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니다드의 대표적인 즐길거리 중 하나는 '까사데라무지까'가 아닐까. 대부분의 여행자가 모이게 된다는 마요르 광장, 그 마요르 광장 조금 위쪽에 자리 잡은 까사데라무지까*는 이름 그대로 음악이 있는 곳이다. (* 까사데라무지까 Casa de la Musica ; 직역하면 음악의 집)
이곳이 조금 특별한 것은 외부에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 중간 즈음에 무대를 마련해놓고 앞에 몇 개의 테이블이 있다. 저녁마다 무대에서는 춤과 노래를 포함한 공연들이 펼쳐지는데 별다른 입장료도 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마요르 광장을 바라보고 앉아 무대를 등지고도 소리만을 들을 수도 있고, 서서 또는 무대 위쪽 계단에 앉아서 볼 수도 있다. 계단에선 맥주와 칵테일 등 주문을 하는 손님,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바삐 움직이지만 테이블만 아니라면 딱히 주문하지 않아도 괜찮다. 물론 다른 곳에서 사 온 음료를 즐겨도 된다.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곳이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조금은 다른 풍경이다. 지난밤 밤거리를 구경하며 한 집의 거실에서 춤추고 있는 어린 소녀를 발견했었는데, 그 소녀가 무대 앞에 있는 것이다. 흥겨운 살사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몇 커플의 남녀가 무대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그 소녀 역시 그 옆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어색하거나 쑥스러워하는 기색 없이 꽤 자연스러운 몸짓인 것이 한두 번 올라간 것이 아닌 듯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낯설지만 절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장면을 바꿔 상상해보았다. 한국의 어느 클럽, 성인 남녀의 춤이 있고 술과 담배 연기가 난무하는 곳에 어린아이가 춤을 추고 있다. 아마 입장조차 안 되겠지만 설사 입장했다 하더라도 아이에게 무대를 허락할 부모가, 어른이 얼마나 될까. 나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 트리니다드에서, 쿠바에서 춤과 노래와 음악은 일상이며 생활이다. 그것은 어린아이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의 범접할 수 없는 그루브는 어른이 되어 배우기 시작해서는 흉내 낼 수가 없다. 타고나거나 혹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몸에 익혀온 것이다.
사실 쿠바의 음악과 춤은 관광객들을 상대하기 위한 생업의 일종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적어도 아바나에서는 그렇게 느꼈다. 이런 생각을 바꾸게 하는 계기는 까사데라무지까의 그 여자아이였다. 그리고 완전히 바꾸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 전파 송신탑에서 석양을 보고 내려오는 길, 이미 어둑어둑해진 골목 어딘가에서 시끌시끌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호기심에 이끌려 찾아간 곳에서는 기타와 스피커, 술 그리고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한 것은 장사를 하는 곳이 아니었단 것이다. 그저 동네 사람들 스스로가 즐기는 것이었다. 장사는커녕 되레 우리들에게 술 한잔씩 건네주기도 했다.
여기서 또 한 번 장면을 바꿔 상상해보았다. 한국의 어느 주택가, 한 집에서 스피커를 내놓고 크게 음악을 틀어놓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옆집에서 항의가 들어올 것이고 이내 경찰까지 출동한다.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스피커의 전원은 차단된다. 상상이 끝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내 눈 앞에 있었다. 혹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진 않을까 주변을 살펴보았다. 얼굴을 찌푸린 사람들이 있진 않을까. 없다. 오히려 창문을 열어놓고 음악소리를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음악에 박자를 맞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다르구나. 이들은 모두 즐기고 있구나. 쿠바에서 음악은 자연스러운 배경이었다.
내가 본 것이 극히 일부의 모습이라 과대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든 쉽게 스피커를 들고 다니는 청년들을 볼 수 있는 것, 그들을 나무라는 이는 본 적이 없다는 것, 말레꽁의 저녁 등 스쳐 지나왔던 장면의 정보가 조합되면서 틀릴 가능성이 크진 않다고 생각했다.
쿠바를 오면 접하기 싫어도 접할 수밖에 없는 것 중의 하나, 음악. 아무리 싫어도 그것이 그들의 일상이기에 보고 들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연스레 물들어 간다. 지금도 쿠바의 춤과 음악, 흥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