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관계가 남긴 질문들
꿈은 대체로 현실을 반영한다.
의식 저편에 밀어두었던 감정이, 꿈을 통해 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대학생 시절,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순수하게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용돈이 부족했던 우리는 도시락을 싸 와 나눠 먹었고, 블로그 아이디를 공유하며 하루를 기록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어 갔다.
그러던 우리도 결국 헤어졌다.
결별의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었다.
먼저 취업한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모임이 더 즐거워졌다.
데이트보다 다른 사람과의 술자리가 더 설렜고, 자연스레 연락의 빈도는 줄어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남이 되었다.
그를 떠올리면 지금도 미안함이 크다.
그래서인지 헤어진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가 꿈에 나온다.
꿈속에서 우리는 다시 가까워지지만, 그 끝은 늘 같다.
내가 술을 마시고 연락이 끊기면, 그는 묵묵히 기다리다 결국 혼자가 된다.
반복되는 꿈을 보며, 아직도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남아 있음을 알았다.
얼마 전, 그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그 누구보다 배우자를 아끼며 살 사람이란 걸 알기에,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묘하게 쓰렸다.
이미 정리한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이 감정이 선뜻 납득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꿈속에 P가 자주 등장한다.
P는 올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이성이다.
꿈속에서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여자친구가 생겼어.
열 번쯤 만났으니 이제 사귀어야겠더라고.
그래도 나는 너 좋아해."
현실에서도 그가 할 법한 말투였다.
그래서일까. 잠에서 깬 뒤에도 불편한 기분이 오래 남았다.
그제야 나는 자각했다.
확신을 말하지 않는 관계를 이어간 내가 문제였다는 것을.
올해 초, 소개팅으로 알게 된 분이 있었다.
두 달 가까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호감은 분명 있었지만, 관계는 깊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소개해준 지인이 다른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알았다.
그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라는 걸.
예상대로 두 사람은 금세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분명 내가 끝낸 관계였는데, 그의 연애 소식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만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는 친한 오빠에게 소개팅을 받아보라는 연락이 왔다.
나는 이런저런 감정으로 마음이 복잡하다며 선뜻 나서지 못했다.
대신 내가 원하는 이상형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러자 오빠가 말했다.
"내 레이더에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 있어.
조금 더 지켜본 뒤에 알려줄게.
조급해하지 마. 좋은 사람은 분명히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주변을 돌아보니,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최근 내 마음이 복잡했던 건,
전 남자친구의 결혼 소식이나 지나간 인연들의 연애 때문이 아니었다.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던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신 없는 관계를 설렘으로 착각하며 같은 감정을 반복해 온 시간들.
그 패턴을 또렷하게 마주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한 나를 준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