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도 '있는' 것이다

페루_아만따니 섬

by 상현

노을 구경을 마치고 돌아온 방에는 어둠이 가득하다. 책상 위를 더듬어 성냥을 찾고 성냥불을 켜서 양초를 찾는다. 성냥불이 꺼지기 전에 양초에 불을 붙인다. 이제야 방의 구조와 내가 짊어지고 온 짐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만따니 섬의 어느 집, 내가 배정된 방에는 전기가 없다.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모아 화장실과 주방에서만 겨우 전등을 쓰는 도중에 손님의 방까지 전기를 내어줄 여유는 없을 것이다.


타닥타닥, 제 몸 타는 소리를 내며 빛을 내고 있는 촛불을 바라보자니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남쪽의 작은 시골마을이던 그곳은 정전이 잦았다. 그때마다 촛불에 불을 붙여 방을 밝혔다.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은 전깃불도 없어 초를 밝혀 꺼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바람이 불어 촛불이 휙 꺼지기라도 하는 날엔 화장실귀신이 생각나며 무서워해야만 했다.


그런 동네에 처음으로 가로등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길가에 전봇대 같은 것이 세워지는 것을 신기해하며 구경한 지 며칠 되던 날 밤. 전봇대 같은 것 꼭대기에서 불이 들어왔다. 신기함과 놀라움에 밤새 전봇대 같은 것 아래를 뛰어다녔다. 그때의 밤새란 겨우 9시까지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와야 했던 그 시절의 9시는 충분히 깊은 밤이었다.


불편하지만 재미도 있었던 그 시절을 되새기자니 불편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마냥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촛불을 끄고 방안의 어둠을 잠시 즐기다 밖으로 나간다. 바깥도 어둡다. 그 시절 그랬던 것처럼 내딛는 한발 한발에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눈 앞에는 어둠과 더 짙은 어둠, 그리고 덜 짙은 어둠이 있다. 그 짙음의 차이로 집과 나무의 윤곽들을 겨우 알아차릴 수 있다.


동네에 가로등이 들어온 그날 이후 몇십 년 만에 어둠을 다시 만났다. 그동안 어둠을 잊고 살았다. 낮이야 태양이 있으니 밝겠지만, 밤에도 빛들의 향연이 꺼지지 않았다. 방안의 불을 꺼도 창밖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고 이제는 손 안에서 작은 빛들이 꺼질 줄을 모른다. 밤낮으로 빛에 시달리던 눈이 이제, 잠시, 겨우 쉬는 시간을 갖는다.


눈이 휴식을 취하니 무시당하던 다른 감각들이 저도 살아 있음을 일제히 신호 보낸다. 어둠을 지나쳐가는 바람이 느껴지고 바람이 나무에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또한 그 바람 속에는 이 섬의 흙냄새가 섞여 있다. 쌀쌀한 기온과 풀벌레 소리와 저녁이 늦은 어느 집의 음식 냄새도 있다. 두 발은 서 있는 땅의 경사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 오고 머리칼은 바람의 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려온다.


구름에 가렸던 달이 나타나자 휴식을 취하던 눈이 게으른 작업을 시작한다. 그저 몇 걸음 앞의 갈 길을 확보하고는 하늘로 일자리를 옮긴다. 별이다. 어둠을 잃어버리면서 별도 함께 잃어버렸다. 별자리를 공부하고 그려 보고 그 안에 담겼던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던 시절을 잃어버렸다. 지금껏 간직했다면 처음 보는 남반구의 별들에 마구 신기해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어둠에는 그렇게 반가움과 아쉬움이 섞여 있다.


어둠을 친구 삼아 이 밤을 즐긴다.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만나기 힘든 친구가 될 것이다. 일상에서의 어둠은 마치 물리쳐야 할 적인 것 마냥 만나면 무섭고 문학에선 부정적이며 현실에선 불편한 것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둠도 진짜 어둠을 만난다면 ‘없다’의 감정이 아닌 ‘있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부정적이지 않은 어둠을 만나 ‘있음’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그 어둠을 만나기에 아만따니 섬은 매우 좋은 장소다.


07180234.JPG 달이 나온 순간, 셔터시간을 최대로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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