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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현 Jan 12. 2018

쿠바 춤의 나라

비단 춤의 나라뿐이겠냐만은

춤은 싫은 것 중의 하나였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다 흥을 돋우기 위해 몸이라도 흔들라치면 코믹이 아닌 이상에야 춤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몸사위만 나왔다. 친구들이 90년대 댄스 음악에 맞춰 몸이 기억하는 안무를 이끌어 낼 때마다 나는 예전에 이런 것도 안 따라 하고 뭐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도 집에 돌아가면 댄스곡 하나 연습해야지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말을 안 듣는 몸과 타고난 박치에 이내 포기해버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것저것 찾아다닐 때, 춤을 춰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지만 그때마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춤은 싫어.” 이미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으로 안 되는 걸 시도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그뿐이었을까. 나는 유달리 남들 앞에서 나를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했다. 특히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두려움은 더했다.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노래도 못하는데 춤이라니. 그렇게 춤을 멀리하며 춤이 왜 좋은지도 모른 채 쿠바에 도착한 순간, 춤을 왜 멀리했을까 하는 진한 후회와 아쉬움이 나를 감싸고 놓아주지 않았다.


식당 어느 곳을 들어가도 라이브 밴드가 있고, 음악이 흐르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춤을 추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춤이 앞에서 얘기한 춤과는 다르겠지만 한없이 부러웠다. 누군가에게 보여줘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춤이 아니라 스스로 기뻐 즐기는 춤이었다. 혹은 함께하는 파트너와 기쁨을 나누는 춤이었다. 잘 추든 못 추든 상관하지 않았다. 음악에 맞추어 느낌대로 발을 움직였다. (사실 못 추는 사람은 없었다. 이미 너무나 오랫동안 그래 왔었기에 매우 자연스러웠고 부드러웠다.) 이제 막 걷기 시작했을 것 같은 아이들이 음악에 몸을 맡기는 모습, 서빙하는 짧은 순간에도 음악에 스텝을 싣는 모습, 자연스럽게 춤을 권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 등 일상에 깊이 자리한 춤을 보면 - 절대 그럴 리가 없겠지만 - 힘든 것도 어려운 것도 없어 보였다.


그들의 삶 속에 조금은 들어가 볼까 살사 수업을 받던 날, 내 몸은 왜 평생 안 하던 짓을 하나며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런 몸을 꾸짖고 싶었다. 지금 이대로 아무것도 못 느끼며 계속 살아가고 싶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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