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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May 23. 2024

사랑하는 자매님께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사랑하는 자매님께 이 편지를 드립니다.


먼저 알려드릴 것은, 지금부터 적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저 최근에 있은 일련의 일들을 보고 기도하면서 순간순간 깨달은 것입니다. 저는 신학 지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편지를 자매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시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제 생각, 제 느낌을 나누고 싶어서 적습니다. 자매님께서 이 문제에 관하여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기도의 씨름을 하시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저는 구체적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혹여라도 신중하지 못한 말로 자매님의 판단을 그르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편지는 써 놓기만 하고 부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들은 설교말씀 중에 '성경은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하학적인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부터 그렇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크리스천 엄마들을 위한 제언). 성경은, 우리에게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는 도덕경' 같은 책이 아니라, '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적어놓은 사용설명서' 같다고요. 성경에서 복 받는 길이라고 적힌 대로 하면 복을 받고, 벌 받는 길이라고 적힌 대로 하면 벌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록 불신자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 성경에서 우리 성도들은 '한 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린도전서 12: 26, 27)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성도들은 한 몸처럼 하나 되어 그리스도를 섬기라'는 비유적인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느끼기에는,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같은 장에서 성도들은 눈, 귀, 손, 발 등에 비유하신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각 성도들은 하나하나가 귀한 영혼이면서 동시에 교회라는 한 몸을 이루는 각 부분에 해당합니다.


(저는 몇 년 전에 이 사실을 깨닫고 너무나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비록 보잘것없고 죄 많은 인간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구분된 별개의 개체로 존재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내가 어떤 개체의 부분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또한 자신이 독립적 존재이고 싶은 인간의 죄성, 즉 자기중심성에서 온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지요.)


한 몸의 특징은, 몸의 일부가 상했을 때 다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지요. 손이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칼을 들어 머리를 쳐내면, 머리뿐만 아니라 손도, 아니 온몸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성경 곳곳에서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받은 자, 즉 영적 리더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이, 자식에게는 부모가, 그리고 성도에게는 목사가 바로 영적 리더가 되겠지요.


다윗은 자신이 기름 부으심 받은 이후에도 자신보다 먼저 기름 부으심 받은 자인 사울에 대한 예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자기 목숨을 노리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그는 사울을 건드리지 않았고, 모욕하거나 정죄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억울함을 읍소할 때에도 신하 된 자의 예를 갖추었습니다. 사울을 죽이고 소식을 전한 자에게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사무엘하 1:14)"라고 하며 슬퍼하였지요.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면 미리암은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자 이를 비방하면서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민수기 12:2)"라고 하여 모세의 영적 권위에 도전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민수기 12:8)" 하시며 죄를 저지른 모세가 아니라, 영적 리더를 비방한 미리암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를 편애하셔서가 아닙니다(하나님은 모세에게는 다른 누구보다도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십니다. 모세가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라는 명령에 반석을 '쳐서' 물을 냈다는 이유로 모세를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게 하신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 권위 안에 순종하며 거할 때 우리는 안전하고 복을 받습니다. 세계적인 중보기도의 거장 신디 제이콥스는 누군가로부터 '그 유명세 때문에 교만에 빠질 위험을 어떻게 경계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소속된 지역교회의 담임목사님께 순종할 때 나는 안전하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통하여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 리더인 담임목사님께 순종하고, 그를 비방하면 안 된다는 것. 이것은 마치 한 몸 되는 교회 안에서 몸의 다른 부분이 그 머리를 치는 것과 같고, 그 결과는 모두에게 해롭다는 것.


목사님에게 어떠한 결함이 있는 경우, 순종하기 어렵다고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결함투성이입니다. 살아 있는 인간 중 흠 없었던 분은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모, 또는 남편, 또는 상사의 지위에 있지요.


중요한 것은 목사님에게 결함이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당신의 영적 리더로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님이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그의 머리 됨을 인정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직장을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상사에게 결함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럼에도 당신은 순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교회에서는 순종하지 않습니까?


담임목사님께 순종하라는 것이 담임목사님의 모든 명령에 다 따라야 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일례로 저는 한국 교회에서, 담임목사님들이 새 신자를 전도하고 기존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교회 일에 봉사하도록 가르치고 권면해야 함에도, 늘 함께하고 익숙한 신자들, 열심이 있는 신자들, 거절 못 하고 맘 약한 신자들, 즉 속된 말로 '만만한 신자들'에게만 교회일을 자꾸 몰아주시면서 안주하시는 것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 결과 신실한 신자들이 결국 지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필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담임목사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더라도, 그의 권위를 인정하고, 예의를 지키시기 바랍니다. 무례히 행치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 의로 판단한 뒤, 뒤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수군수군 비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사건을 기억하세요.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선과 악을 판단할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C.S.루이스도 '탐욕은 동물적인 죄이지만, 교만은 악마적인 죄'라고 했습니다. 자기 의야말로 교만의 끝판왕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수군수군하는 자를 정말 싫어하십니다. 이는 교회를 좀 먹고, 병들게 하고, 종국에는 분열하게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수군수군하는 행위를 살인, 사기, 악독 등과 같은 수준으로 보셨습니다. 게다가 수군수군하는 자들끼리 모이면 서로 옳다 하면서 지지해줍니다. 분열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로마서 1:29)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 1:32)


특별히 교회의 영적 리더가 교체될 때를 주의하십시오. 분열의 영이 역사하기 좋을 때입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라고 했습니다. 이럴 때 마귀에게 걸려 넘어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자매님의 교회에 관한 고민을 보면서, 구체적 상황은 아는 것이 없기에 상상해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어떤 잘못을 하면 성도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 것인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그럴 때 저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라면,

- 목사님이 어떤 잘못을 했는데 회개하지 아니하면, 대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한 몸이므로, 그의 죄를 나의 죄로 생각하고 회개하겠습니다.

 - 교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면, 직접 목사님과 대면하여 충언하겠습니다. 목사님께 나아가기 전에 골방에서 열 번 기도하고,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듯 마음과 태도를 준비하여 나아가겠습니다.

-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다른 성도들 앞에서 목사님을 비방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매님의 교회와 같은 문제로 결국 교회가 깨어진 경험이 있는 자의 회한을 담은 조언입니다. 그때는 이것이 옳은 방법인지 알지 못했으나 이제는 압니다. 교회가 깨어지고 성도들이 각자 흩어지며 오랫동안 눈물을 흘린 경험을 한 후,  저는 그 뒤에 어떤 교회를 가더라도 담임목사님께 납작 엎드립니다. 그리고 목사님에 대한 품평을 입에 담은 적도 없습니다.


또한 권면드리기를, 교회 안에서 다른 성도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분들 먼저 목사님 앞에 엎드려 순종하십시오. 사극에서 왕 앞에 신하들을 떠올려보세요. 신하들 중 가장 높은 사람부터 앞줄에 섭니다. 그리고 왕이 나타나 모두 엎드릴 때, 가장 앞줄에 선 신하들부터 고개를 숙입니다. 실상 뒤에 있는 낮은 신하는 왕이 아니라 자기 앞에 있는, 자기보다 조금 더 높은 신하를 보면서 고개 숙일 타이밍을 판단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만약 교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부터 엎드리세요. 그러면 다른 자들이 같이 따라 엎드릴 것입니다.


악한 때입니다. 우리가 한 몸 되어 주님이 주신 푯대를 향해 달려가도 모자를 판국에, 서로 분열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찢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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