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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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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Jan 01. 2021

스몰리스트의 삶 - 다이어트

삶의 미학

몇 년 전 나는 단 한 달의 다이어트로, 아이를 낳고 계속 빠지지 않던 6~7kg의 체중을 감량한 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놀라워하면서 다이어트의 신, 의지력의 화신이라고 불렀으나, 그는 모른다. 그 한 달의 성공이 있기 전, 20대부터 지금까지 내가 몇 차례의 다이어트를 도전했는지.


중3 때 공부 스트레스로 폭식하는 습관을 갖게 되고 나서부터(중1 때에는 혼자 롯데리아 햄버거 하나를 다 못 먹던 내가 중3 때에는 투게더 한 통을 한 자리에서 뚝딱 해치웠다) 나는 내내 통통한 사람이었다. 입시가 끝난 대학 1학년 때부터 마음먹고 다이어트에 돌입했는데, 빠지는 건 제법 빠져도 금세 요요로 돌아왔다. 성공의 기쁨은 잠시였고, 실패하면 그보다 큰  좌절이 밀려왔다. 자기 비난이 몸에 배어있던 시절이었기에 수치심이 더해졌다.


그러기를 수차례, 나는 언젠가부터 내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커피는 생크림을 듬뿍 올린 카페 모카만 먹었는데 점차 카페 라떼를, 그다음에는 아메리카노를 찾게 되었고, 샐러드는 사우전 아일랜드 소스를 기본으로 가끔 블루치즈나 랜치도 선택했는데 점점 올리브 오일에 발사믹 소스를 뿌리다가 지금은 그마저도 없이 생채소를 그냥 먹는다.


내 취향이 바뀌면서 살을 빼기가 쉬워졌고,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다이어트는 일정 기간 음식을 끊거나 적게 먹고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이라는 걸. 그 변화는 한 포대의 강냉이나 한 양동이의 디톡스 음료가 만든 게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또 실패해도 다시, 꾸준히 작심삼일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쌓아간 스몰 스텝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걸.


다이어트하니까 카페 모카 대신 라떼를 먹기로 결심했음에도, 막상 스타벅스 카운터 앞에서 망설이며 '그냥 카페 모카 먹을까? 생크림 없는 커피가 무슨 맛이야. 아니지, 아니야. 라떼 마시기로 했는데. 아아, 뭐 먹지?' 한참을 고민한 뒤 결국 라떼를 선택했던 그 순간들. 비록 그다음 날에는 무너져 카페 모카를 마시면서 '또 실패했어.'라고 한탄하더라도, 고민 끝에 이전의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던 그 순간들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한탄 속에서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서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것이 내가 스몰리스트*의 삶을 선택한 이유이다.


나는 지금도 폭식하는 습관이 남아 있다. 그럴 때에는 볼이 터지도록 입 안에 음식을 밀어 넣고 씹으면 머릿속에서 박이 터진다. 열여섯 나이부터 이십여 년을 함께 한 그 습관이 쉽게 사라질 리가 없는 것이다. '습관의 힘' 저자 찰스 두히그도 다 없어진 줄 알았던 나쁜 습관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다시 폭식을 할 때마다 '또야..' 하면서 나 자신에게 실망하곤 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는다. 나를 찾아오는 친구처럼 정중히 맞이하고, 그것을 잘 다루도록 연습 중이다. 내가 실패해도 괜찮다. 나의 나쁜 습관을 넘어서는 절대자를 믿기 때문에.


그리고 폭식아, 고맙다. 너에게로 도피할 수 있어서 나는 온갖 스트레스를 견디어 내었구나. 나는 이제 괜찮아. 그동안 수고 많았어. 정말 고마워.


* '아주 작은 습관의 힘(제임스 클리어 저)'을 읽고 감명을 받아, 삶에서 스몰 스텝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내가 만든 말 ^^



photo by Ursula Gam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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