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이전 글에서 행위의 중요성에 관해 얘기해 보았습니다('행위'의 의미). 이번에는 고민되는 상황에서 어떤 행위를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 기준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아는, 성경의 유일한 율법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서 나옵니다. 즉 내 행위가 '하나님의 뜻인가, 이웃에게 덕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얼마 전 교회 제자반에서 한 분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고 있는데 크리스천 된 입장으로서 돈을 포기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가족들이 '크리스천이니까 자기 것을 내어준다는 마음으로 받지 말라'는 취지로 말씀하신다고요.
제가 이와 같은 상황이라면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를 하겠지요. 하지만 이런 기도를 했을 때 하나님이 분명히 '받아라, 말아라' 말씀하시는 일은 드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얘기를 자주 나누는데, 어떤 때에는 비교적 분명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저런 것을 종합해서 뜻을 분별하는 거지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모르겠을 때에는 성경을 봅니다. 그럼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눅 6:35)'와 같은 구절을 발견하게 되지요. 대체로 성경은 '누가 왼뺨을 치면 오른뺨도 대라'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타인에게 대가 없이 내어주라는 취지의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럼 이 구절들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줄 때마다 안 받는 게 맞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구절들은 주로 이웃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남을 도울 때 대가 없이 줄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하면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고 품으라는 마음가짐.
이 사람이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으면 일단 용서하는 마음가짐을 가집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돈을 빌려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합당했는지, 내가 그것에 대해 하나님의 인도를 구했었는지를 돌이켜 보고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겠죠. 그럼 그 뒤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될까요?
이럴 때 '이웃에게 덕이 되는가'의 기준이 나옵니다. 돈을 받지 않는 것이 (나 말고) 그 사람에게 덕이 되는가. '이익'이 아니라 '덕'이라는 점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채무를 면하는 것은 당연히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니까요.
그러나 덕의 관점에서는 어떨까요?
그가 형편이 어려운 처지면 빚을 유예하거나 탕감해 주는 것이 그에게 덕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충분히 갚을 수 있는데 안 갚거나, 스스로 경솔히 행동해서 어려운 형편에 처한 것이라면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 그에게 덕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호되게 혼을 내서 정신 차리게 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그 이웃 안에 나 자신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현대의 문화는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주지만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다는 것,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셨지 '스스로를 사랑하라'라고 하신 적이 없다는 것은 다들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그래서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그가 창조하고 사랑하는 이웃에까지 사랑이 확장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고 사랑하는 대상에는 나 자신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나 자신을, 이웃들보다 조금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정도로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경쟁적이지는 않지만 무한하고 온전한 사랑, 그것이 성경이 추구하는 자기애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웃에게 덕이 되는가'를 기준으로도 잘 분별되지 않는 경우에는 '나 자신에게 덕이 되는가'를 봅니다. 그럼 대부분 분별이 되더라구요. (분별이 안 될지라도 솔직히 이 단계까지 심사숙고했으면 맘대로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