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멕시코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많이 보고 많이 다녔다. 쉬기도 많이 쉬었다. 걸은 후 쉬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특히 과나후아또 대학교 앞 도서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는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의 끝에는 깔때기처럼 늘 자기반성이 뒤따른다.
미술과 역사박물관을 둘러본 후 옆에 있는 공원에서 쉬고 있었다.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들이 들려온다. 보아의 '다시 만난 세계'.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친구들이 보아의 노래에 맞춰 춤 연습을 하고 있다. 다른 노래들도 간간이 있었지만 주로 보아 노래였다. 그들이 춤추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과 말을 섞고 싶어 졌다. 그러나 나는, 가만히 있었다.
'아, XX. 궁금한 게 많은데 말을 못 하니까, 듣지도 못하니까 물어보지도 못하고 답답해 죽겠네!'
속으로 욕이 터져 나왔다. 가진 것 없이도 돌진할 수 있는 무대뽀 정신이 나에게는 없다. 그들과 잠시라도 어울려보려면 스페인어를 잘 하든지, 그들이 추고 있는 춤이라도 잘 춰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그들과 어울려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얻기 위한 노력은 무시한 채. 그저 멍하니 바라보며 신세한탄만 하고 있었다.
잘 하고 싶은 것은 많다. 그러나 그중 어느 하나도 노력이라는 것을 해보지는 않는다. 언제부턴가 나는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것만을 한 채 그 이상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에 나태해져만 갔다. 언제부터냐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인 것 같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해야만 했던 공부에는 열심이었다. 그렇게 공부'는' 잘했던 나는 대학생 때부터 욕먹지 않을 만큼만 공부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는 사이 점점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어 갔다.
지금 하는 여행도 그렇다. 최소한, 혹은 그보다 조금더의 노력만 하고 굳이 더 큰 재미를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반성, 아니 신세한탄이 끝나기도 전에 춤을 추는 친구들은 장비를 정리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쉬움이, 신세한탄만큼 긴 아쉬움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