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즈음 자기 성찰을 위한 온라인 모임을 한 적이 있다. 참가자들끼리 매일 일지를 쓰고 나누는데, 쓰다 보니 내가 글쓰기를 생각보다 매우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스트렝스 파인더로 한 강점 검사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무려 나의 1순위 강점으로 발견되기도. 가만 돌이켜보니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교내 게시판이든 블로그든 카페든 어딘가에 글을 쓰고 있더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브런치 작가에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실수를 했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재미있다. 그중에 잘 썼다고 생각하는 것은 남들이 읽고 좋아해 주면 좋겠다.'는 단순한 욕구로 시작했다는 것을 잊은 채, '어떻게 하면 뽑힐 수 있을까?'에만 신경 썼다. 일평생 성취주의자로 살아왔기에, 이것 또한 성취의 연장선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브런치에 뽑히는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고, '전문성이 있는 내용이 유리하다'는 글들을 발견하고는 작가지원서에 직업을 밝히며 '직업에서 오는 경험을 살린 글을 쓰고 싶다'라고 썼다. 다소 특이한 직업이기에 먹힐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작가가 되면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
결과는? 똑 떨어졌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그게 아니었다. 나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내 과거, 현재, 미래, 그 과정에서 겪은 일들, 내 눈에 보인 세상들. 그런데 그런 글 따위 누가 읽겠어? 내가 유명 작가나 셀럽도 아닌데. 이왕 도전할 거라면 뽑히고 싶다고. 나한테 있는 자산은 비교적 희귀한 직업뿐이잖아.
하지만 실제로 내가 써낸 글은 지원동기와는 동떨어졌다. 내가 심사위원이라 해도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연말에 장래 계획을 세워보면서 글쓰기 욕구에 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유사 욕망 - 그저 멋있어 보이는 것, 남들이 하니까 덩달아 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 을 제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글쓰기는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글쓰기가 좋고, 공들여 쓴 글은 누가 읽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은, 현재는 나에 대한 것. 그리고 장래에는, 등장인물과 그 삶이 매력적이고, 그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고 풍부한 에세이나 소설을 쓰고 싶다. 내가 그런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문장은 질리지도 않고 반복해서 읽기 때문에.
이번에 브런치 작가에 지원할 때에는 어차피 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원서도 스마트폰으로 대충 써냈다. 매 항목 300자 정도가 주어지는데 그중 100자나 채웠으려나.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관해서. 그러고는 붙었다. 햐... 역시 마틴 스콜세이지 옹과 봉준호 님은 언제나 옳아.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로구나.
고작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이런 얘기 하기는 부끄럽지만 ^^; 남에게 멋져 보이는 글보다는 내 맘에 드는 글, 팔리는 글보다는 진정성 있는 글, 세련되진 않아도 울림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비록 그 독자가 (상당수는 내 지인들일 것이 분명한) 스물댓 명에 불과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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