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시작, 처음 만난 아바나

by 상현

아바나 공항에 도착해 먼저 환전부터 해야 했다. 어떻게든 시내까지 들어갈 돈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전 부스는 달랑 둘 뿐. 게다가 줄도 엄청 길었다. 30분을 넘게 기다려서야 환전을 할 수 있었다. 이제 택시를 잡아야지. 가격을 물어보니 30 쿡이다. 3만 원이 훨씬 넘는 돈이다. 이곳 물가도 모르면서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 만만한 상대를 물색했다. 커다란 배낭을 멘 외국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저런 차림이라면 그도 한 푼 아끼는 것이 소중하리라. 그에게 다가가 택시 셰어를 요구했고 승낙하자 2층 출국장으로 끌고 올라갔다. 1층 입국장보다는 출국장이 택시가 싸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었다. 생각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5 쿡 싼 25 쿡에 까삐똘리오까지 가는 택시를 탔다. 결국 12.5 쿡에. 까삐똘리오에 도착해서는 쿠바에 도착해 처음 만난 그 외국인과 작별을 구했다. 택시를 같이 탄 것이 인연이 되어 같은 곳에 또 숙박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미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호아끼나 까사. 쿠바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성지와 같은 곳. 한인민박은 아니지만 손님의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여행자들이 만들어 놓은 정보북으로 다른 까사의 여행자들까지 불러 모으는 마성의 까사이다. 나는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한국인들을 만나 외로움을 덜어내고 싶었다. 내 한 몸 들어갈 수 있는 침대 하나 비어 있기를 기원했다.


호아끼나 까사가 있어야 할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까사를 나타내는 문양도 찾을 수 없다. 근처를 지나는 쿠바인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어디인지 알려준다. 이미 쿠바인들에게도 유명한 곳인가 보다. 문 앞에 도착해 벨을 누르니 들었던 것처럼 2층에서 한국인이 열쇠를 던져준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한국인이 까사 안내를 해준다. 비어있는 침대가 있으니 그냥 들어가서 짐 풀면 될 거라고. 그날 저녁 주인인 호아끼나를 만나기 전까지 체크인했지만 마음은 체크인한 것이 아닌 어정쩡한 상태였다.


까사의 거실에는 이미 여럿의 한국인이 있었다. 다들 이곳에서 만난 여행자들이었으며 이미 너무 친해져 있었다. 쿠바에서, 아바나에서 무엇을 했느냐 물어보니 낮엔 쉬다가 밤에 술 마신 것 밖에 없다고 했다. 그것뿐인데 아바나가 너무 좋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까진 맥락의 연결고리가 많이 생략되어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아쉬운 것은 나보다 한 시간 일찍 온 한 명을 빼곤 모두 다음날 아바나를 떠난다는 것이다. 보통의 나라면 이쯤 되면 대화를 접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긴 외로움의 끝에, 괴로운 여행의 끝에 만난 사람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모두 다음날 아침에 떠남에도 불구하고. 그중의 한 명 J와는 새벽 6시까지 얘기를 했다. 물론 술기운의 힘을 빌린 것이기도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이야기가 잘 통하고 재밌었다. 결국 J는 잠 한숨 자지도 못한 채 아바나 공항으로 향했다.


쿠바의 첫날은 멕시코에서의 지난 20일과는 너무나도 다른 시작이었다. 심심함을, 자괴를 느낄 틈이 없었다. 애초에 걱정했던 생존문제로 바쁜 것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들이 재밌었다. 이렇게 시작한 쿠바 여행은 180일 중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까사(Casa) : 까사는 집을 뜻하는 스페인어다. 하지만 쿠바에서 까사는 민박이다. 원래는 까사 빠르띠끌라(Casa particular)지만 누구나 그냥 까사라고 부른다. 미국의 경제봉쇄 속에서 관광산업을 활로로 내건 쿠바 정부에서 턱없이 부족한 숙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박업을 시작했다. 정부의 엄격한 통제 속에 수리하고 시설을 갖춰 여행객에서 숙소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시설이 좋은 것은 아니다. 아무튼 쿠바 여행에서 까사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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