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친구 만날 일이 있어서 서울에 오셔야 하는데 그 김에 너네 집에 가겠다고. 오셔서 아이도 보고 집안일도 도와줄 요량이신 것이다.
나는 난감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 작년까지 6년 이상을 엄마가 키워 주셨는데, 이젠 연세도 많이 드시고 몸도 예전 같지 않으시다. '그만 놓아드려야지.' 하고 호기롭게 육아 독립을 꿈꾸며 단축근무를 시작했으나 예상치 못한 코로나 때문에 결국 엄마에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이를 부탁해 오던 중 '이러다간 육아 독립은커녕 괜히 단축근무 해서 월급만 반토막이 나게 생겼어.' 하는 불안에 8월 중순부터는 일절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있던 터였다.
사실 엄마와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의 다정하고 무례한 엄마'라는 책이 있던데, 나는 읽어보지 않아도 이건 우리 엄마 얘기일 거라고 확신했다. 엄마는 나에게 매사 지극정성이었지만, 나는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그것이 힘들었다.
학창 시절 엄마는 "간식 먹을래?"하고 노크도 없이 내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거나, 내 방 청소는 내가 하겠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네가 하긴 뭘 해." 하면서 학교 간 틈에 내 방에 침입(?)해서 말끔히 청소를 해 놓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숨이 막혔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파도가 모래로 쌓은 내 성의 경계를 허물고 나를 덮치는 것만 같았다. 사춘기를 핑계 삼아 엄마에게 버럭! 화를 내고 난 다음에는 항상 '내가 너무 심했어. 사실 엄마가 다 챙겨주니까 편하잖아.'라는 후회와 자책이 따라왔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가 (비록 노크를 안 하긴 하지만) 책상 앞까지 간식을 갖다 주고 방청소를 해주는 삶은 안락한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과 멀어지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불안정한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성인이 되어 독립했고, 차근차근 나만의 경계를 세워가기 위해 애를 썼으나 그것은 출산과 육아 앞에서 다 무너졌다.
직장 때문에 남편과 떨어져 갓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연고도 없는 지방에 가서 새로 살림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지할 곳은 헌신적인 엄마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경계는 무슨, 엄마, 나, 아이가 한 덩어리가 되어 엉킨 삶을 6년이나 살았다. 나는 다시 경계를 찾고 싶었다. 8월 중순부터는 모질게 마음먹고, 도와주러 오신다는 말도 극구 사양하면서 혼자 버텼다. 하지만 이렇게 당신 볼 일 있어 오는 김에 들르신다는데 못 오시게 할 명분은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우리집에 오시는 날짜가 정해지고 나서 친구분과 약속이 언제인지 물으니 "약속? 아직 안 정해졌어. 네 스케줄에 맞출게. 친구는 이번에 꼭 보지 않아도 되고."라고 대답하셨다. 갑자기 미칠듯한 분노가 솟구쳤다. '뭐야? 약속도 없는 데 있다고 거짓말하고 오시는 거야? 나한테 집착하는 거야?' 엄마가 헬리콥터처럼 주위를 빙빙 돌면서 언제 내 인생에 끼어들지 엿보는 것만 같았다. '역시 넌 나 없으면 안 돼.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왔다.
가만가만... 진정해. 엄마의 의도는 내가 모른다. 짐작하지 마. 그렇게 나를 달래고 나서 엄마를 맞이했는데, 알고 보니 엄마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였다. 친구분이 만나자 해서 조만간 서울에 가겠다 했고, 이왕 올 거 나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서 내 스케줄에 맞춰서 약속을 잡으려 했기에 미정인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싶지만 안 되면 다음에 보면 되니까 이번에 안 봐도 된다고 하신 것이었고. 오히려 우리집에 와 계신 이틀 동안 낮에 친구분을 만나서 실컷 노시면서 내가 전화를 드리면 민망한 듯이 받으셨다. 딸내미한테 도움도 많이 못 주고 친구랑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서 미안하다는 듯이.
나는 왜 엄마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식대로 왜곡하고 부풀리고 화를 내었을까.
같이 지낸 이튿날 아침이었다. 엄마가 나에게 "냉장고 안에 있는 고구마 썩었더라."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또 화가 부글부글 피어올랐다. 저 말이 '냉장고에 고구마가 썩는지도 모르고 뭐했니? 그것 봐. 너는 집안일에 젬병이니까 역시 내가 필요해.'라는 말로 들렸다.
그런데 어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생각해보니, 저 말씀은 그냥 '고구마가 썩었다.'라는 뜻이었다. 그래, 고구마는 그냥 고구마일 뿐인데. 나는 왜 고구마가 썩었다는 말에 또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확대 해석하려고 했을까. 그럴 필요 없었는데. 경계를 잃고 힘들어 한 나는 어제의 나고, 오늘의 나는 아닌데.
갑자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더라. 우리가 산을 산으로, 물을 물로 보지 않아서 쓸 데 없이 지고 있는 괴로움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사십여 년을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살다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그동안 얼마나 왜곡된 시선으로 나를, 남을 평가해왔는지 알겠다. 그러니 이제 상대방을 그 자신대로 존재하게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자. 내가 나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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