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에서 자기주도학습의 영감을 얻다
나는 내 아이의 유일한 엄마 코치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단축근무 일 년 반 동안 아이돌보미도 가사도우미도 없이 버티다가 드디어 온근무로 전환했다. 그사이 아이는 부쩍 커서 따로 돌보미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일하면서 틈틈이 아이를 챙기려면 가사까지 혼자 하기는 아무래도 무리겠지.
가사도우미를 알아보려고 하니 머리가 지끈하다. 사람 쓰는 것도 익숙하지 않고, 일일이 지시를 하느니 내가 해버리는 게 나을 거 같기도 하고. 고민하다가 갑자기 번뜩 '우리집 머리는 남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크리스천 엄마들을 위한 제언). 그래, 우리집 머리가 따로 있는데 왜 내가 고민하고 있지? 남편에게 맡기자.
'페어플레이 프로젝트'라는 책에 방대한 양의 집안일 목록이 있었던 것을 기억해 내고, 이리저리 검색해서 리스트를 뽑은 후 남편에게 내밀었다.
"여보, 내가 직장 다니면서 아이를 돌보려니 집안일까지 주도하는 건 좀 무리 같아. 당신이 집안일 리스트를 보고 할 일을 나눠주면 그대로 할게. 당신이 우리집 책임자니까." 그리고 뒤에 선심 쓰듯이 덧붙였다. "힘들 거 같으면 얼마든 가사도우미를 써도 돼. 도우미 관리는 당신이 해." 그리고 가사도우미 어플까지 남편의 카톡으로 전송했다. 캬캬캬
집안일을 청소, 세탁, 요리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남편은 긴 목록을 보고 놀란 듯했다. "이렇게 많단 말이야?" 그러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일단 청소와 설거지는 자신이 전담하겠단다. 그리고 말 떨어지기 무섭게 매일같이 청소기와 식기세척기를 시. 켜. 서. 가 아니라 책. 임. 지. 고 돌리기 시작했다. 와우!
의외의 복병은 나였다. "당신이 책임져. 나는 시키는 일을 할게."라고 말하자마자 집안일이 하기 싫어진 것이다. (저렇게 말한다고 해서 남편이 실제로 총책임자가 되겠느냐마는) 일단 말이라도 책임을 전가하고 수동적인 자세가 되자 안 그래도 집안일에 없던 흥미가 더 떨어졌다. 은근슬쩍 '아아.. 시키는 일은 하기 싫은데.'라는 마음도 들고. 자기가 주도하고 선택하는 것과 타인의 지시에 따르는 것은 이렇게 동기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느껴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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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자기주도학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동안 '아이가 어떻게 하면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자기주도학습을 배우다니, 그런 이율배반적인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싶으면서도 뭐라도 가르치지 않으면 배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주도학습과 세트로 따라오는 내적 동기, 자발적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생기는 거구나. 아이는 스스로 성장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에,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바깥 상황을 탐색하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전략을 짤 여유만 있다면 충분히 내적 동기를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내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종이접기를 잘하는 친구들을 엄청 부러워하면서 따라 접고 싶어 했지만 소근육 발달이 늦어서 잘 되지 않았고, 그때마다 어렵다고 울고불고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마음이 쓰이면서도 '종이 접기를 뭐... 학원 보낼 것도 아니고.' 하며 내버려 두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아이가 유튜브에서 네모 아저씨 동영상을 무한 반복해서 볼 때 방해하지 않은 것, 그리고 잘 되지 않는 부분을 같이 연습해 보자고 들고 왔을 때 응해준 것(그것도 내가 피곤할 땐 안 했다)이 전부였다. 그런데 아이는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 잘 접는 축에 든다. 어디까지나 스스로 전략을 짜서 이루어 낸 성과이다. 그것이 아이의 자기 효능감 향상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어른들은 아이에게 뭔가를 가르쳐서 자기 주도성을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보다 앞서 미리 계획을 짠 후 그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 과한 칭찬이나 보상, 압력과 기대, 때로는 제재와 처벌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되는구나.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 그리고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하구나.
이것은 코칭과도 일맥상통한다. 그 사람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힘을 믿는 것, 옆에서 기다려 주는 것, 해결책을 밖에서 주입하는 게 아니라 속에서 이끌어 내도록 돕는 것. 그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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