 내 나이, 가족 소개를 수어로 할 수 있고, 내 발표곡이 생겼네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미워해요. 예뻐요. 못생겼어요. 기뻐요. 안녕하세요. 배고파요, 맛있어요 등등 몇 개의 단어도 수어로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중 '수화를 사랑하는 수*', '히로와 나누는 사랑의 수*‘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어 동작이 많아 쉽게 수어를 배울 수 있으며, 모두 농 여성 청년들이 직접 제작한 이모티콘이어서 더욱 특별합니다. 이 이모티콘을 사용하면서 수어를 통해 마음을 전하는 따뜻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니 카톡 대화 중에 수어 이모티콘을 사용하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수어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한국수어 사전-열린 수어를 설치해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어플 설치가 안되면 국립국어원 수어사전을 검색하여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 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 https://sldict.korean.go.kr/front/main/main.do#
여전히 수어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각 지역마다 수어전문 교육원이 있다고 하니 한 번 살펴보세요. 말도 안 되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수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온라인/오프라인강의가 있습니다.
http://m.sdeafsign.or.kr/SEW1/m_main.asp
(서울수어전문교육원)
혹시 아나요? 호기심에 배우다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여 한국수어교원자격증, 수어통역사에 도전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 저는 카톡 이모티콘 구매까지만 진도를 나가렵니다.
올여름 어떤 만남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수어와의 만남을 살포시 추천해 봅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윤종신과 정인이 함께 부른 <오르막길>의 가사를 덧 붙입니다. 교수님이 아내를 바라보며 <오르막길> 노래로 수어 통역을 하셨는데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가진 것을 주려고 하는 따뜻한 마음,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귀한 마음을 두 분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인생의 여러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서로가 큰 힘이 되었겠지요?
인생의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나야, 남편아, 동생아, 친구야,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파이팅!
오르막길 - 윤정인, 정인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 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난 견디겠어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크게 소리쳐 사랑해요 저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