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부터 매우 인기 없는 주제에 관하여 말하려고 한다. 아마 당신이 크리스천이 아니라면 읽다가 혈압이 오를 수도 있으니 살짝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시기를 추천한다.
나는 20대까지 거의 안티 크리스천에 가까운 삶을 살다가 20대 후반에 어떤 계기로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새신자 교육을 담담하는 전도사님이 내게 성경을 가르치셨는데, 대부분의 내용은 쑥쑥 흡수했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에베소서 5장 23절 전반)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니 이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얘기죠? 지금은 21세기라구요. 저 말씀은 마치 '여자는 머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기도하라(고린도전서 11장 5절)'는 것처럼 오래 전에 폐기된 율법 아닌가요?
나는 입에 거품을 물고 씩씩거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소싯적에 나름 페미니스트를 자부하면서 중앙도서관 담벼락에 '성희롱 근절' 대자보를 붙이던 여자란 말씀이야. 제 아무리 신앙을 갖게 되었다 하더라도 양심에 반하는 교리를 따를 순 없지.
전도사님이 여러 가지로 설득하셨는데 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지막에 지쳤다는 듯이 툭 던지신 말씀이 똑똑히 머릿 속에 남았다. "그럼 너는 남편의 머리가 되고 싶니?"
그 순간 속에서 '아니오'라는 대답이 튀어나오는 나 자신에게 놀랐다. 뭐, 지금은 솔로니까, 이 문제는 나중에 남편이 생기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잊어버렸다.
내가 선택한 남편은 성정이 부드럽고 착했다.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는 법이 없었고, 부정적인 말은 입에 담지 않았으며, 매사 느긋한 사람이었다. 그 성정과 세트로, 우유부단함이 따라왔다. 내가 성격이 급하고, 계획적이며, 추진력이 있는 것과 반대되었다. 때문에 나는 은연 중에 '우리 가족 내에 머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남편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했다.
결혼한 지 5년쯤 지났을 때, 나는 내가 수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엄마, 아내, 딸, 며느리, 거기에 힘들고 어려운 직장생활까지. 온갖 역할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자꾸만 나를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사소한 부분부터,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는 큼직한 일들까지 모두 내 결정을 거쳐야만 했다. 사무실에 있을 때에면 옆자리 남자 동료가 담담한 표정으로 일에 매진하는 것과는 달리 내 전화는 하루종일 쉴 새 없이 울렸다. 식구들은 물론 우유 아줌마에 세탁소 아저씨까지, 온 세상 사람들이 나만 찾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화가 났다. 돈 버는 것 외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에게. 돈은 나도 벌잖아. 당신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왜 자꾸 내 뒤에 숨어서 나한테 모든 걸 떠넘기는데? 가끔씩 청소기와 세탁기만 돌리면 다야?
아이 습관을 잡으려고 시작한 프로그램의 코치님이 내게 '밍이님, 먼저 남편에게 잘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을 때(아이보다 남편 먼저?), 나는 분통이 터져 나왔다.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라고! 하지만 당장 목마른 사람은 나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잘해줘야 하지? 애쓰고 수고하나 얻는 것이 없는 방법은 피하고 싶었다. 그 순간 갑자기 성경이라는 것의 존재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 어떻게 해요?'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는 가르침으로 주신 성경은 무시하고 있었구나. 교과서는 하나도 읽지 않고 문제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풀어요?" 하고 질문하는 학생 같았구나. 모든 답은 성경에 있었는데.
'성경적 아내로 사는 법'을 구체적으로 공부해 보고자 '마더와이즈'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번에 남편의 머리됨을 인정하라는 소리부터 나왔다. 하지만 옛날과 다르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 동안 나는 스스로 머리되려는 생활을 해왔지만 그것은 나를 피로하고 지치게 하기만 했다. 내게는 안식처가 필요해. 나를 커다란 나무처럼, 든든한 우산처럼 보호해주는 존재가. 이제는 더울 땐 나무그늘로 피하고, 비바람이 치면 우산 밑으로 들어갈 테야.
먼저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지 않은 죄를 회개했다. 남편의 성정이 어떠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하나님이 임명하신 가정의 머리이므로, 그 권위에 합당한 능력을 하나님이 주실 것이었다.
결국 나는 남편을 불신함으로써 그 뒤의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이었다. '남편이 불신자이든 아니든 머리가 된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는데, 나는 은연중에 신앙이 있는 내가 남편보다 낫다고 생각함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해왔던 것이다.
회개하고 나니 똑똑히 보였다. 남편이 내 뒤로 숨은 게 아니라 내가 성급하게 남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놀랍도록 편안해졌다. 내가 회개한 순간 내 머리 위로 보호막이 씌워지는 것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내가 지고 있던 숱한 짐들은 남편에게 이동했고, 이게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실 것이었다. 나는 이제 자유인이야!
그 뒤로 놀랍게도 모든 것이 순탄하다. 물이 자연스럽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가정 내 질서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의 훈육에서 드러났다. 이전에 나는 이 부분에 관하여 남편과 모든 면에서 부딪혔다. 내가 맞는데 왜 저 사람은 그걸 모르는 걸까?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가끔은 남편이 사사건건 나를 방해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인 내가 잘 알지, 당신이 뭘 알아! 속으로 항상 화를 내고 무시했다.
부부간의 양육관이 일치하지 않으니 아이는 그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했다. 내 말이 듣기 싫으면 남편에게 달려가고, 남편 말이 듣기 싫으면 나에게 달려왔다. 양쪽으로 오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취하려 들었다.
남편의 머리됨을 인정하고, 나와 의견이 다를지라도 결국은 남편 뜻에 따르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니 더이상의 불일치는 없었다. 그러니 아이는 피할 곳이 없었다. 아빠와 엄마의 통일된 가치관,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내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너무 쉽게 훈육을 받아들였다.
게다가 남편이 신중해졌다. 전에는 '어차피 아내가 마음대로 하겠지'라는 마음에 별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는 것을 알고 열심히 고민하더라.
지금 생각해도 매우 놀라운 일화가 있는데, 어릴 때부터 풍족하게 자란 남편은 아이에게 수시로 장난감을 사 주었고, 그 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며 잔소리했다. 그렇게 갖고 싶은대로 다 사주면 어떻게 절제를 배우겠어? 도끼눈을 뜨고 끌끌 혀를 찰 때마다 남편은 '내가 벌어서 내가 사주는데 뭐가 어때서!'라는 태도로 일관해왔다.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남편 뜻대로 할 테세를 보이면서 일절 잔소리를 끊고 나자,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내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 같아. 이제라도 고쳐야겠어."
천지개벽할 소리였다. 오 놀라워라!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더니,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더니 저절로 변하잖아!
종정 예전처럼 남편이 못미더워질 때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내 신앙의 바로미터로 삼는다. 내가 성령충만하지 않아서 생기는 공격임을 이제는 안다.
예전에는 성경말씀을 have to, 지켜야 할 규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것은 '비밀의 키'더라. 이 죄 많은 세상 가운데서도 천국에 있는 것처럼 살 수 있는, 만사 형통할 수 있는 키.
만약 여기까지 읽으신 비크리스천 독자가 계시다면 한 번 시험해보시기를 권해드린다. 하나님의 통치 질서는 신자와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적용된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나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얘기했지,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지금 쓴 내용들은 오직 나의 남편이 된 남자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직장에서 남자 동료에게 순종할 필요는 없다(그가 상사라면 또 다른 권위자가 되겠지만).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역량을 발휘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